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코리아 포럼 2020
(4) 첨단기술 강국 만드는 '수학'

'산업 이끄는 수학자' 양성하는 英 옥스퍼드大 가보니
(1)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의 수업 모습. (2) 기업 밀착형 연구에 대해 설명하는 마이크 가일스 옥스퍼드대 수학과 학과장(왼쪽). 이해성 기자

(1)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의 수업 모습. (2) 기업 밀착형 연구에 대해 설명하는 마이크 가일스 옥스퍼드대 수학과 학과장(왼쪽). 이해성 기자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30여 개국에서 온 100여 명의 교수진, 900여 명의 재학생 등 옥스퍼드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학과 중 하나다. 이곳은 논문으로 끝나는 수학 연구가 아니라 ‘산업을 이끄는 수학자 양성’이라는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다.

마이크 가일스 학과장은 “수학적 방법론이 산업에 적용되기까지는 ‘허들(장애물)’이 있지만 그것을 넘으면 매력적인 솔루션(해법)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수반행렬 방법론’이라는 선형대수학을 연구하며 그래픽처리장치(GPU) 1위 기업 엔비디아와 협업하고 있다. 선형대수학은 인공지능(AI) 기계학습의 밑바탕이다. 가일스 학과장은 “수학과 컴퓨터과학 전문가 사이에 교류가 많아질수록 첨단 제품의 디자인을 최적화하기 쉬워진다”고 강조했다.

기업과 밀착한 수학자들

옥스퍼드대 수학과는 대학원 시스템이 독특하다. 기업이 의뢰한 문제를 두고 약 70명의 대학원생(석·박사)이 4년간 해법을 찾는다. 일명 ‘인폼(InFoMM: 산업에 집중된 수학적 모델링)’ 대학원이다. 영국 총리 직속 공학 및 자연과학 연구위원회(EPSRC) 등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인폼은 기업과의 협업 성과가 두드러질수록 예산을 더 받는다.

인폼은 70여 개 기업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HSBC, 테스코, 지멘스, 보다폰, 아스트라제네카, 노르웨이 실리콘 제조업체 엘켐 등이다. 대학원생은 모두 전액 연봉을 받는 연구원직이다.

인폼 저학년 때는 미분방정식, 선형대수, 데이터분석, 머신러닝 등 AI와 산업수학의 기본 지식을 배운다. C언어(C++), 파이썬, 매트랩 등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도 필수로 습득해야 한다. 이후엔 10주간 기업이 의뢰한 문제를 해결하는 ‘미니프로젝트(MP)’에 몸담는다. 기업이 직면한 기술적 문제를 수학으로 모델링하고 최적 해법을 찾는 ‘몸풀기’ 단계다. 미니프로젝트를 마치면 본게임 격인 ‘리서치 프로젝트’ 과정으로 넘어간다.

인폼 3학년에 재학 중인 젠 샤오는 일본 샤프와 미니프로젝트 ‘유체역학 이용 생산 공정에서 수학적 모델링’을 마쳤다. 이어 고성능컴퓨팅(HPC) 전용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낵(NAG)과 리서치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확률미적분학 등을 사용해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의 품질을 높이는 것이 주요 임무다. 샤오는 “낵 기술진과 프로젝트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며 “추상적 수학이 아니라 산업에 적용되는 수학을 배울 수 있는 게 인폼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산업 어디에나 존재하는 ‘수학의 힘’

옥스퍼드대 수학과의 또 다른 간판은 산업응용수학센터(OCIAM)다. 이곳은 인폼보다도 기업에 더 가까이 있다.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직할 출연연구소인 ‘국가수리과학연구소(NIMS)’와 비슷한 곳이다. 이언 그리피스 OCIAM 교수는 “수학과 산업의 상부상조 관계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며 “대중강연과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수학의 유용성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영국 프리미엄 가전기업 다이슨의 청소기 필터에 OCIAM의 기술이 녹아 있다. 청소기가 빨아들이는 비산 먼지의 이동경로 분석에 수치해석론, 필터 성능 최적화(균질화)에 편미분방정식이 활용됐다.

접히는 폰 '갤럭시Z플립'엔 英 수학 지식 숨어있다

독일 소재기업 쇼트(Schott)도 OCIAM의 15년차 고객이다. 쇼트는 휴대폰·디스플레이용 초박막강화유리(UTG)를 삼성전자, 화웨이 등에 공급하고 있다. OCIAM은 UTG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도치 않은 변형을 ‘역문제’라는 수학기법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쇼트에 전수했다. 삼성전자의 최신 폴더블(접는) 스마트폰 ‘갤럭시Z플립’에 쓰이는 UTG 원판이 쇼트의 제품이다.

OCIAM은 환경문제 해결에도 힘쓰고 있다. 방글라데시 등 적도 인근 저개발국 토양은 비소 등이 혼합된 홍토(紅土)가 대부분이다. 홍토엔 중금속 물질이 많아 지하수가 늘 오염돼 있다. 이렇게 오염된 지하수는 정수기로 거르는 데 부담이 커 적시에 필터를 교체하는 게 중요하다. OCIAM은 홍토를 거를 정수필터의 최적 교체 시기를 수학적으로 도출하고, 이 같은 기술이 적용된 필터를 유니세프 등을 통해 방글라데시 지역사회 40여 곳에 전달했다.

존 오케돈 OCIAM 석좌교수는 “수학은 고차원 기술 확보를 위해 필수적일 뿐 아니라 사회, 공중보건에도 기여하고 있다”며 “수학적 도전은 기업에 장기적으로 유익하며, 매우 값진 보상(extremely rewarding)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옥스퍼드=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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