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유전자가위 ‘크리스퍼 카스9(CRISPR-Cas9)’의 원리를 규명한 과학자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박사와 미국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다. 두 사람이 2012년 세균의 면역기능인 Cas9을 이용해 유전자 편집이 가능한 크리스퍼를 개발한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이들의 노벨상 수상을 예견해왔던지라, 이번 수상이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오히려 크리스퍼 기반 유전자가위가 등장한 이후 이 기술이 생명과학 연구에 미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이번의 노벨상은 오히려 뒤늦은 수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단순한 생명과학 연구를 넘어서 어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에 응용될 수 있을까. 이번 달에는 크리스퍼 기반 유전자가위의 응용 사례와 이의 한계 등을 잘 보여주는 최신 연구논문 3건을 통해 크리스퍼 기반 유전자가위의 현주소를 살펴보도록 한다.
[이달의 논문 리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현주소
<논문 1>
크리스퍼를 이용해 엔지니어링된 T세포에 의한 암 치료(CRISPR-engineered T cells in patients with refractory cancer)
-저널: Science(IF 41.845)
-게재일: 2020년 2월 28일
-doi:10.1126/science.aba7365.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응용 분야 중 가장 관심을 받고 있고 실용화에 가까운 분야는 바로 세포 치료, 특히 항암 면역 치료이다. 환자로부터 T세포를 분리한 후 이 T세포가 암세포를 인식해 공격할 수 있도록 유전자 조작을 한 다음, 환자 몸에 다시 주입해 암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2011년 처음으로 만성림프구성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백혈병 세포를 특이적으로 인식하는 항원인 CD19를 인식하는 융합 항원 수용체(Chimeric Antigen Receptor) 유전자가 들어간 T세포(CAR-T)를 이용해 백혈병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후 유전자 조작을 통한 T세포로 다양한 암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CAR-T를 이용한 세포 치료는 혈액암에 대해서는 매우 효과가 좋았지만, 고형암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할 성공 사례가 없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도 중의 하나는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암 항원을 인식하는 T세포 수용체 유전자를 T세포에 도입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조작된 T세포는 암세포를 공격해 사멸시킨다. 이런 암 항원 중에서 ‘NY-ESO-1’이라는 단백질은 흑색종, 육종, 다발성 골수종 등의 다양한 암종에서 분포한다. NY-ESO-1 단백질 조각이 조직적 합성 복합체(MHC)와 결합한 복합체를 인식하는 T세포 수용체 유전자를 환자의 T세포에 넣어주면 환자의 T세포는 흑색종, 육종, 다발성 골수종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선행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의 시도에서는 극복돼야 할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T세포에 암 항원을 인식하는 T세포 수용체 유전자를 도입해도 T세포의 유전체 내에는 원래 가지고 있는 T세포 수용체 유전자(암 항원을 인식하지 못하는)가 남아있다. 외부에서 도입된 NY-ESO-1를 인식하는 T세포 수용체 유전자와 세포 내 유전체에 남아있는 원래의 T세포 수용체 유전자가 짝을 이루면 제대로 기능하지 않은 T세포 수용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즉 암세포를 인식하는 T세포의 숫자가 줄어들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T세포의 면역 체크포인트다. 암세포는 표면에 있는 PD-1L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해 T세포의 PD-1과 반응해 T세포 활성화를 억제한다. 실제로 PD-1의 기능을 억제하는 항체 형태의 면역 체크포인트 억제제 ‘키트루다’는 면역 체크포인트의 항암 효과를 보여준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진들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두 종류의 유전자를 파괴한 후 암 항원을 인식하는 T세포 유전자를 도입했다. 즉 환자에게서 채취한 T세포에서 세포가 원래 가지고 있는 T세포 수용체 유전자와 PD-1 유전자를 크리스퍼로 파괴한다. 그러고 난 뒤 NY-ESO-1를 인식하는 T세포 수용체 유전자를 도입했다.

연구진은 2명의 다발성 골수종 환자와 1명의 육종환자 유래의 T세포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T세포 수용체 유전자 2개와 PD-1 유전자 등 총 3개의 유전자를 동시에 불활성화시켰다. 그리고 T세포 수용체 유전자를 바이러스 벡터로 환자에게 주입해 이 세포가 환자 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폈다.

이식된 세포의 유전자 부위를 검사해 본 결과, 3개의 부위에서 성공적으로 돌연변이가 유도돼 유전자가 파괴됐음이 입증됐다. 또 변형된 T세포는 약 9개월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그러나 세포를 이식받은 환자들의 치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2명의 환자들은 일시적으로 암의 크기가 줄어들었으나 그 이후 암의 진행은 계속됐으며 환자 중 1명은 치료 도중에 사망했다.

현 단계에서의 주된 연구 목적은 환자에게서 채취한 T세포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복수의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지, 유전자가 조작된 T세포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환자 몸 속에서 유지되느냐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연구 목적은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치료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T세포 수용체 유전자의 최적화나 추가적인 면역 체크포인트의 유전자 조작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의 연구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인간을 대상으로 한 항암 세포 치료에 이용한 최초의 사례다. 앞으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다양한 치료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논문 2>
인간 배아에서의 유전자 교정의 위험성(Allele-Specific Chromosome Removal after Cas9 Cleavage in Human Embryos)

-저널: Cell(IF 38.637)
-게재일: 2020년 10월 29일
-doi:10.1016/j.cell.2020.10.025

크리스퍼-Cas9의 등장 이후 가장 이슈가 된 것은 인간의 생식세포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적용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면역세포 치료와 같은 경우에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유전체를 조작해도 그 수정 내용은 환자에게서 채취한 면역세포에만 국한된다. 그러나 생식세포에서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유전체를 수정하면 이 수정(혹은 수정 과정에서 생성된 오류) 내용은 생식세포에서 유래된 우리 몸의 모든 세포뿐만 아니라 자손에게까지 대물림된다. 이 때문에 생식세포에서의 유전자가위 적용은 훨씬 더 신중하게 적용돼야 한다.

생식세포에 유전자가위를 적용하면 유전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를 생식세포 수준에서 교정해 자손에게 유전병을 물려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인간 유전체를 인공적으로 손을 댄다는 것은 생명윤리적인 논쟁을 야기했다. 또 현재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은 완벽하지 않아서 유전체에 의도하지 않은 손상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아직 인간에 적용할 만큼 완성된 기술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 생식세포에 대한 유전자 교정의 적용은 당분간 보류하자는 것이 많은 과학자들의 의견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2018년 중국의 허젠쿠이 박사팀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감염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파괴한 ‘유전자 편집 아기’의 출생을 보고해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과연 현재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인간 유전체의 인공적인 수정을 시도할 만큼 안정된 기술일까.

2017년 미국 오리건대의 슈트라트 미탈리포프 박사의 연구팀은 심장 질환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가진 인간 배아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교정했다고 보고했다. 미탈리포프 박사의 연구에서는 인간 배아의 유전체를 교정했지만 이 배아는 산모에 이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 역시 당시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주된 비판 중의 하나는 미탈리포프 박사팀의 연구 결과가 이들이 주장한 것처럼 유전체가 제대로 교정된 것이 아니라 교정 대상이던 돌연변이가 있는 유전체에 문제가 발생해 돌연변이를 검출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후 인간의 배아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돌연변이를 성공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연구가 추가적으로 진행됐다. 미국 콜롬비아대의 디터 이글리 박사 연구팀은 ‘EYS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어 실명 상태인 사람의 정자를 이용해 인공수정을 한 배아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교정할 수 있는지를 시험했다.

그 결과 절반 정도의 수정란에서는 성공적으로 돌연변이가 교정되는 것이 발견됐지만 나머지 절반의 수정란에서는 돌연변이가 있던 정자 유래의 염색체가 손상되거나 염색체가 아예 없어지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연구진은 현재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인간 배아의 유전자 교정은 염색체에 손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인간에 적용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교정은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적용되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많은 기술이다. 2018년 중국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인간 배아에 대한 교정 시도는 그 안전성이 완전히 확인되기 전에는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

<논문 3>
CRISPR 기술을 이용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신속한 검출(CRISPR-Cas12-based detection of SARS-CoV-2)

-저널: Nature biotechnology(IF 36.558)
-게재일: 2020년 7월
-doi:10.1038/S41587-020-0513-4

크리스퍼를 이용한 유전자가위 기술은 주로 유전체 편집에 응용되고 있지만 크리스퍼 기반의 유전자가위에는 Cas9 이외에도 여러 가지 변종이 존재한다. 그 중 Cas12라는 유전자가위는 특정한 서열을 가진 DNA와 만나게 되면 활성화돼 임의의 DNA를 분해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Cas12의 특성을 활용해 바이러스 등의 병원체를 빠르게 검출할 수 있는 검출 시스템이 그동안 개발됐는데, 이를 이용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신속하게 검출할 수 있는 키트가 만들어졌다.

이 시스템은 Cas12 단백질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3개 유전자 부위에 해당하는 가이드 RNA(gRNA), 그리고 3개의 바이러스 유전자 부위를 증폭하는 프라이머 세트, 형광 프로브(탐침)가 결합돼 있는 ssDNA로 구성돼 있다. 일단 바이러스 시료에서 검사할 부위를 역전사 등온증폭법(RT-LAMP·Reverse Transcription Loop-mediated Isothermal Amplication)으로 증폭한 뒤 Cas12-gRNA 복합체와 반응시킨다.

만약 증폭된 DNA에 Cas12-gRNA가 인식 가능한 바이러스 서열이 존재한다면 Cas12-gRNA 복합체가 활성화돼 형광물질이 달린 DNA 프로브를 분해하고 형광이 발생된다. 이는 일반적인 항체 검출에 사용되는 신속 형광 스트립을 이용해 복잡한 장비 없이 바로 검출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PCR을 이용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검출에 사용되는 방법처럼 값비싼 기기를 사용할 필요 없이 40분 정도 상온에서 반응해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다. 기존의 방법에 비해 보다 신속하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검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 편집 이외에도 DNA나 RNA를 신속하게 검출하는 데에도 이용될 수 있고, 이를 이용해 기존의 방법보다 신속하고 값싸게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는 분자진단법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이달의 논문 리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현주소
남궁석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전공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일대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충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축산식품생명과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지금은 ‘Secret Lab of Mad Scientist(SLMS)’라는 이름으로 과학 저술 및 과학 관련 컨설팅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자가 되는 방법>, <암 정복 연대기>의 저자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