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60부터 약 2만8천원에 파는 '풍요의 성장 상자' 구매하면 더 쉽게 레벨 올려
공정성 논란까지 번져…게이머들 "선을 넘었다" 분노
[이효석의 게임인] 경험치 파는 리니지2M, 한국 사회의 어두운 거울

2016년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 입학 사건과 이후 '최순실 게이트',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비리 의혹, 2020년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논란.
최근 5년 사이에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이 사건 목록을 한 줄로 꿰는 키워드는 '공정성'이다.

공정성은 현시대의 화두이자, 작금의 청년 세대가 부르짖는 시대정신이다.

게임업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최고 인기 모바일게임 중 하나이자, 엔씨소프트의 대표작인 '리니지2M'에서다.

요약하자면, 리니지2M은 며칠 전부터 경험치를 돈을 받고 팔고 있다.

이를 향한 이용자들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

[이효석의 게임인] 경험치 파는 리니지2M, 한국 사회의 어두운 거울

엔씨는 이달 22일 리니지2M에 '풍요의 성장 상자' 신규 상품을 출시했다.

레벨 60부터 구매할 수 있는 이 상품은 1천 다이아 짜리인데, '풍요의 신탁서' 등의 구성품이 들어있다.

'풍요의 신탁서'는 '몬스터 100마리 사냥' 같은 단순한 미션을 주면서 그 보상으로 경험치 약 10%(레벨 60 기준)를 준다.

미션이 딸려 있기는 하지만 게임을 평소처럼 진행하면 자동으로 완수되는 수준이라, 사실상 '풍요의 성장 상자' 상품을 사면 경험치 10%를 얻게 되는 셈이다.

리니지2M에서는 1천200 다이아가 3만3천원, 4천 다이아가 11만5천원이다.

1다이아에 28원 안팎이므로, 1천 다이아인 '풍요의 성장 상자'는 약 2만8천원이라고 볼 수 있다.

리니지2M에서는 레벨 60부터가 공식적으로 고(高) 레벨이다.

레벨 60 이상은 레벨을 올리려면 며칠 동안 열심히 몬스터를 잡으며 시간과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러나 '풍요의 성장 상자'를 구매하는 이용자는 한껏 쉽고 빠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다.

[이효석의 게임인] 경험치 파는 리니지2M, 한국 사회의 어두운 거울

몇백만원을 쓰면서 '풍요의 성장 상자'를 연속 구매할 수는 없다.

엔씨는 계정별 구매 가능 횟수를 3회로 제한했다.

엔씨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레벨업이 더딘 최상위 이용자의 성장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라며 "게임 진행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아이템은 아니다.

성장 강화에 필요로 하는 아이템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니즈를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리니지2M 이용자들은 엔씨가 "사실상 경험치를 돈 받고 팔고 있다"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거센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리니지2M 공식 게시판에는 "선을 넘었다", "게임 접속 요금만 받던 게임사들이 이제 게임 속 모든 요소를 돈으로 받아먹는다" 등의 성토가 잇따랐다.

[이효석의 게임인] 경험치 파는 리니지2M, 한국 사회의 어두운 거울

리니지2M '경험치 판매 아이템'의 논란은 한국 사회에 잇따르는 공정성 논란과 맞닿아있다.

다중접속임무수행게임(MMORPG)은 하나의 세계이자 인생이다.

이용자는 레벨1 때 '러닝셔츠 바람'의 보잘것없는 캐릭터를 역사적 영웅으로 성장시키며 재미와 성취감을 얻는다.

경험치와 레벨은 그 자체로 캐릭터의 성장이자 서사다.

고레벨이 된 이후에 레벨을 한 단계 올리기조차 어려워지는 것은 이용자들 간의 밸런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쟁 사회에서 1% 또는 0.1%에 들어가기 어려운 현실의 메타포(은유)이기도 하다.

대다수 이용자는 게임에 자신을 투영하거나 '또 다른 나'를 만들며 지난한 노력으로 캐릭터를 키운다.

게임 속에서 한 달에 수십만∼수백만원 이상을 쓰며 빠르게 성장하는 이용자를 볼 때 느끼는 박탈감이 현실의 그것 못지않은 이유다.

[이효석의 게임인] 경험치 파는 리니지2M, 한국 사회의 어두운 거울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생)와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중반생)는 태어날 때부터 불공정이 현실이었다.

부모의 경제적·지적 자본은 친구들 사이에도 격차가 상당하며, 과거보다 훨씬 줄어든 양질의 일자리를 놓고 중산층·서민의 자녀끼리 경쟁하는 상황이다.

조귀동 작가는 저서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지금의 20대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중산층이 되기가 어려워졌다"며 "노력은 실력이 아니다.

계층이다"라고 촌평했다.

MZ세대가 돈으로 지위를 사거나 남들과 다른 절차로 같은 결과물을 얻는 이들에게 뿌리 깊은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효석의 게임인] 경험치 파는 리니지2M, 한국 사회의 어두운 거울

엔씨의 '리니지'는 1998년 출시된 이후 현재까지 국내 최고의 MMORPG로 군림하고 있다.

게이머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리니지의 성공 비결이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만든 데 있다고 말한다.

리니지는 '혈맹'(동맹 집단)을 중심으로 한 사람 간의 경쟁·싸움을 핵심 콘텐츠로 하는 게임이다.

얼핏 보면 잔혹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입시·취업 경쟁에 익숙하고 어른이 돼서도 서로 내세우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심리를 영악할 정도로 잘 이용한 게임이라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그렇기 때문에 리니지가 경험치를 돈으로 살 수 있는 과금 상품을 출시한 것은 자못 상징적이다.

한국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일련의 사태가 떠올라 씁쓸하기도 하다.

그러나 MZ세대의 분노 탓일까.

리니지2M은 '풍요의 성장 상자'가 출시된 이튿날인 지난 23일, 구글플레이 게임 매출 순위 2위 자리를 넥슨 '바람의 나라: 연'에 내줬다.

리니지2M 출시 8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 편집자 주 = 게임인은 게임과 사람(人), 게임 속(in)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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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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