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피씨엘 대표 “세계 혈액선별 시장 10% 가져오겠다”
“세계 30조원 규모의 혈액선별시장에서 점유율 10%를 가져오겠습니다. 독보적인 다중면역진단 기술력으로 세계적인 진단기업과도 경쟁이 가능합니다.”

김소연 피씨엘 대표는 “대한적십자사가 진행하는 혈액선별기 입찰 공고에 대기업과 함께 콘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피씨엘은 최대 64개 질병을 장비 하나, 시약 하나로 진단할 수 있는 다중면역진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연 100억원 규모 적십자 입찰 참여

피씨엘은 대한적십자사의 면역검사시스템 일원화 사업 입찰에 LG화학 동아에스티 지멘스헬시니어스와 콘소시엄을 이뤄 참여한다고 24일 밝혔다. 동아에스티 및 지멘스헬시니어스와는 입찰과 관련한 업무협약을 이날 체결했다. LG화학과는 기밀유지협약(NDA)을 체결하고 협약 체결을 진행 중이다. 피씨엘은 이번 입찰을 통해 대한적십자사에 최소 5년간 혈액선별 관련 제품을 연간 100억원 이상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혈액선별은 헌혈받은 혈액을 수혈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절차다. 바이러스 감염이 되지 않은 건강한 혈액만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해서다. 수혈이 이뤄질 표본 중 단 한 개라도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담긴 채 공급되면 치명적인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혈액선별 시장은 짧은 시간 안에 수천 개에 달하는 혈액 샘플에서 정확도 100%를 입증할 수 있는 기업만 진출이 가능한 영역이다.

세계 혈액선별 시장은 로슈 애보트 루미넥스 글리포스 등 소수의 대형 진단기업들이 과점하고 있다. 김 대표는 “세계 혈액선별 시장 규모는 연간 30조원 수준”이라며 “정확도 100%와 높은 신뢰도를 요구하는 만큼, 후발주자의 시장 진입이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국내선 대한적십자사와 한마음혈액원이 혈액선별을 담당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전체 물량의 90% 이상을 소화한다. 피씨엘은 올해 한마음혈액원에 혈액선별기를 공급하며 실적을 쌓았다.

대한적십자사가 진행하는 혈액선별 규모는 연간 10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에 사용되는 시약의 수만 1만6000개 수준이다. 국내 혈액선별에서는 에이즈로 알려진 후천성면역결핍증을 일으키는 HIV바이러스, B형 간염을 일으키는 HBV바이러스, C형 간염을 일으키는 HCV바이러스, T세포 백혈병을 일으키는 T림프구성바이러스의 유무를 확인한다. 김 대표는 “이번 입찰을 따내면 향후 5년간 혈액선별기와 이 장비에 쓰는 시약 공급이 가능하다”며 “로슈 애보트 등 글로벌 진단기업과의 입찰 경쟁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64개 질병 동시진단

피씨엘은 최대 64개 질병을 한 번에 진단할 수 있는 ‘SG캡’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면역진단에선 1970년대 이후 'ELISA' 방식이 주로 쓰여왔다. 바이러스 단백질 항원과 결합할 수 있는 항체를 표면에 코팅시킨 플레이트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 플레이트에 바이러스 항원이 담긴 검체를 넣으면 항원·항체 간 결합이 이뤄진다. 이후 세척 과정을 거치면 바닥에 고정된 항체와 결합한 항원만 남고 불순물이 제거된다.

이 방식은 바닥에 단백질을 고정시켜야 하다보니 한계가 있었다. 항원, 항체와 같은 단백질은 3차원 구조로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다. 바닥에 항체가 붙어 있는 상태론 항체·항원 간 결합이 쉽게 이뤄지기 어렵다.
김소연 피씨엘 대표 “세계 혈액선별 시장 10% 가져오겠다”
피씨엘은 액체에서 고체로 변하는 물질인 ‘졸겔’을 이용해 액체 상태에서 떠다니는 단백질을 고정시킬 수 있다. 액체 상태이던 푸딩이 굳어가면서 건더기의 위치가 고정되는 과정과 흡사하다. ELISA 방식에선 항원·항체의 반응 비율이 1% 수준이지만 SG캡 기술을 적용하면 반응률이 60% 이상으로 뛴다. 반응률이 높으니 더 적은 단백질과 혈액을 써서 다양한 질병을 진단하는 게 가능해진다. 해외에선 루미넥스도 다중진단이 가능하지만 10여개 질병을 동시진단 하는 수준이다.

제품 소형화해 해외 진출

피씨엘은 2018년 대한적십자사 혈액선별기 입찰 공고에 참여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전략 수정이 필요했다. 이번엔 콘소시엄을 이뤄 재도전한다. 면역진단용 혈액선별기를 피씨엘이 공급하고, 국내 혈액선별에 쓰이는 시약 4종을 피씨엘 LG화학 동아에스티 지멘스헬스니어스가 1종씩 나눠서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멘스헬스니어스와 동아에스티는 각각 혈액선별기와 시약을 대한적십자사에 공급했던 경험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술력과 경험을 고루 갖춘 팀을 이룬 셈이다.

국내 시장에서 확보한 매출은 해외 진출 성과로 이어질 전망이다. 그간 피씨엘은 해외에 혈액선별기를 공급하는 데 애를 먹었다. 기술력이 있음에도 신뢰도가 요구되는 업계 특성 상 해외 혈액원들이 상용화 이력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선 민간 주도로 혈액선별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하루 1만6000개의 시약을 소화하는 대한적십자사의 혈액선별을 통해 대규모 혈액선별 능력을 입증하면, 해외에서도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란 게 김 대표의 판단이다.

민간에서 소규모로 이뤄지는 해외 시장의 특성을 반영한 제품 개발도 마쳤다. 기존 혈액선별기를 소형화한 제품인 ‘PCLOK2’는 이달 중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제품 승인을 받았다. 바이러스 감염 여부 외에 바이러스의 양까지 정량 분석이 가능한 제품이다. 김 대표는 “세계 혈액선별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0%를 확보해, 연간 3조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체외진단 기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