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 영향으로 최근 영국을 비롯해 유럽 각국이 잇따라 5세대(5G) 이동통신 네트워크 장비 도입 결정을 철회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 1위 대만 TSMC가 거래 중단을 공식화하는 등 화웨이에 악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화웨이가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버라이즌·HP·시스코에 5G 특허 침해 관련 소송

21일 관련업계와 중국 정보통신(IT) 매체 기즈모차이나 등에 따르면 화웨이는 최근 미국 최대 이동 통신사 버라이즌을 포함해 버라이즌의 공급사인 HP와 시스코 등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버라이즌을 포함해 3개 미국 기업에 대한 동시 다발적으로 특허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화웨이는 버라이즌이 시스코와 HP로부터 사들인 기술과 제품을 문제 삼고 있다. 이들이 컴퓨터 네트워크, 영상 통신 등 여러 영역에 관련된 화웨이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화웨이는 이들에 현재 수백 개의 특허에 대해 로열티 지불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화웨이는 지난해부터 버라이즌이 라이센스 없이 화웨이의 특허를 쓰고 있다며 특허료를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는 올 1월까지 미국에서 수차례 만나 협상을 시도했으나 불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화웨이는 지난 2월 텍사스 연방지방법원에 버라이즌이 화웨이가 특허를 낸 많은 통신 기술을 통신망에 이용하고 있다며 특허료를 지불하라는 소송을 낸 바 있다. 화웨이가 요구했던 금액은 약 1조2000억원(10억 달러) 규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송류핑 화웨이 최고법무책임자(CLO)는 "화웨이가 수년간의 연구개발(R&D)을 통해 개발한 특허 기술로 혜택을 봤다"고 설명했다.

이번 소송을 두고 기즈모차이나는 "화웨이는 최근 미국 정부의 국제표준화기구 확약(FRAND) 계약이 일부 변경돼 미국 회사에 기존보다 쉽게 소송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며 "이는 미국 정부가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美견제 거세지자…강점인 5G 네트워크 장비로 반격"

업계에선 최근 미국 정부의 '화웨이 때리기'가 본격화되자 화웨이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웨이는 미국 기업들에 비해 5G 특허권 보유 숫자에서 월등히 앞선다는 강점을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화웨이보다 5G 관련 특허를 많이 갖고 있는 통신장비 업체는 없다. 화웨이는 5G 사업에 채택된 표준기술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 특허인 5G 관련 표준기술특허(SEP)를 가장 많이 보유한 업체다.

미국 기술조사업체 그레이비서비스에 따르면 화웨이는 302건(19%)으로 가장 많은 5G 관련 SEP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웨이는 전 세계 5G 표준을 정립하는 국제이동통신표준화협력기구(3GPP)의 핵심 회원이기도 하다.

중국 IT 매체 텅쉰망은 "이번 소송에서 미국 기업들이 패소하면 전 세계 5G 요금제와 단말기 가격이 모두 오르게 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5G 기술 경쟁에서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는 건 결국 화웨이"라고 했다.
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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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의 강점인 5G 네트워크 사업에 대한 미국의 견제도 거세지고 있다. 앞서 미국의 반(反)화웨이 전선 참여 압박에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국은 최근 잇따라 화웨이 통신 장비를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부분적 허용'을 결정했던 영국마저 기존 방침을 깨고 화웨이 장비 구입을 중단하겠다고 공식 발표하자 화웨이는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내놨다.

스마트폰 사업에도 빨간 불이 들어 왔다. TSMC는 지난 16일 컨퍼런스 콜에서 "9월14일 이후에는 화웨이와의 거래가 완전히 단절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대 중국 제재 조치에 따라 공식적으로 화웨이와의 거래 완전 중단을 알린 셈이다. 때문에 반도체 칩 설계는 할 수 있지만, 생산 능력이 없는 화웨이의 스마트폰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