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벤티지랩 "반도체 생산기술 활용…약효 지속시켜주는 시스템 개발"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매일 먹을 약을 챙기는 건 고역이다. 약을 가지고 다니는 게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복용 시간을 놓치기도 한다.

인벤티지랩이 개발하고 있는 약물전달 시스템(DDS)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준다. 보통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으면 그 직후 폭발적인 효과를 내고 약효가 급속히 떨어진다.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증상 완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약물을 자주 복용해야 하는 이유다.

인벤티지랩의 DDS는 파우더 형태의 초소형 구(球)인 마이크로스피어(미소구체)를 이용해 약효를 지속시켜주는 기술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약 복용이나 약물 주사 횟수를 줄일 수 있다. 김주희 인벤티지랩 대표(사진)는 “약을 한 달에 한 번만 주입해도 지속적으로 약물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한다”며 “약에 따라 최대 6개월까지 약효를 유지해준다”고 설명했다.

미소구체를 이용해 약효를 지속하는 기술이 없었던 건 아니다. 용매추출·증발법, 분무 건조법 등을 이용한 미소구체 제조 방법이 대표적이다. 이런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구체의 크기가 들쭉날쭉하다는 데 있다. 크기가 서로 다르면 그 안에 들어가는 약의 양도 차이난다. 약효가 시간에 따라 달라져 원하는 효과를 내기 힘들다.

김 대표의 창업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그는 씨젠, 한국슈넬제약, 휴버트바이오, 비씨월드제약을 거친 생화학 박사다. 약효 지속 시스템은 제약사에 큰 과제였다. 자체 개발도 해왔지만 구체 크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장벽에 부딪혔다. 김 대표는 2015년 인벤티지랩을 창업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뛰어들었다.

인벤티지랩은 동일한 형상과 크기의 미소구체를 대량생산하는 기술인 ‘IVL-PPFM’을 자체 개발했다. IVL-PPFM의 기본 아이디어는 생화학이나 약학이 아니라 공학 분야에서 나왔다. 반도체 웨이퍼를 생산하는 데 사용하는 ‘미세전자제어기술(MEMS)’을 접목해 소초형 구를 원하는 형태로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대표는 “화학 공정에 기계공학 성격을 넣은 융합적 기술”이라며 “기계공학 분야에서 생명공학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처음 이 기술을 들고나왔을 때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많았다. 달성 가능한 기술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인벤티지랩은 안전성, 유효성 등 자체적으로 미소구체의 기준을 세워 차근차근 달성해갔다. 김 대표는 “약물 개발만큼 전달 시스템도 중요한 분야지만 일관적인 기준이 정립돼 있지 않았다”며 “점차 업계에서도 우리의 기술과 기준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인벤티지랩에는 기계공학 전문가도 여럿 있다. 기성 장비를 사용하는 다른 업체들과 달리 공정에 사용하는 장비와 공장을 직접 설계한다. 인벤티지랩은 미소구체 생산공장 두 곳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인벤티지랩은 자체 개발한 기술을 탈모, 치매, 약물중독, 당뇨, 심장사상충, 필러 등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대웅제약, 위더스제약 등 제약사들과의 협력도 진행 중이다. 5월에는 대웅제약으로부터 전략적 투자(SI)를 받았다. 지금까지 누적 투자유치 금액은 265억원이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