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허문찬 기자
사진=허문찬 기자
‘약대 출신 첫 벤처캐피털리스트.’

오는 8월이 되면 벤처투자업계에 입문한 지 꼬박 20년이 되는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유한양행 연구원이던 그는 2001년 8월 창업투자회사 한국바이오기술투자에 입사하며 벤처투자업계에 뛰어들었다. 지난 12월 한국투자파트너스 최고책임투자자(CIO)에서 대표이사(CEO)로 승진한 황만순 대표는 국내 바이오 투자 1세대로 꼽힌다. 20년 동안 바이오기업에 투자해 온 덕분에 증시에 상장한 바이오 벤처기업 둘 중 하나는 황 대표의 손을 거쳤다는 진담반 농담반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그는 현재 국내 바이오 투자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벤처캐피털리스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 비결을 물었다. 그는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투자업계 입문 후 20년 동안 임상시험신청(IND)만 100번, 기업공개(IPO)만 스무 번 넘게 경험했다”며 “이렇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단순 투자자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컨설팅을 나선 덕분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에게 지난 20년 동안 어떤 투자를 해왔는지, 그리고 국내 바이오 시장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물었다.

20년 동안 ‘무료 컨설턴트’ 자처

황 대표는 벤처캐피털(VC)업계를 영락없는 ‘승자 독식의 세계’라고 묘사했다. 좋은 기업에 많이 투자하고 IND, IPO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며 많은 경험을 쌓아본 심사역이 그렇지 않은 심사역보다 더 잘할 수밖에 없는 특성 때문이라고 했다. 정보기술(IT) 등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성과물이 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선구안이 중요한 대목이다. 황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유명한 VC는 고령의 의료기기 투자심사역이 은퇴하자 이 분야의 투자파트를 아예 버렸다”며 “심사역도 결국 경험이 생명”이라고 말했다. 국내 ‘톱티어’ 벤처캐피털리스트로 명성을 얻게 된 비결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제약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경험도 지금까지 오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황 대표는 “만약 저에게 신약 개발 경험이 없었다면 바이오벤처 대표들이 제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승자 독식을 위해선 선결조건이 있다. 우선 이겨야 한다. 황 대표는 “남들과 다른 심사역이 되기 위한 방편으로 기업들에게 무료 컨설턴트를 자처하고 나섰다”며 “요즘도 많은 심사역들이 투자만 해놓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데 그래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건 모두 동원해 돕고 지원해야 집행한 투자가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커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VC가 자본 투자는 기본이고 인적 네트워크, 경험까지 모든 걸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에서 내부 기강을 잡거나 인원을 감축하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면 VC가 기꺼이 악역을 도맡아야 한다고도 했다.
[투자 고수 열전]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 “컨설팅하듯 투자했죠”
후속 투자가 유니콘을 만든다

황 대표의 투자 성공 비결은 뭘까. 그는 망설임 없이 적극적인 후속 투자를 꼽았다. 그는 “단순하게 후속 투자만 하라는 게 아니라 리드 투자자(또는 앵커 투자자)를 맡아 기업의 IPO까지 끌고 가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체외진단 전문기업 프리시젼바이오가 대표적이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두 차례에 걸쳐 앵커 투자자로 참여했다.
황 대표는 “유니콘 기업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라며 “앵커 투자자 역할을 맡는 VC가 시리즈 A, B, C, D 등을 차곡차곡 끌고 가다 보면 기업가치가 어느새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조 원에 이르는 비상장 기업) 수준으로 커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국내에선 아직 VC의 후속 투자가 제한적이다. 하지만 해외에선 시리즈 D, E는 물론 시리즈 K, L이 이뤄질 정도로 꾸준하고 단계적인 후속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시리즈 D 정도에 그치는 국내 환경과는 대조적이다.

황 대표가 꼽는 후속 투자의 장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벤처기업의 예측 가능한 자금 확보 기능과 안정적인 기업가치 성장이다. 그는 “기업과 함께 안정적인 마일스톤을 설정하고 달성하도록 돕는 것이 VC의 역할”이라고 했다. 반대로 여기서 벗어나 비상장 기업의 가치가 너무 높게 뛰어 거품이 끼면 이후 후속 투자가 어려워질 수 있고 결국 IPO는 요원해진다고도 했다. 황 대표는 “터무니없이 기업가치를 고평가하며 투자하겠다는 투자자를 기업 CEO들이 경계해야 하는 이유”라고도 했다.

후속 투자의 또 다른 장점은 VC 내부 심사역들의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점이다. 황 대표는 “신규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실사를 비롯해 회사를 파악하는 데만 적잖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며 “이에 비하면 후속 투자에 드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했다. 그는 “신규 투자 3건을 하는 것보다 한 회사에 3번 투자하는 게 더 생산적이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한투파 어떻게 달라지나

바이오 분야 전문투자자가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고 나니 한국투자파트너스의 포트폴리오 구성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도 궁금해졌다. 황 대표는 “전체 포트폴리오 중 바이오 포트폴리오 비중이 바뀌거나 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이미 VC업계 평균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높은 비중으로 바이오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VC업계 전체 포트폴리오 구성에서 바이오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적으로 30% 내외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투자파트너스의 바이오 포트폴리오 비중은 37%로 업계 평균 대비 7%포인트 더 높다. 세부적인 구성은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이다. 그는 “세계가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며 “저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확률이 100%라고 본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코로나19 때문에 바뀐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방식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의 시장에 대비한 아이템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른바 ‘하우스(H.O.U.S.E)’ 분야다. 각각 헬스케어(Heathlcare), 온라인(Online), 언택트(Untact), 스마트 인프라스트럭처(Smart infrastructure), 이코노미 앳 홈(Economy at home)의 첫 글자를 땄다. 황 대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같은 기조로 투자를 시작했다”며 “런드리고나 오아시스 등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런드리고는 비대면 세탁 전문 서비스업체이며, 오아시스는 ‘제2의 마켓컬리’라 불리는 온·오프라인 신선식품 유통기업이다. 두 곳 모두 이코노미앳홈에 속한다.

신규 투자 기업 중 헬스케어 분야에서 눈에 띄는 곳은 에비드넷이다. 에비드넷은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임상시험 성공 확률을 높이는 의료데이터 플랫폼 벤처기업이다. 코로나19 이후 임상시험수탁기관(CRO)에 일부 마비가 올 만큼 임상시험의 중요도가 커졌다는 점에서 에비드넷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이 회사의 시리즈A 투자에 앵커 투자자로 참여해 100억 원을 투입했다.

반면 해외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는 당분간 축소될 것으로 봤다. 황 대표는 “코로나19 때문에 해외로 현장 실사를 나갈 수가 없으니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했다. 대신 “해외기업이라도 후속투자는 꾸준히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자 고수 열전]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 “컨설팅하듯 투자했죠”
앞으로의 투자 계획은

황 대표가 꼽는 유망 바이오 분야는 희귀질환 및 난치성 질환 시장이다. 최근 투자업계에서 주목받는 분야이기도 하다. 희귀질환 및 난치성 질환 치료제는 환자 수가 적은 데다 대개 치료 대안이 없어 임상 2상 결과만으로도 판매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허가 절차도 다른 치료제보다 더 신속하게 이뤄진다. 황 대표는 “빠른 라이선스 아웃(LO)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과 바이오가 융합되는 분야가 뜰 것으로 내다봤다.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가 신약 개발과 어우러지는 분야가 주목받을 것이란 얘기다. 디지털 치료제 또한 향후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분야로 꼽았다. 황 대표는 “뇌질환은 전통적인 바이오 치료제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행동 및 심리 개선이나 치료에 효과가 있는 디지털 치료제가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바이오기업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찾아온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고도 했다. 황 대표는 “미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에 한국산 진단키트가 공급됐다”며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상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유행으로 한국 바이오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며 “라이선스 아웃뿐 아니라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고수 열전]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 “컨설팅하듯 투자했죠”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