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 호우특보가 내려진 지난 29일 오전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우산 쓴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사진=뉴스1
전국 곳곳에 호우특보가 내려진 지난 29일 오전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우산 쓴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사진=뉴스1
예년과 달리 긴 장마가 한 달 째 이어지며 가전업계와 유통업계가 울상을 짓고 있다. 7월 내내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며 한참 팔아야 할 에어컨 판매량이 부진한 탓이다.

정부가 구매 비용의 10%를 환급해주는 고효율 가전제품 환급사업이 실시됐는데도, 올해 국내 에어컨 판매량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성해 오던 '250만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시작해 이날까지 37일째 계속되고 있는 중부지방 장마는 다음 달 10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보됐다.

이처럼 7월 내내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면서 이달 1∼29일 전국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2도 낮은 22.5도에 그쳤다. 지난해 여름과 달리 올해 '역대급 폭염'이 찾아올 것이라는 업계의 올 초 예상을 깼다.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고 열대야가 크게 줄어들자 '에어컨 장사'를 해야하는 가전업계와 유통업계에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7월은 이윤이 많이 남는 에어컨이 가장 많이 팔리는 달 중 하나로 꼽힌다. 한 가전업체 고위 관계자는 "에어컨 판매량이 전년 대비 20% 줄었다"고 했고,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비가 그쳤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늘만 보고 있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가전업체는 에어컨을 통상 연초에 출시해 올 3분기까지 팔고, 4분기에 다음 시즌 제품을 준비한다. 3분기를 넘기면 악성 재고로 취급된다. 여름이 가전업체와 유통업체엔 중요한 '승부처'인 셈이다. 공기 청정, 제습 등 다양한 기능이 탑재돼 4계절 내내 쓸 수 있는 에어컨은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비수기 시즌에도 판매량이 몇 년 새 늘고 있는 추세긴 하지만, 전체적인 판매량은 언제나 여름이 가장 높았다.

당초 가전업계는 올해 에어컨 판매량이 2017년부터 이어졌던 250만대 수준과 비슷하거나 소폭 줄 것으로 봤다. 국내 에어컨 시장은 2013년 200만대를 처음 돌파한 이후 2014년 150만대로 줄었다. 그러다가 2016년 220만대, 2017년 250만대로 크게 성장했다. 이후 매년 250만대씩 팔리는 추세가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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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에어컨이 충분히 공급돼 있고 경제불황이 겹쳐 판매량을 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올해도 250만대 규모를 예측했던 건 다양한 기능이 탑재된 에어컨이 비수기에도 4계절 가전으로서 견조한 판매량이 유지되고, 올 여름 '역대급 무더위'가 찾아올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으뜸효율 가전제품 환급사업'도 기회였다.

그러나 올해는 예상과 달리 에어컨 판매가 쉽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에어컨 판매 규모는 1월부터 5월까지 모든 달이 전년 대비 줄었다. 6월 에어컨 판매가 탄력을 받기 시작하며 '반짝 상승'했지만 7월 들어 다시 감소했다. 전자랜드에 따르면 올해 5~7월 에어컨 누적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 줄었다.

예년과 달리 장마가 길어진 여름 날씨와 별개로 에어컨에게만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되는 에너지소비효율등급이 판매 저하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환급사업은 에너지 효율 1등급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구매금액의 10%(최대 30만원)을 정부가 환급해주는 것이다. 고효율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해 에너지 절감을 이뤄내자는 취지다. 그러나 '스탠드형 에어컨'은 예외로 3등급까지 환급해 준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스탠드 에어컨은 모두 2~3등급 이상이어서다. 2018년 10월 '전기냉방기(에어컨) 에너지소비효율등급' 개정 이후 '스탠드형 에어컨' 중 에너지 효율 1등급을 갖춘 제품은 자취를 감췄다. 업계 관계자는 "스탠드 에어컨은 사실상 2~3등급이 1등급의 효율 능력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는데, 엄격한 효율 제도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에어컨을 구매하고 환급받는 건수도 적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자료에 따르면 환급 사업을 통해 많이 찾은 가전제품은 세탁기(20.8%)를 비롯해 전기밥솥(17%), 냉장고(15.7%), 에어컨(13.4%) 순이다.

가전업체는 에어컨 판매량 늘리기에 분주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매장을 찾는 소비자가 줄고 있는 것에 발 맞춰 온라인 판매망을 강화하는 동시에 구매 이벤트 혜택을 늘리기로 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