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료방송 1위 사업자 KT가 결국 글로벌 미디어공룡 넷플릭스의 손을 잡았습니다. KT는 3일부터 인터넷TV(IPTV) 서비스 '올레tv' 셋톱박스에서 넷플릭스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넷플릭스 기존 가입자는 셋톱 메뉴에서 이메일만 입력하면 바로 TV화면으로 넷플릭스를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입을 원하면 올레tv에서 리모컨으로 신청할 수 있고 구독료도 KT 통신료에 함께 청구됩니다.

넷플릭스를 큰 TV 화면으로 보고싶어하던 이용자들은 적극 환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인터넷TV(IPTV) 사업자 가운데 LG유플러스만 넷플릭스와 제휴해 셋톱박스에 탑재했지만 독점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KT 이용자도 넷플릭스를 쉽게 이용하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IPTV 3사 가운데 넷플릭스와 망 이용대가를 둘러싸고 소송을 진행중인 SK브로드밴드만 남게됐습니다.

하지만 KT와 넷플릭스 협력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습니다. 업계 1위 사업자의 행보라기에 썩 보기좋은 장면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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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이용대가 포함하고 수익배분도 개선

KT는 이번 넷플릭스와의 계약에서 LG유플러스에 비해 굉장히 유리한 조건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KT는 지난 1일 제휴 사실을 발표하며 "양사는 관련 법률을 준수하고, 서비스 안정화 노력을 함께 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넷플릭스가 KT측에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는 내용이 포함됐음을 시사한 대목입니다.

국회는 지난 5월 콘텐츠사업자들이 자사 서비스로 발생한 과도한 트래픽으로 통신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서비스 안정화 의무를 규정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LG유플러스에는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상태이고, SK브로드밴드와는 망 이용대가를 둘러싸고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수익 분배 비율 역시 LG유플러스보다 훨해씬 유리졌습니다. LG유플러스는 2018년 망 이용대가 없이 수익의 90%를 넷플릭스가 가져가는 구조로 계약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KT는 망 이용대가와 함께 수익 분배 비율도 높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KT는 비밀유지계약을 이유로 계약 조건 등과 관련 "공식적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넷플릭스, 국내 유료방송 50% 이상 잠재고객으로 확보

이번 제휴는 KT와 넷플릭스 양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입니다. 지금까지 독점적으로 넷플릭스와 제휴관계였던 LG유플러스는 지난 1분기 자사 IPTV 누적 가입자 459만7000명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8% 증가한 배경에는 역시 넷플릭스의 힘이 컸다는 것이 업계와 LG유플러스의 분석입니다. 다시 말하면 넷플릭스때문에 KT와 SK브로드밴드 이용자가 그만큼 이탈했다는 이야기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확산 이후 넷플릭스는 콘텐츠 시장의 절대강자로 떠올랐습니다. KT로서는 기존 가입자의 이탈을 막고 넷플릭스라는 강력한 마케팅 수단을 얻게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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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이렇게 우호적인 조건으로 KT의 손을 잡은 이유는 뭘까요? 업계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태동하는 국내 OTT 시장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굳히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드라마 강자인 CJ ENM과 JTBC는 오는 10월께 '티빙' 법인 출범을 위한 작업을 진행중입니다.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가 손잡은 웨이브는 6월 기준 가입자수 272만명으로 넷플릭스의 467만명에 크게 밀리지만 나름 선방하고 있습니다. 1인당 월평균 앱 사용시간에서 11.9시간으로 9.5시간을 기록한 넷플릭스를 앞서기도 했죠. 여기에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콘텐츠를 갖춘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진출도 물밑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로서는 후발주자들이 힘을 얻기 전 시장 1위를 확고하게 다져야할 시점인 셈입니다.

IPTV 가입자 850만명을 거느린 KT와의 제휴는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을 장악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이번에는 빠져있지만 KT 자회사 KT스카이라이프, 인수를 추진하는 HCN으로도 제휴를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국내 유료방송(IPTV+케이블TV) 가입자 중 절반 이상이 넷플릭스 잠재 고객으로 흡수될 전망입니다.

1위 사업자가 앞서서 플랫폼 개방?

LG유플러스가 처음 제휴를 맺었을 때와는 상황이 다른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LG유플러스는 IPTV 3사 중 3위 사업자입니다. 열세인 시장 입지를 극복하기 위해 다소 불리한 조건으로 넷플릭스 카드를 꺼내든 것은 '승부수'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1위 사업자가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깔아줄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립니다. KT는 자체 OTT '시즌(SEEZN)'도 있지요. IPTV의 '다시보기' 수익 감소, '시즌'의 정체성과 경쟁력 약화를 감내하면서도 넷플릭스를 선택한 것은 이용자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IPTV 서비스 차별화의 핵심이 '콘텐츠'가 된 상황에서 연간 22조원을 콘텐츠에 투자하는 '미디어 공룡' 넷플릭스는 놓칠 수 없는 카드이기 때문이죠.

디지털미디어 플랫폼을 키우겠다는 정부 기조도 다소 타격을 받을 전망입니다. 정부는 '한국형 넷플릭스' 5개를 키우겠다며 플랫폼 사업자의 인수합병(M&A)을 간소화하고, 1등 사업자의 점유율을 제한하는 합산규제를 없앴습니다.

미디어플랫폼과 콘텐츠 사업을 키우기 위해 각종 지원을 발표한 상황에서 KT가 글로벌 공룡 넷플릭스에 플랫폼을 내어주는 상황은 1등 사업자가 공개적으로 정부기조를 역행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밖에 없습니다. KT가 자사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느라 국내 OTT 생태계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넷플릭스가 통신 3사 중 1, 3위 업체와 손잡으면서 한국 콘텐츠 시장이 넷플릭스에 종속되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OTT는 말 그대로 'Over The Top', 모든 기기에 적용할 수 있는 동영상 서비스다. 스마트TV 앱이나 일부 연결하는 수고만 더하면 굳이 셋톱박스를 통하지 않고서도 OTT를 TV에서 이용할 수 있는데 1등 업체가 굳이 제휴를 통해 글로벌 미디어공룡의 점유율을 높여주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고 반문했습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