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엔비디아 등 AI 반도체 경쟁 '사활'
"작은 몸집의 스타트업도 잘할 수 있다"

AI 코어 설계 마쳐…내년 초 테이프 아웃
자율주행·데이터센터 등 세부시장 공략
"한국은 반도체 강국…미국보다 창업에 유리"
엔비디아, 인텔, 구글 등 세계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이 인공지능(AI) 반도체 패권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AI 반도체 인재는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신생 분야인 만큼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경험해본 기술자가 많지 않아서다.

최근 설립된 리벨리온은 ‘국가대표급’ AI 반도체 개발자들이 차린 스타트업이다. IBM 왓슨연구소에서 AI 반도체 수석 설계자를 맡은 오진욱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공동 창업했다는 것만으로도 업계가 들썩였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인텔·스페이스X를 거쳐 모건스탠리에서 퀀트 개발자로 일한 박성현 최고경영자(CEO), 의료 AI 스타트업 루닛에서 딥러닝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한 김효은 최고제품책임자(CPO)도 의기투합했다. 임직원 11명 중 8명이 박사 학위 소지자다.

리벨리온은 창업 3개월만에 AI 반도체의 핵심으로 꼽히는 AI 코어 설계를 마쳤다. 박 대표는 “이 제품이 최근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세계적 수준의 성능을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며 “내년 초 ‘테이프 아웃’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설계도를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회사)에 보내는 테이프 아웃에 돌입한다는 것은 생산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다. 높은 성능과 에너지효율을 가진 AI 코어를 칩으로 제작해 시장 수요를 확인한 뒤 자율주행·데이터센터·금융 등 각 영역에 특화된 시스템온칩(SoC)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리벨리온은 최근 카카오벤처스, 신한캐피탈 등으로부터 총 55억원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아직 제품이 나오기 전 단계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투자 규모다. 다음은 박 CEO, 오 CTO, 김 CPO와의 문답 내용.
오진욱 리벨리온 CTO(왼쪽부터), 박성현 CEO, 신성호 공동창업자, 김효은 CPO. 리벨리온 제공

오진욱 리벨리온 CTO(왼쪽부터), 박성현 CEO, 신성호 공동창업자, 김효은 CPO. 리벨리온 제공

◎카카오벤처스 등으로부터 55억원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제품 생산 전 단계에선 이례적인 규모다.

박성현 CEO=AI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이 한몫을 했다. 지금 한국에서 AI 반도체는 삼성전자의 D램 이후 산업 발전을 견인할 ‘민족의 숙원’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진욱 CTO 등 우수한 인력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해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투자자들이 평가한 것 같다. 김효은 CPO는 루닛의 초창기부터 함께해 회사를 키웠다. 스타트업의 한 사이클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신성호 공동창업자와 부윤호 수석은 세계적인 수준의 AI 알고리즘 연구자들이고, 김현숙 수석과 배재완 수석은 컴파일러와 SoC 설계에서 15년 이상의 산업계 경험을 지닌 베테랑 엔지니어들이다. 리벨리온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의 역량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신진 연구자들과 베테랑 엔지니어들과의 균형도 잡힌 훌륭한 초기팀이라 자부한다.

◎엔비디아, 인텔, 구글 등 쟁쟁한 IT 회사들이 경쟁하고 있는 분야다. 스타트업이 잘할 수 있을까.

오 CTO=IBM에서 AI 반도체 관련된 일을 계속 해왔고, 관련 외부 기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이 회사들은 고객을 상정해놓고 AI 반도체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장점이 부각되기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AI 기술은 고객과 하드웨어가 연결돼야 한다. 각 산업별 최적화된 칩을 만들면 통할 수 있겠다고 봤다.

박 CEO=AI 반도체에서는 세부 산업마다 승자가 나올 것이다. 구글, 인텔 등 덩치가 큰 회사들은 범용성이 뛰어난 하나의 제품으로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러 용도가 있지만 단일 성능으로는 부족한 맥가이버칼과 같다. AI 반도체의 적용 분야는 자율주행, 금융, 클라우드, 헬스케어 등 다양하다. 스타트업은 몸집이 가볍기 때문에 하나의 영역에 집중할 수 있다. 자본 집약적인 영역에서는 대기업을 이길 수 없겠지만, 기술이 먼저고 자본이 따라오는 AI 반도체와 같은 분야에선 스타트업이 잘할 수 있다.

김 CPO=루닛에 있을 때에도 대기업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에서 스타트업이 과연 잘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뛰어난 기술만 있다면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에 기회가 더 많다고 본다. 근본 기술력에서 차이가 나지 않으면 유연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춘 스타트업이 잘할 수 있다.

◎리벨리온은 어떤 산업 영역에 집중할 계획인가.

박 CEO=일단 우리가 갖춘 기술력을 시장에 증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은 가장 핵심이 되는 AI 코어를 개발하고 있다. 이 부품의 성능을 수치로 보여줄 수 있도록 집중하는 단계다. 세계적인 수준의 AI 코어를 내놓은 후 고객들과 본격적으로 접촉할 계획이다. 다음 제품은 금융, 클라우드, 헬스케어 등 특정 산업에 최적화된 시스템온칩(SoC)이 될 것이다.

오 CTO=세계적으로 많은 스타트업들이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풀고자 하는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IBM에서 직접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개발에 참여해 왔다. 최적의 AI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리벨리온의 기술력을 수치로 보여줄 수 있나.

김 CPO=내년 초에 이 칩의 테이프 아웃에 들어간다. 제품 생산을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끝났다는 의미다. 업계에선 테이프 아웃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 있게 본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성능이 확실할 때에만 생산한다.

◎CEO와 CTO가 미국에서 경력을 쌓았다. 한국에서 창업한 이유가 무엇인가.

박 CEO=반도체 스타트업을 하기엔 한국과 대만이 미국 실리콘밸리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최근의 실리콘밸리는 인력과 자본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지나치게 집중됐다. 한국이 미국보다 반도체 설계 인력과 개발 환경 면에서 좋다고 본 이유다. 삼성전자와 같은 유수의 파운드리가 있는 것도 리벨리온과 같은 반도체 스타트업에 큰 도움이 된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사업을 하지만, 세계적인 AI 반도체 기업을 한국에서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지만 시스템반도체에선 약하다. 좋은 집에 살면서 차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의 AI 반도체 수요도 높다고 봤다.

◎회사 이름을 리벨리온(반란)으로 지었다. 무슨 뜻인가.

박 CEO=AI 기술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몇 가지 혁명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주도한 건 항상 반도체였다. 포문을 연 것은 그래픽처리장치(GPU)다. 그러나 GPU를 통한 발전은 최근 한계에 도달했다. 혁명적인 AI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의미로 회사 이름을 지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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