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연구원들이 스핀파를 연구하는 모습.  표준연 제공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연구원들이 스핀파를 연구하는 모습. 표준연 제공
반도체 소자를 구동하는 전자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 전하(양전하·음전하)를 띠고, 팽이 모양의 회전 운동(스핀)을 한다. 기존 반도체는 전하와 스핀 가운데 오직 ‘전하’에만 주목해 개발이 이뤄져 왔다. 그러나 반도체 집적도를 높이는 미세공정 발전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전자의 스핀 특성을 이용해 소자를 개발하려는 스핀트로닉스(스핀+전자공학) 연구가 활발해졌다. 스핀트로닉스는 전하와 스핀을 동시에 제어해 초고속·초저전력 연산 소자, 대용량 메모리 소자를 구현하는 미래 기술이다.

스핀은 전자가 자기장에 반응해 제자리에서 소용돌이치듯 회전하는 운동을 말한다. 이는 상태를 가늠하기 어려운 ‘양자역학’ 현상이다. 전자 자체가 위치 특정이 불가능하고 확률적으로만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핀은 위(업스핀) 또는 아래(다운스핀) 방향으로 회전한다. 이 두 가지 스핀 방향을 이용해 0과 1의 정보를 처리하거나 저장한다.

심흥선 KAIST 물리학과 교수와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홍콩성시대학 공동 연구팀은 ‘스핀 구름’의 존재를 50년 만에 처음으로 입증해 연구 성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3월호에 실었다.

반도체를 작동시키는 건 전류의 흐름을 만드는 ‘자유 전자’다. 그런데 전류의 흐름에 기여하지 않는 ‘잉여 전자’도 있다. 잉여 전자는 ‘불순물’로 본다. 잉여 전자 역시 스핀(불순물 스핀)하지만, 불순물 스핀은 자유 전자가 만드는 ‘스핀 구름’에 의해 차폐가 된다는 게 물리학계의 오랜 가설이었다.

KAIST-RIKEN-홍콩성시대 연구팀은 나노미터(㎚) 크기의 반도체 결정인 양자점(퀀텀닷)을 이용해 불순물 스핀을 만들고, 주변에 전기장을 걸 수 있는 막대 모양의 게이트(gate) 소자를 설계했다. 또 영하 270도에 가까운 초저온에서 게이트 내 전류 변화를 추적해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스핀 구름을 발견했다. 심 교수는 “다양한 자성 현상을 유발할 것으로 기대되는 스핀 구름은 과학계에서 ‘성배 찾기’와 마찬가지였다”며 “스핀 구름을 이용해 차세대 메모리 소자를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양자스핀팀은 이달 초 왼쪽 방향 스핀파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성과를 다룬 논문을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즈’에 발표했다. 스핀은 자기장을 받아 회전할 때 통상 오른쪽으로 소용돌이치며 파형을 만드는데, 이를 스핀파라고 한다. 연구팀은 코발트와 희토류 금속인 가돌리늄을 섞은 특수 소재에 특수 장비를 써서 빛을 쐈다. 이어 반사된 빛을 분석해 왼쪽 소용돌이 스핀파와 에너지를 세계 최초로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를 주도한 황찬용 책임연구원은 “반도체 크기를 줄이는 데 큰 문제 중 하나는 전자 이동 속도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열 제어”라며 “스핀파를 이용하면 초고속, 초저전력 성능을 갖춘 신개념 연산 소자를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와 우성훈 IBM 연구원은 여러 스핀이 고슴도치 가시처럼 뒤섞여 모여 있는 구조체 ‘스커미온’을 토대로 인간 두뇌 모사(뉴로모픽) 소자를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뉴로모픽 소자는 서로 떨어져 있는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나란히 배치해 정보처리 속도를 높이고 전력 소모량을 줄이는 차세대 반도체다. KIST 관계자는 “스커미온을 활용해 뉴로모픽 소자를 제작한 결과 기존 (뉴로모픽) 소자보다 전력 소모가 10분의 1 이하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