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 리포트] 바이오마커 발굴이 이슈인 까닭
의료기기산업의 가장 교과서적인 경영 전략이자 시장 침투 방식은 인수합병이다. 인수합병 트렌드를 살펴보면 산업에서 주목하는 기술이나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체외진단 산업의 인수합병 트렌드를 시계열로 살펴보고 그와 관련된 상장사들의 시가총액을 비교해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체외진단 시장의 관심사가 진단기법에서 바이오마커로 변한 것이다.

2010년 초중반까지는 주로 새로운 진단기법들이 주목을 받았다. 가장 대세는 현장 진단 방식의 PCR 기술들이었다. 다나허는 세파이드를 약 40억 달러에, 비오메리외는 바이오파이어를 약 5억 달러에, 지멘스헬시니어스는 패스트트랙 다이그노스틱스(인수가격 미공개)를 인수하였다. 애보트는 PCR은 아니지만 래피트 키트 세계 1위인 앨리어를 약 45억달러에 인수했다.
상장사 중에서도 현장진단 방식의 멀티플렉스 PCR 검사를 추구하는 루미넥스는 시가총액 14.6억 달러, 젠마크는 6.6억달러까지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차세대 유전체분석기술을 활용해 액체생검에 도전한 비상장사인 그래일은 마지막 자금을 유치한 기업가치를 기준으로 32억달러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2010년 중반을 지나면서 시장의 관심사는 바이오마커로 점점 기울게 된다. 가장 성공적인 회사는 메틸레이션을 비롯한 10개의 바이오마커를 통해 대장암 조기진단 제품을 상용화한 이그젝트사이언스로 시가총액이 최고 155억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암세포의 유전변이를 찾아 치료 의사결정에 활용될 수 있는 동반진단 업체들도 부각되었는데 스티브 잡스의 췌장암 검사로 유명했던 파운데이션 메디슨은 로슈에 53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인수되었고, 미국에서 액체생검으로 유일하게 공보험 급여혜택을 받는 가던트헬스의 시가총액은 96.2억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새로운 바이오마커를 연구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업체들의 상장도 이어졌다. 적응면역계를 연구하기 위한 장비를 제조하는 어댑티브 바이오테크놀로지스, 단일세포의 염기서열을 분석할 수 있는 장비를 제조할 수 있는 10X지노믹스는 2019년 상장된 후 각각 시가총액 66.5억달러, 103.2억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바이오마커

체외진단의 관심사가 진단기법에서 바이오마커 발굴로 이동하게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체외진단에서는 경제성과 검사 산출량으로 최신기술이 다른 기술을 완벽하게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는 경제 수준, 전문인력 수준, 국토면적, 기타 우선순위가 모두 다르다. 따라서 모든 나라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진단법은 없다. 다만,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최적의 수단을 선택할 뿐이다.

[애널 리포트] 바이오마커 발굴이 이슈인 까닭
체외진단은 초기 육안을 이용한 진단법을 시작으로 현미경, 화학효소법, 배양법, 항원-항체반응법, PCR 기법 등 다양한 기술들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어느 검사도 다른 검사를 완벽하게 대체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PCR 검사는 항원-항체반응 검사보다 더 정확하게 코로나19를 진단할 수 있지만, 감염자 관리에는 항원-항체반응 검사가 더 유용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예로 역사가 오래된 검사법임에도 대체되기는커녕 여전히 골드 스탠다드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오래된 검사법 중 하나인 현미경으로 조직을 살펴보는 검사(모폴로지)는 암 진단에서 아직도 유용하게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배양법은 세균과 관련된 질병 진단에서 골드 스탠다드로 사용되고 있다. 새로운 진단기법은 다른 기술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성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한 영역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달리 바이오마커를 개발하면 새로운 시장과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치료와 연계될수록 바이오마커의 가치는 높아진다.

바이오마커 개발 연구 경쟁이 치열한 곳이 바로 치료방법이 있는 질병에 대한 조기진단과 항암제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동반진단 분야다. 이는 의료시스템의 3대 이해관계자인 건강보험사와 글로벌 대형 기업과 관련이 깊다. 치료방법이 있는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여 건강보험사의 총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고 항암제의 효과를 극대화하여 해당 의약품 처방 증가로 인한 제약사 외형 확대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진단제품의 가치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진단제품의 가격을 책정할 때 단순히 진단에 드는 재료비, 인건비, 기계 감가상각비를 고려하는 것만이 아니라 치료 효과 상승에 의한 의료비용 절감분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원가 기반이 아닌 가치에 기반한 가격책정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의료기기산업은 여러 가지 이해관계자가 개입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바이오마커의 개발은 보험사와 글로벌 대형기업들의 고민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여러 이해관계자와 긴밀하게 엮일수록 진입장벽과 해자는 높아진다. 이것이 체외진단업체들이 궁극적으로 바이오마커를 개발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