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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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서 정상 면역반응이 멈추지 않으면 조직이 계속 손상되고, 이로 인해 염증이 생겨 환자의 증상이 발현된다고 했다. 즉, 염증의 시작은 곧 정상 면역반응의 시작과 동일한 기전이다. 단지 면역반응이 멈추어야 할 때 멈추지 않는 점만 다를 뿐이다. 이번 호에서는 염증의 시작 기전을 이해하기 위해 정상 면역반응의 시작 기전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1800년대 말부터 감염성 질환에 대한 백신 성공 사례가 학계에 보고되기 시작하며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라는 질문이 생겨났다. 그 시절은 백신의 유효성분(API)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때다. 그래서 이 질문 안에는 “무엇이 유효성분이지?”, “유효성분이 체내에 있는 무엇을 어떻게 변화하지?”, “한번 주사하면 몇 해가 지나도 그 병에 안 걸리는 이유가 뭐지? 즉 사람 몸 안의 무엇이 어떻게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 거지?”와 같은 궁금증이 담겨 있다. 이런 물음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백신 유효성분과 사람 몸속 그 무엇(?)의 최초 만남”에 대한 궁금증이다.

세포의 피아 감별에 대한 역사적 고찰

1800년대 초는 생명체의 기본 단위를 세포라고 생각하는 세포이론이 무르익던 터라, 백신의 유효성분을 사람 몸 안에 있는 세포가 인식해 앞서 질문한 일들이 체내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사람의 세포가 유효성분을 만나서 백신의 효능이 생기고 지속된다고 생각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질문들이 또다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주사된 백신의 유효성분을 체내 세포가 최초로 인식한다고 가정하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수조 개의 내인성 물질들에 대해 왜 세포들은 전혀 반응을 안 하는 것일까.

그 시절의 정보량으로 보면 대답은 간결하다. 병원체들에서 유래된 백신 유효성분은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 사람 몸 안의 세포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물질들이다. 그렇기에 “우리 몸 안의 세포는 피아(彼我·self-non-self)를 감별할 능력이 있어서 외부로부터 들어온 병원체(non-self)만을 인식하고 반응한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몸의 세포가 피아를 감별하는가. 1950년대 말 호주의 프랭크 버넷 박사는 고전적인 세포이론에서 한 단계 더 진화된 ‘세포의 클론 선택 이론’을 제시한다. 생명을 구성하는 단위 세포들은 각각 고유한 기능을 담당하는데 환경에 존재하는 수조 개의 물질들을 인식할 수 있는 개별 세포들이 체내에 존재한다. 하나의 세포는 환경에서 생체 내로 도입된 non-self 물질 하나를 인식하도록 만들어진다는 설명이다. 즉, 천연두 백신의 유효성분 중 A라는 물질을 인식할 수 있는 A’라는 세포 클론이 혈액 안에 떠돌다가 A가 몸 안에 들어오면 이를 인식해서 수천 개의 동일한 A’세포 클론으로 숫자가 불어난다는 것이다.

면역 관용 현상에 대한 증명과 오류들

살다 보면 여러 당면한 상황에서 가장 직관적인 대답이 대다수 옳긴 하다. 하지만 직관적 해석에 의해 위험한 논리 오류의 늪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의학 분야에서도 관찰한 현상에 대한 직관적인 해석이 위험한 논리적 혼란을 초래하는 사례를 종종 본다.

버넷 박사가 제시한 ‘세포의 클론 선택이론’은 어떻게 몸 안의 세포들이 외부 환경에서 체내로 들어온 non-self 물질만을 인식하고 우리 몸을 구성하는 self 물질들은 인식을 안 하는가라는 질문을 설명하지 못한다. 버넷과 함께 일했던 피터 메다바 박사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1960년에 버넷과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다.

메다바에 의하면 태아가 엄마의 자궁 내에서 성장하는 동안에 태아의 몸 안에 있는 모든 면역세포가 만들어진다. 이때 태아는 환경으로부터 완벽히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태아 몸 안에 있는 세포가 이 시기 만들어지면서 어떤 물질을 만나게 되면 그 물질은 내 몸의 구성 성분이므로 이 물질과 반응하면 안 된다. 따라서 태아 몸을 구성하는 물질에 반응하는 면역세포들은 태아가 출산되기 전에 모두 태아 몸 안에서 제거된다. ‘면역 관용 현상’에 대한 최초의 실험적 증명이다. 버넷 이론과 메다바의 실험적 증명에 의하면 자궁 속에서 태아가 성장하면서 우리 몸 안의 면역세포들은 이미 non-self와만 반응하도록 되어 있고, 태아가 출산한 이후로는 사람의 몸 안에 self와 반응하는 면역세포는 존재할수가 없다. 그러나 20년이 훌쩍 지난 1980년대 말, 이 관찰에 반하는 현상들이 보고됐다.

항체의 다양성에 대한 질문

1987년에 수수무 토네가와 박사는 항체의 다양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관찰해 노벨상을 수상한다. 항체는 우리 몸 안의 면역세포 중 하나인 B세포가 만든다. 환경에 존재하는 수조 개의 개별 물질들에 반응하는 각각의 항체를 만들기 위해 B세포는 수조 개의 개별 항체에 해당하는 각각의 유전자를 세포 안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B세포 하나의 유전자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용량이 계산되질 않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토네가와 박사는 ‘체세포 과변이 현상’을 처음으로 제안하고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토네가와에 의하면 B세포는 레고와 같은 작은 유전자들을 수십만 개를 가지고 있다. B세포가 환경의 물질을 만나면 이들 수십 개의 레고가 무작위적으로 조합돼 대략 3000억 개의 다양한 항체를 만들게 된다.

또한 한번 만들어진 항체는 병원체에 더욱 잘 붙게 친화도가 성숙된다. 이러한 항체의 친화도 성숙을 위해 무작위적으로 조합된 레고가 다시 한번 더 무작위적인 유전자 돌연변이를 겪게 되고, 이 돌연변이된 항체들 중에서 병원체와 가장 잘 붙는 항체만이 선택돼 대량 생산된다.
이 과정을 상세히 보면 버넷과 메다바의 생각에 반하는 현상이 도출된다.

그리고 남은 질문들

메다바는 자궁 내에서 성장하는 동안 태아의 몸 안에서 만들어진 B세포의 다양성은 출산 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토네가와에 의하면 태아가 출산 후 성장하면서 B세포의 다양성은 지속적으로 변한다. 즉 사람이 성장하면서 체내 B세포의 항체 유전자 레고들의 재조합 단계 또는 이미 재조합이 끝난 항체 레고들의 무작위적인 돌연변이 단계에서 non-self뿐만 아니라 self에 반응하는 항체도 함께 만들어질 개연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메다바나 토네가와 모두 이렇게 무작위적인 조합과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에 의해 만들어지는 항체가 건강한 사람에서 자가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 호에서 2중 신호 모델을 살펴보기로 한다.

천연두 백신이 개발되고 200년이 지난 1980년대 말까지 천연두 백신 제형의 약물 작용기전에 대한 명확한 자료 제출 없이 식약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고 시중에 출시됐고 천연두는 퇴치됐다. 면역조절제의 작용기전 자료 제출 범위에 대한 식약처의 섬세한 규제가 인류에게 득일지, 독일지 한번 고민해 볼 때다.
[성승용의 면역학 강의] 염증의 시작
성승용

몸속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을 밝힌 논문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면역학 전문가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공중보건의사를 마치고,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에서 3년간 교환교수로 근무했다.
이후 서울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로 재임 중이며, 아토피 치료제 등을 개발 중인 샤페론의 대표이사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