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상자산 투자 소득 발생시 기타소득 분류
250만 원 이상 소득에 20% 세금 부과
"가상자산 조세정책, 업계 성장 고려해 결정해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0 세법개정안'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신경훈 기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0 세법개정안'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신경훈 기자)

‘2020 세법개정안’이 발표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가상자산(암호화폐) 소득이 금융소득이 아닌 복권 당첨금과 같은 기타소득의 범주에 들어가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페이팔 등 글로벌 금융기업들이 결제 시스템에 가상자산을 추가하고,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 은행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이 가상자산 거래소를 만드는 등 가상자산이 금융의 영역에 들어오는 사례가 늘어나는 가운데 이번 세법개정안이 이같은 추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상자산, 복권과 같은 기타소득 분류250만원 이상 소득에 20% 세금 부과
기획재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2020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내년 10월부터 투자자들은 가상자산 거래를 통해 소득이 발생한 경우 이를 기타소득으로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기타소득은 근로소득, 사업소득, 이자소득 등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이 아닌 복권 당첨금이나 원고료 등 일시적·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을 통칭한다.

일반적으로 국내 상장주식 등 금융 상품을 거래하는 경우 이를 금융소득으로 취급해 연 수익금 5000만 원까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5000만원을 초과한 이익에 대해서만 20%의 세금이 부과된다. 또 5년간의 손익통산을 적용, 이득이 발생해 세금을 냈다가 다음 과세 기간에서 손해가 발생한 경우 기존에 지불한 세금을 환급해주는 절차도 존재한다.

반면 기타소득으로 분류된 가상자산 소득은 연간 수익금 250만 원까지만 세제 혜택이 적용돼 이를 초과한 금액에 대해 20%의 세금을 걷는다. 손익통산도 1년 이내로 제한돼 이득에 대한 세금을 냈다가 다음 과세 기간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환급이 불가능하다.

업계에서는 가상자산 소득이 금융 소득과 유사한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기타소득으로 분류한 것은 의도적인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A씨는 “정부가 가상자산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한 것을 보면, 아직까지도 가상자산을 복권, 슬롯머신과 같은 일종의 도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모호한 과세 기준·짧은 준비 기간도 문제
(사진 제공=픽사베이)

(사진 제공=픽사베이)

세법개정안의 모호한 과세 기준과 부족한 준비 기간도 투자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당장 내년 10월부터 적용되는 세법개정안의 시행령이 아직 나오지 않은 데다, 탈중앙화 금융(DeFi) 토큰이나 채굴 등 다른 금융상품에는 없는 가상자산만의 독특한 수익 창출 방식에 대한 과세 기준도 마련되지 않아서다.

가상자산 업계는 세법개정안 적용에 앞서 내년 3월 시행될 특금법(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 개정안에 대한 준비도 벅찬 상황이다. 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VASP)의 범위를 규정하고 이들에게 자금세탁방지(AML)등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금법과 세법개정안이 예정대로 시행된다면 현재 운영되는 가상자산 사업체들은 5개월 이내에 특금법이 요구하는 AML 등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또 모든 이용자의 가상자산 양도 및 대여 소득을 파악, 정확한 원천징수를 완료하고 이에 기반한 과세 자료를 당국에 제출 할 수 있는 인프라를 11개월 내로 갖춰야 한다.

오갑수 한국 블록체인협회장은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내년 3월 특금법 시행에 대한 준비도 벅찬 상황에서 세법개정안에 대한 과세 인프라 구축에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라며 “업계가 성실하게 과세 협력을 이행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준비 기간을 부여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금융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가상자산…"업계 발전 고려해 조세정책 결정해야"
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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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정부가 가상자산 업계의 발전과 글로벌 동향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금융 기업들이 가상자산을 활용한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가상자산과 금융자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약 3억 5000만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세계 최대 온라인 결제 회사 페이팔(PayPal)은 지난 21일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라이트코인(LTC), 비트코인캐시(BCH) 등 4개의 가상자산을 결제수단으로 채택한다”고 밝혔고, 28일에는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 은행인 DBS가 가상자산 거래소 'DBS 디지털 익스체인지'를 론칭할 계획이라고 알린 바 있다.

기업이 가상자산에 직접 투자하는 사례도 생겼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지난 8월부터 4억2500만 달러(약 4820억 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매입, 3개월만에 1억 달러(약 1133억원)가 넘는 평가차익을 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금융자산과 가상자산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인 만큼, 합리적인 조세 정책을 마련해야 향후 국내 업계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강형구 한양대 블록체인융합학과 교수는 “가상자산 시장의 세법개정안 도입은 업계의 발전을 고려해 잘 결정해야 한다. 특히 오는 3월 도입되는 특금법이 강조하는 고객신원확인(KYC)과 AML을 통해 투명한 금융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영민 한경닷컴 인턴기자 20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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