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part.2 - 체외진단산업의 현재와 미래] 피씨엘, 혈액진단시장서 글로벌 진단기업 반열에 올라선다
피씨엘은 64개 질병을 한 번에 진단할 수 있는 다중면역진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10여 개 질병의 동시진단이 가능한 루미넥스보다 한 번에 검출할 수 있는 질병의 수가 많다.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피씨엘은 글로벌 진단 기업들이 장악한 혈액선별시장에 도전한다.

피씨엘은 LG화학에서 선임연구원을 지냈고 동국대 의생명공학과 교수를 역임 중인 김소연 대표가 2008년 세운 면역진단기기 개발 기업이다. 김 대표는 미국 코넬대에서 반도체 기술을 질병 진단에 이용하는 바이오칩 기술과 압타머 항체 기술을 바탕으로 에이즈 감염 경로를 밝히는 연구를 수행했던 진단 전문가다.

이 회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유전자증폭(PCR) 진단, 항원진단, 항체진단 등에서 제품을 수출 중이다. 올해는 코로나19 매출 성과를 바탕으로 그간 공들여왔던 혈액선별기 매출 확대에 나선다. 장기적으론 연간 30조 원 규모인 세계 혈액선별시장에서 10% 이상의 점유율을 가져오겠다는 게 김 대표의 목표다.

정확도 100% 요구하는 혈액선별시장 진출

혈액선별시장은 로슈, 애보트, 루미넥스 등 글로벌 진단기업들이 과점하고 있다. 스위스 로슈, 미국 애보트는 각각 124년, 132년 역사를 자랑하는 진단기업이다. 루미넥스가 1995년 세워져 비교적 신생 기업에 속한다. 사업 기간이 애보트의 11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피씨엘이 이들 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건 독보적인 기술력 때문이다. 이 회사는 한 대의 진단기기와 하나의 시약으로 최대 64개 질병을 한꺼번에 검사할 수 있는 다중면역진단 기술인 ‘SG캡’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혈액선별은 헌혈받은 혈액에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체가 있는지 수혈하기 전에 확인하는 절차다. 수혈이 이뤄질 표본에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단 하나만 있어도 치명적인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수천 개에 달하는 혈액 샘플에서 100%의 정확도로 병원체를 검출할 수 있는 진단기업만 혈액선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피씨엘은 에이즈로 알려진 후천성면역결핍증을 일으키는 HIV바이러스, B형·C형 간염 바이러스, 백혈병을 일으키는 T림프구성바이러스, 매독 등을 하나의 장비로 동시에 진단할 수 있다. 김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타사의 기존 기술을 적용해도 한 대의 장비로 다양한 질병을 진단할 순 있지만, 바이러스의 종류마다 시약이 달라져야 하는 한계가 있다.

단백질 3차원 고정시켜 반응률 높인 SG캡 기술

면역진단에선 1970년대 이후 엘라이자(ELISA) 방식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바이러스 단백질 항원과 결합할 수 있는 항체를 표면에 코팅시킨 플레이트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 플레이트에 바이러스 항원이 담긴 검체를 넣으면 항체와 항원의 결합이 이뤄진다. 이후 세척하면 바닥에 고정된 항체와 결합한 항원만 남고 불순물은 제거된다. 바이러스 항원이 아닌 항체 형성 여부를 확인할 때도 고정되는 물질이 달라질 뿐 같은 방식이 적용된다.

그런데 바닥에 항체가 붙어 있는 상태로는 3차원의 복잡한 구조를 가진 항체와 항원의 결합이 쉽게 이뤄지기 어렵다. 항원과 달라붙는 부위인 항체의 리셉터가 바닥에 붙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씨엘은 액체에서 고체인 젤로 변하는 물질인 ‘졸겔’을 이용해 액체 상태에서 떠다니는 단백질을 고정시킬 수 있다.

김 대표는 “액체 상태이던 푸딩이 굳어가면서 건더기로 있던 건포도 위치가 고정되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고 설명했다. 기존 방식에선 항원·항체의 반응 비율이 1% 수준이지만 SG캡 기술을 적용하면 반응률이 60% 이상으로 뛴다. 반응률이 높으니 더 적은 단백질과 혈액을 써서 다양한 질병을 진단하는 게 가능하다.
[Issue part.2 - 체외진단산업의 현재와 미래] 피씨엘, 혈액진단시장서 글로벌 진단기업 반열에 올라선다
피씨엘은 국내 혈액선별 물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대한적십자사 혈액선별사업 입찰에 도전한다. 대한적십자사는 하루에만 1만6000개의 시약을 사용해 연간 100억 원대 규모의 혈액선별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혈액선별기 ‘하이수’를 가진 피씨엘은 LG화학, 동아에스티, 지멘스헬시니어스 등과 진단시약을 함께 공급하는 방식으로 입찰에 참여한다.

지난해 한마음혈액원에도 하이수를 납품했다. 현재 스페인, 이탈리아 등 9개국에서 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독일에선 이미 제품 허가를 받았다. 인도, 아프리카 등 소규모 혈액선별이 이뤄지는 지역을 대상으로 한 제품도 만들었다. 소규모 혈액선별기인 ‘PCLOK2’는 지난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제품 승인을 받았다.

김 대표는 “이 면역진단장비와 함께 암이나 자가면역질환 등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도 공급하겠다”며 “췌장암, 간암, 대장암, 난소암, 전립선암 등 5개 암종에 대해 30분 안에 동시진단이 가능한 제품을 개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제품 허가, 유럽 CE 인증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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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항원진단키트 공급 계속

피씨엘은 코로나19 진단제품도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전체 매출의 50% 이상이 항원진단키트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12월 중국서 코로나19 항체를 미리 확보해 진단키트 개발에 나섰다. 지난해 4분기엔 유럽 현지 유통사를 통해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를 대상으로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김 대표는 “이들 국가에 1~2주마다 꾸준히 제품 선적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오는 6월까지 진단키트 유럽 공급이 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타액(침)으로 가정에서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항원진단키트도 유럽에 공급 중이다. 민감도는 94%로 이 회사의 기존 코로나19 항원진단제품의 민감도인 96%와 비슷한 수준이다. 백신 접종 이후 면역력 보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중화항체 진단제품도 개발을 마쳤다. 김 대표는 “감염 초기에 큰 효과가 있는 항바이러스 치료제가 나오면 높은 정확도로 10~20분 내에 결과 확인이 가능한 항원진단키트가 코로나19 치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씨엘은 개와 고양이가 백신을 맞은 뒤 항체가 형성됐는지를 확인하는 제품도 개발했다. 돼지열병 진단 제품도 개발 중이다. 김 대표는 “반려동물은 사람과 달리 공포감으로 인해 많은 양의 혈액을 뽑기가 어렵다”며 “적은 양의 혈액으로도 여러 감염병을 진단할 수 있는 다중면역진단 기술이 반려동물 진단에서도 쓰일 수 있다”고 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