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젠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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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젠텍에게 올해는 매우 중요한 해다. 처음으로 ‘수젠텍’ 이름을 내걸고 대형 진단기기 사업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지금껏 진단기기 매출의 상당 부분은 제조자개발생산(ODM)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ODM 사업을 축소하고 독자 브랜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는 그 결실을 거두는 해다. 기존 진단기기에 정보기술(IT) 기술을 접목시켜 정확성과 사용 편의성을 높인 ‘업그레이드’ 버전을 판매할 예정이다. 손미진 수젠텍 대표는 “독자 브랜드로 출시하는 다중면역블롯은 수익성을 높이는 성장 모멘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젠텍’ 브랜드로 대형 진단기기 시장에 출사표

수젠텍은 2020년 2분기 코로나 물살을 타고 24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도 201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3분기에는 매출이 41억 원으로 전분기 대비 83%가 감소했다. 유전자증폭(PCR) 방식에 비해 저렴하고 진단시간이 빠른 항체진단에 집중한 탓이다. 세계적으로 부족했던 PCR 분석 장비들이 하나둘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코로나 진단 시장이 PCR 진단 쪽으로 기울었다.

수젠텍은 이런 뼈아픈 실수를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 항체진단 기술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다중진단에 집중하기로 한 것. 수젠텍은 지난해 10월 알레르기 동시진단시약 ‘SGTi-알러지 스크린’과 전자동 다중면역블롯 ‘S-블롯3(S-blot3)’을 공개했다. 최초의 ‘메이드 인 수젠텍’ 진단기기다. 알레르기를 다중진단하는 기업 중 진단기기와 키트를 모두 개발하는 회사는 수젠텍이 유일하다.

SGTi-알러지 스크린은 알레르기 유발 물질 102종에 대한 알레르기 유무를 동시에 진단한다. 혈액 한 방울(50㎍)만 있으면 3시간 안에 100여 종에 대한 알레르기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알레르기 진단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약 4조 원 규모다. 내년에는 6조 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알레르기 진단법은 피부단자검사다. 피부단자검사는 등이나 팔 부근의 피부에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소량 주입한 뒤 반응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붉게 올라오는 등의 위험성이 있는 데다 한 번에 하나의 알레르기 성분만을 검사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문제들로 최근 5년간 알레르기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검사법이 다중진단이다.

현재 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은 다국적 의료기기 회사인 퍼킨엘머의 자회사인 유로이뮨이다. 손 대표는 “유로이뮨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진단기기의 내재화”라며 “수젠텍의 진단기기는 자사의 진단키트에 최적화돼 있어 분석 성능이 뛰어나고, 앞으로도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Issue part.2 - 체외진단산업의 현재와 미래] 수젠텍 "국내 기업이 대형 진단기기 시장 강자되는 모습 보여줄 것"
다중진단시약은 확인해야 하는 질병이 수십 가지다 보니 양산 과정이 복잡하다. 때문에 시약의 제조 단위인 로트(LOT) 간 농도나 순도 등에 편차가 발생할 수 있어 후보정 과정이 필요하다. 수젠텍은 이런 다중진단의 특성을 고려해 로트마다 시약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QR코드를 도입했다. ‘QR 매니지먼트’ 시스템이다. 진단기기에는 시약의 정보를 토대로 진단 결과를 보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진단의 정확도를 높였다. 손 대표는 “내부 연구에 따르면 SGTi-알러지 스크린의 정확도는 약 99%”라고 말했다.

SGTi-알러지 스크린은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제조허가를 받아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유럽 CE 인증을 받아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이다. 현재 중국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손 대표는 “중국 파트너사인 와이엘로(YHLO)가 올해 상반기에 중국 식품의약품관리총국(CFDA)의 허가를 받아 하반기에는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라며 “이미 중국 대형병원들에는 와이엘로를 통해 SGTi-알러지 스크린을 적용할 수 있는 진단기기가 약 600대 설치돼 있어 허가만 나오면 바로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수젠텍은 알레르기를 시작으로 자가면역질환, 알츠하이머병 등 여러 가지 바이오마커가 필요한 질병을 위주로 후속 진단 파이프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자가면역질환 동시진단시약은 이미 개발을 마치고 판매를 시작한 제품으로, 17종의 바이오마커에 대한 진단이 가능하다.

랩 시장을 겨냥한 S-블롯3

S-블롯3의 개발로 수젠텍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랩(lab) 시장(상급 대형병원), 클리닉 시장(중소형 병원), 홈테스트 시장에 맞는 플랫폼을 다 갖춘 회사가 됐다. 대형 진단기기인 S-블롯3은 랩 시장을 겨냥한 제품이다. 손 대표는 “대부분의 진단기업들이 클리닉 시장만을 목표로 한다”며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되 기존의 시장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Issue part.2 - 체외진단산업의 현재와 미래] 수젠텍 "국내 기업이 대형 진단기기 시장 강자되는 모습 보여줄 것"
중소형 병원에서 사용되는 진단기기는 주로 작은 크기의 현장진단(POCT) 기기다. 현장진단 기기는 사용이 편리하고 진단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민감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수젠텍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시간 분해 형광 신호 분석기술(Inclix TRF)’을 개발해 지난해 6월 국내 특허권을 취득했다.

유로피움(Europium)이라는 차세대 형광물질을 이용해 기존의 형광 신호 분석 기술에서 노이즈를 제거하고 결과값 오류를 제거해 민감도를 최대 100배 높이는 기술이다. 손 대표는 “형광물질은 여기광, 배경광, 자체형광 등 진단에 방해되는 빛들이 많아 ‘해상도’가 떨어진다”며 “우리 기술은 불필요한 빛들과 확인해야 하는 빛을 시간적으로 분리해 감도를 높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홈테스트 시장을 대비하는 진단기기의 디지털화

경쟁이 치열한 클리닉 시장에 비해 홈테스트 시장은 아직 초기단계다. 국내에서 홈테스트가 가능한 진단키트는 혈당측정과 임신진단 정도다. 손 대표는 “단순히 수치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질병이 있는지 없는지를 환자 본인이 판단하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식약처가 판단한 것”이라며 “IT를 통한 관리 시스템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Issue part.2 - 체외진단산업의 현재와 미래] 수젠텍 "국내 기업이 대형 진단기기 시장 강자되는 모습 보여줄 것"
이 회사는 홈테스트 시장을 대비하기 위해 임신진단기부터 디지털화했다. 수젠텍의 대표 파이프라인 중 하나인 ‘슈얼리 스마트 퍼스널케어’는 임신과 배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기기다. 앱을 통해 정확한 호르몬 수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임신진단기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줄일 수 있다. 현재 이런 디지털 방식의 임신·배란 진단기를 개발한 회사는 세계적으로 3곳뿐이다. 손 대표는 “난임 부부가 늘고 있어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임신진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배란과 임신을 동시에 ‘정량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디지털기기라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