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리에주 대학의 연구소에서 한 연구자가 RNA 추출 시약과 관련한 실험을 하고 있다. 현재 많은 전문가들은 다양한 질환에서 효능을 발휘하는 RNA 치료제가 개발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벨기에 리에주 대학의 연구소에서 한 연구자가 RNA 추출 시약과 관련한 실험을 하고 있다. 현재 많은 전문가들은 다양한 질환에서 효능을 발휘하는 RNA 치료제가 개발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RNA 치료제가 ‘대세’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적응증을 확대하고 생산단가를 낮추고 좀 더 투여가 편한 방식의 치료제가 돼야 한다. RNA 치료제를 선도하는 기업들은 벌써 두 번째 도약을 위한 숨 고르기를 시작했다.
1998년 미국 카네기연구소의 앤드루 파이어 교수와 크레이그 멜로 매사추세츠 의대 교수가 처음으로 간섭 RNA(siRNA)의 작용 기전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기전이 알려진 지 10여 년 만에 siRNA는 난치성 질환의 다크호스로 떠올랐고, RNA 치료제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짧은 시간 안에 siRNA가 각광받은 이유는 RNA의 번역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가진 질병 중 절반은 RNA의 번역과정을 조절해 치료할 수 있다. RNA 치료제의 확장성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RNA 치료제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해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일부 치료제는 많은 매출을 올렸지만, 초반의 기대만큼 다양한 질환에 적용하지는 못했다. 대부분 간을 표적으로 하거나 특정 유전 질환에 국한돼 있었다. RNA 치료제가 ‘대세’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간 질환 치료제로 첫 번째 도약에 성공하다

siRNA를 발견한 두 과학자가 노벨 생리의학 상을 받은 2006년은 RNA 치료제 개발 기업 에겐 황금기였다. 거대 제약사들은 RNA 치료제를 개발하는 신생 기업들에게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불과 4년 뒤 암흑기가 빠르게 찾아왔다. 표적 부위에 RNA를 제 대로 전달하는 기술이 없어 치료효과를 얻기 어려워서였다.

RNA 치료제의 선두주자인 앨나일람의 존 마라가노어 최고경영자(CEO)는 <네이처>와 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이 RNA 치료제가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거대 제약사가 이 시장을 떠났다”라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시장에 짙게 깔린 불신을 한 번에 걷어낸 건 ‘갈낙(GalNAc·N-아세틸갈락토사민)’ 기술이었다. 갈낙 기술은 siRNA 말단에 갈낙 3개를 결합하는 기술이다. 갈낙이 간세포 표면에 위치한 수용체 ASGPR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면 세포 내 이입(엔도사이토시스)이 일어난다. 세포 안으로 들어간 siRNA는 세포질로 배출되고 ASGPR 수용체는 다시 간세포로 돌아간다.

갈낙 기술은 시장의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킬 만큼 획기적이었다. 혈액에 투여하는 대부분의 siRNA는 간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표적 기관까지 이동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siRNA를 싸고 있는 전달체도 없기 때문에 세포 내 이입 후 무사히 세포질로 방출됐다.

2019년 최초로 갈낙을 적용한 앨나일람의 급성 간성포르피린증 치료제 ‘기브라리’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후 아이오니스, 다이서나, 애로우헤드 등 RNA 치료제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모두 갈낙 기술을 개발했다. siRNA와 갈낙을 잇는 링커를 서로 다르게 해 특허 문제에서 비껴갔다.

특히 다이서나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DsiRNA 에 갈낙을 결합해 일라이릴리, 로슈, 노보노 디스크 등 거대 제약사들과의 연구협력 계약 을 성사시켰다. DsiRNA는 siRNA가 표적 mRNA를 분해하는 데 필요한 다이서(Dicer) 단백질과 빠르게 결합할 수 있도록 염기서열 을 최적화한 일종의 플랫폼이다.

국내에서는 올릭스가 지난 3월 30일 미국의 AM케미컬에서 갈낙 기술을 이전받는 라이 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갈낙 기술을 바탕으로 간 섬유화 치료제 ‘OLX701’, 비알코올성 지방간(NASH)과 같은 간 질환 등을 위한 치료제 ‘OLX702’를 개발하고 있다.
중추신경계를 향한 도전이 시작됐다.

아이오니스, 다이서나, 애로우헤드 등 RNA 치료제 개발 기업들의 파이프라인의 80%는 간을 표적하고 있다. 간 이후에 도전하는 표적 기관은 중추신경계(CNS)다. 2012년 쥐의 뇌에서 안티센스 RNA(ASO)를 이용해 3개월간 헌팅턴병의 증상을 개선했다는 연구가 나왔다. 헌팅턴병은 헌팅틴 유전자(HTT)가 변이돼 발생하는 퇴행성 뇌질환으로 아직까지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미국 UC샌디에이고 연구진은 인간의 헌팅틴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쥐의 오른쪽 측 뇌실에 2주간 ASO 약물을 주입했다. 그 결과, 돌연변이 헌팅틴 유전자의 mRNA 양은 28% 수준까지 감소했다. 투여한 ASO는 16주간 남아 있었고, 이로 인한 mRNA의 감소는 12주간 지속됐다.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간에만 집중하던 RNA 치료제 기업들은 본격적으로 중추신경계 질환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거대 제약사에서도 관심을 보이며 메가딜이 성사됐다. 다이서나는 신경질환 연구를 위해 일라이릴리와 2018년 10월 5억5000만 달러 (약 6490억 원)의 라이선싱 계약을 했다. 앨나일람은 2019년 리제네론과 CNS 표적 치료제 개발을 위한 1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CNS 치료제의 성패는 뇌 보호막인 혈뇌장벽(BBB)의 통과에 달려 있다. 혈뇌장벽은 외부 물질로부터 뇌와 척수를 보호해주는 촘촘한 장벽이다. 400달튼(Da) 이하의 지용성 분자나 당, 아미노산 등만 통과할 수 있다. 인슐린이나 트랜스페린과 같은 큰 분자는 막에 있는 수용체와 결합해 장벽 내부로 들어간다. 대개 크기가 14kDa 이상인 RNA 치료제 는 통과가 거의 불가능하다.
올릭스 연구원들이 경기 수원시에 자리한 연구실에서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올릭스는 지난 3월 미국의 AM케미컬에서 갈낙 기술을 이전받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올릭스 연구원들이 경기 수원시에 자리한 연구실에서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올릭스는 지난 3월 미국의 AM케미컬에서 갈낙 기술을 이전받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혈뇌장벽(BBB) 통과하는 RNA가 승리의 깃발을 잡을 것

아이오니스는 혈뇌장벽을 우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뇌척수액에 ASO 약물을 넣어 직접 주입하는 방식이다. 아이오니스는 이 방식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종양을 발생 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Malat1 유전자를 억제하는 ASO 약물을 척수관을 통해 주입한 것이다. 그 결과 뇌 부위 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Malat1 유전자가 평균 80% 이상 감소했다.

이를 바탕으로 아이오니스는 헌팅턴병, 루게릭병, 알츠하이머 치매, 파키슨병 등 여러 뇌 질환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빠른 치료 후보물질은 헌팅턴병을 표적하는 ‘IONIS-HTT(RG6042)’로 임상 3상을 준비 중이다.

척추 주사를 통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증명됐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고통스러운 척추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올리고핵산에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지질 입자나 단백질을 다 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트랜스페린 항체다. 트랜스페린은 혈액 내 철 성분을 붙잡아 전달하는 단백질로 BBB를 통과한다. 트랜스페린이 BBB에 있는 수용체를 만나면 BBB 내부로 들어간다. 비슷한 원리로 BBB의 인슐린 수용체, 저밀도지방단백질(LDL) 수용체를 표적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BBB를 통과하는 광견병 바이러스의 당단백질(RVG)을 이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이 연구되고 있다.

현재 앨나일람이 리제네론과 함께 BBB를 통 과할 수 있는 리간드를 개발 중이다. 앨나일람은 2024년 이후에 개발이 완료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개발 중인 리간드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없다.

많은 전문가가 향후 5년 안에 간이 아닌 곳 에서 효능을 발휘하는 RNA 치료제가 개발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더글러스 팸브로 다 이서나 CEO는 “RNA 치료제에 대한 회의론 과 의구심이 드디어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 고 표현했다. 그의 낙관적인 전망처럼 RNA 치료제가 ‘대세’가 될 수 있을지는 곧 판가름이 날 것이다.

RNA 치료제를 반대로 활용한다? 마이크로RNA를 표적하는 심혈관 약물

RNA 치료제의 원리를 반대로 이용하는 치료법도 있다. RNA 조각을 제거해 심혈관 질환을 치료한다는 접근이다. 독일의 스테파니 디멜러 프랑크푸르트대 교수는 체내의 일부 마이크로 RNA(miRNA)가 심장 노화를 유도하고 심부전에 관여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miRNA는 siRNA와 유사한 작은 RNA 조각이다. 일반적으로 체내에 존재하며 mRNA의 발현을 조절하는 RNA 조각을 miRNA, 표적 mRNA에 결합하게끔 외부에서 만들어 넣어주는 RNA 조각을 siRNA라고 부른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siRNA는 mRNA에 완벽하게 상보적으로 결합한다는 것이고, miRNA는 부만 결합한다는 점이다. siRNA는 완벽하게 결합해 mRNA를 대체로 분해시킨다면, miRNA는 분해보다는 조절에 가까운 작용을 한다.

디멜러 교수팀은 miR-34라고 불리는 miRNA가 심장마비가 일어난 직후 심장세포의 세포 사멸과 노화를 촉진한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miR-92A는 심장세포의 산소를 제거해 사망에 이르게 한다. 연구진은 miRNA를 억제하는 약물을 이용해 제거하면 심부전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커버스토리-part.2] 다크호스 RNA 치료제, 대세를 꿈꾼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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