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라의 소프트차이나 58]

'39조' 앤트그룹 IPO 이틀전 돌연 중단…꼬리내린 마윈
현지 언론 "당국 비판했기 때문"…마윈 재산 3조 증발
부동산 거물 런즈창…시진핑 비난했다가 실종 후 처벌
학자 "언론의 자유 말살해 코로나 확산"…행방불명
입 잘못 놀리면 행방불명…시진핑 역린 건드린 자들의 최후 [조아라의 소프트차이나]

"중국에는 제대로 된 금융 체계가 없습니다."
지난달 24일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外灘) 금융 서밋에서 마윈(馬雲) 알리바바 창업자는 "일단 들어주길 바란다"고 운을 뗀 다음 이같이 말했습니다. 당시 연설에는 '시진핑의 오른팔'로 불리는 왕치산 중국 국가 부주석과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이강 은행장 등을 비롯해 중국 국가급 지도자와 금융계 거물들이 여럿 모여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마윈은 개의치 않고 소신 발언을 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앉아있는 이들의 얼굴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중국 상하이 거래소 캡처. 사진=상하이거래소

중국 상하이 거래소 캡처. 사진=상하이거래소

'39조' IPO 이틀 전 돌연 중단…꼬리 내린 마윈
이날 마윈은 중국 금융당국이 지나치게 보수적인 감독 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중국의 금융은 아직 성장 중인 다른 개발도상국과 비슷하다"며 "아직 성숙한 금융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아 건강한 금융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 금융권은 '전당포'식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중국 금융권의 전당포식 사고는 상당히 만연해 있고 이는 많은 기업인에게 영향을 미쳤다"며 "반드시 신용체계를 기반으로 발전해야 향후 발전에 필요한 금융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알리바바의 핀테크 기업 앤트그룹은 지난 5일 기업공개(IPO)를 코앞에 둔 시점이었습니다. 중국 상하이와 홍콩 증시에 동시 상장해 총 345억달러(약 39조1500억원)를 조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IPO가 예정돼 있어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 IPO 일정은 돌연 취소됐습니다. 지난 3일 상하이 증권거래소는 공고문을 통해 5일 예정됐던 앤트그룹의 과학혁신판 상장을 잠정 중단한다고 공지했습니다. 거래소는 이번 사안을 '중대한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앤트그룹이 상장 조건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중국의 금융규제 당국인 증권감독위는 지난 2일 공식 웹사이트와 웨이보에 "중국인민은행과 중국은행보험감독위원회, 중국증권감독위원회·국가외환관리국이 (앤트그룹 경영진과) 면담하는 자리를 가졌다"고 밝혔습니다. 면담 후 앤트그룹은 보도자료를 통해 "회의 때 언급된 내용을 최대한 실행하겠다. 당국의 관리감독 조치를 잘 따르고 실물 경제에 기여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지 언론 "당국 비판했기 때문"…마윈 재산 3조 증발
앤트그룹 상장 중단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 주가는 8.1% 하락해 281.57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마윈의 주식 보유 가치가 무려 30억달러(3조4000억원)나 급감했습니다.

중국 현지 언론들은 마윈이 면담에 불려간 것이 지난달 공개 강연에서 중국 금융 규제 당국을 비판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당국의 심기를 건드린 결과, IPO 상장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공산당과 국가의 힘이 절대적인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당국의 정책을 대놓고 비판한 것은 쉽지 않은 결심입니다. 마윈은 어쩌면 당국의 심기를 건드릴 것을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는 IPO 중단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연설에 앞서 "참고만 해달라",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냥 잊어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마윈의 발언이 대담한 행보라는 것은 과거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당국의 정책 또는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한 재벌과 학자들이 실종되거나 처벌을 받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고 있기 때문인데요.
중국의 '부동산 거물'로 유명한 런즈창(任志强) 전 화위안그룹 회장. 사진=바이두 캡처

중국의 '부동산 거물'로 유명한 런즈창(任志强) 전 화위안그룹 회장. 사진=바이두 캡처

부동산 거물 런즈창…시진핑 비난했다가 실종 후 처벌
중국의 '부동산 거물'로 유명한 런즈창(任志强) 전 화위안그룹 회장은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시진핑 주석을 비판했다가 실종설이 돌기도 했습니다.

당시 런즈창 전 회장은 자신의 웨이보에 지난 2월23일 코로나19 방역 관련 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주석을 은유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는 시 주석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으나 "(화상회의 연설을 보니) '새 옷'을 입은 임금님은 없고, 벌거벗은 광대가 임금이라고 우기고 있는 모습만 보인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가 없어 언론이 비판 기능을 수행하지 못해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종설은 중국 공산당 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가 지난 4월 초 성명을 발표해 그가 '엄중한 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하면서 사그라들었습니다. 런즈창 전 회장은 지난 9월 베이징 법원으로부터 부패와 뇌물수수, 공금 횡령,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징역 18년형과 벌금 420만위안(약 7억2000만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칭화대 법대 교수인 쉬장룬 교수. 현재는 해임 상태다. 사진=칭화대 홈페이지 캡처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칭화대 법대 교수인 쉬장룬 교수. 현재는 해임 상태다. 사진=칭화대 홈페이지 캡처

유명학자 "언론의 자유 막아 코로나 확산" 지적 뒤 행불
중국의 저명한 학자도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락이 두절된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 최고 명문대 중 하나인 칭화대 법대 교수 쉬장룬은 지난 2월 '분노하는 인민은 더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기고문을 통해 중국에서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한 것은 중국에서 시민사회와 언론의 자유가 말살됐기 때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의료계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당국이 이를 억누르고 이로 인해 사회에 조기 경보를 울릴 수 없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시진핑의) 독재 하에서 중국의 정치 시스템은 무너졌으며 그 건설에 30년 이상 걸린 관료들의 통치 시스템은 가라앉고 있다"며 "정부는 관료들의 능력보다는 충성심을 중시하고 있으며 성과를 낼 의지가 없는 관료들만 넘쳐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쉬 교수는 현재 대학에서 해임된 상태입니다.

이런 선례를 고려하면 마윈의 발언은 큰 용기를 낸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시진핑 체제 이후 권력이 시 주석 중심으로 집중되고 인터넷과 언론 검열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그의 발언은 더욱 눈길을 끈다는 분석입니다. 시진핑 중심 지배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이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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