“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룰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시작 문구와 함께 게임 유저는 판타지 세계로 빨려든다. 검과 마법의 세계다. 그런데 유저는 현대 무기인 탱크와 로봇을 소환해 악마를 무찌르라고 AI에 명령한다. 황당한 주문이지만, AI는 개의치 않고 즉석에서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최근 온라인에서 인기를 끄는 게임 ‘AI 던전(Dungeon)’의 일부다.

처음부터 주목도가 높았던 것은 아니다. 데이터 부족으로 AI가 만든 스토리가 어색했던 탓이다. 하지만 AI는 꾸준히 유저들의 사용 데이터를 학습했고, 결국 완성도가 크게 개선됐다.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Open AI사의 AI 모델 ‘GPT-3’를 적용한 덕분이다. AI 던전은 최근 구글 앱 누적 다운로드 100만 건을 넘어섰다.

데이터 부족으로 ‘깡통’이란 악평을 듣던 AI 서비스들이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AI 고도화의 필수인 빅데이터와 새로운 AI 엔진에 힘입어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서비스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분야는 게임에서부터 자율주행차까지 산업군을 가리지 않는다.

AI 음성인식 기술도 데이터 축적이 진행되면서 타 산업과의 동맹 확대에 힘을 얻고 있다. 카카오는 현재 코맥스 등 스마트홈 기업과 신축 아파트의 주거 공간 제어에 음성인식 서비스를 적용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카카오i’의 음성인식 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AI 스피커 ‘카카오미니’는 지난해부터 LG전자의 2020년형 스마트TV에도 쓰이고 있다. KT의 ‘기가지니’와 SK텔레콤의 ‘NUGU(누구)’는 각각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와 내비게이션 서비스에서 영역대를 넓히고 있다.

자율주행차 역시 빅데이터와 AI가 성공적으로 결합된 영역이다. 20일 제너럴모터스(GM)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율주행 협업 소식이 전해진 배경에도 ‘데이터 저장’의 활로가 필요했단 분석이 따른다. 기술 개발의 선두를 점한 테슬라는 이미 자체 확보한 35억㎞의 도로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실체가 없다며 폄하를 받던 자율주행차 기술은 이런 데이터 구축을 기반으로 최근 열린 ‘CES 2021’에서 2025년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긍정적 관측을 받아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