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샤르팡티에·미국 다우드나, 유전자 정밀교정 가능한 크리스퍼/카스9 개발
노벨위원회 "유전자가위 오용 가능성 상존…규제 필요"
노벨화학상 2인…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생명과학 새시대 열어
올해 노벨화학상은 유전자를 정밀하게 교정 또는 편집할 수 있는 유전자가위 기술인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을 개발, 생명과학에 새 시대를 연 프랑스와 미국 여성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7일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유전체 편집 기법을 개발'한 프랑스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교수와 미국의 제니퍼 A.다우드나 교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유전자가위는 생명정보가 담긴 기본 단위인 유전체 염기서열 가운데 특정 부분을 잘라내거나 붙일 수 있는 기술로 크리스퍼/카스9은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로 분류된다.

이 기술은 1세대인 '징크핑거'(zinc finger)나 2세대인 '탈렌'(TALEN)보다 저렴하고 간편할 뿐 아니라 선택성과 정확성이 뛰어나 동·식물의 유전자 편집은 물론 인간 질병 치료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이 기술이 생명과학에 혁명적 영향을 미쳤으며, 새로운 암 치료법 개발에 기여하고 유전질환 치료의 꿈을 실현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크리스퍼/카스9은 유전체의 긴 염기 사슬에서 잘라야 할 특정 위치를 찾아가는 가이드 역할의 '크리스퍼'와 실제로 그 위치를 자르는 효소인 '카스9'으로 구성된다.

이 같은 생명공학의 혁명적 도구 개발 역시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됐다.

샤르팡티에 교수는 2011년 화농연쇄상구균(Streptococcus pyogenes)을 연구하던 중 이 박테리아의 면역시스템에서 바이러스의 DNA를 자르는 물질(tracrRNA)을 발견해 보고했다.

바로 크리스퍼 부분으로 박테리아가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가지고 있던 면역체계의 일부인 셈이다.

그는 이 발견 뒤 바로 RNA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생화학자인 미국의 다우드나 교수와 공동연구를 시작해 다음 해인 2012년 크리스퍼/카스9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크리스퍼/카스9이 공개된 뒤 이 기술의 폭발적 잠재력을 알아본 전 세계 연구자들이 연구에 뛰어들면서 이전까지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동·식물 유전자 교정·편집 성과와 함께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뒤를 이은 연구자 중 선두그룹에 김진수 서울대 화학과 교수도 있다.

2세대 유전자가위 기술 '탈렌'의 권위자이기도 한 김 교수는 일찌감치 크리스퍼/카스9 연구를 시작해 이를 동·식물은 물론 질병 치료에 활용하는 연구에서 가장 앞선 연구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유전자가위 연구에서 서울대 김진수 교수의 업적도 올해 수상자 두 분에 비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김학중 고려대 화학과 교수는 "(크리스퍼/카스9을) 인류를 위해 사용하는 측면에서 보면 김진수 교수 등도 수상자에 포함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 동의한다"며 노벨위원회는 두 수상자가 크리스퍼/카스9을 개발하고 박테리아에서 시연함으로써 기초과학을 기술로 연결한 것을 중요하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크리스퍼/카스9의 등장으로 인류의 삶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동·식물에 적용하면 수확량이 많은 식량 작물이나 가축 품종을 개발하고, 병충해 또는 가뭄 등에 강한 품종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크리스퍼/카스9을 인류 질병 치료 등 의학 분야에 활용하는 것이 기대를 모은다.

현재 크리스퍼/카스9 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암 치료법의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고, 유전자 변이로 발생하는 각종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도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퍼/카스9을 사람에게 직접 적용하기 위해서는 선택성과 정확성을 높여 오류나 부작용 가능성을 더 줄이는 기술적 측면의 발전과 함께 '유전자 조작'에 관한 사회적, 윤리적 논란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노벨위원회는 유전자가위는 인류에 많은 혜택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유전자 조작 아기'를 만드는 것과 같이 오용 가능성도 상존한다면서 유전자가위의 힘을 이용하는 데에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18년에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賀建奎)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도록 유전자를 편집해 쌍둥이 여자아이를 탄생시켰다고 발표,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자 편집 기술 적용 문제가 세계적인 논란거리가 됐다.

허젠쿠이는 지난해 말 중국 법원에서 불법 의료 행위죄로 징역 3년과 벌금 300만위안(약 5억원)의 선고를 받았다.

이와 관련, 중국에서 '유전자 편집 아기' 출산 발표를 계기로 미국의 국립의학원(NAM), 국립과학원(NAS), 영국의 학술단체 왕립협회 후원으로 꾸려진 한 국제위원회는 최근 유전자 편집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이를 인간의 배아에 적용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는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현재의 유전자 편집 기술 수준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우려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위원회는 유전자 편집 기술의 위험성이 덜해지더라도 인간의 난자나 정자, 배아에 이 기술을 적용하면 해당 유전자 변형이 미래 세대에 유전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따른 윤리적 문제도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