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리포트

제약바이오社 신약 후보물질
안전성·효능 입증 시험 수행
고급 인력·신속 대처·低비용…3박자 갖춘 K-CRO 뜬다

임상시험수탁기업(CRO)인 LSK글로벌파마서비스가 국내 CRO 중 최초로 올해 미국에 지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매년 약 2000건의 임상시험이 시행되는 신약 개발의 중심지인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이영작 LSK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는 “지난해 폴란드에 유럽 지사를 세웠고 올 2월 대만에 데이터관리 지사를 설립했다”며 “다국가 임상시험 노하우를 쌓으려면 해외 진출이 필수”라고 말했다.

세계 시장에서 변방에 머물러 있던 국내 CRO들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임상시험 경험이 풍부한 해외 CRO에 수십 년간 국내 시장마저 내줬지만 단기간에 임상시험 수행 및 관리 역량을 강화하며 다국가 임상시험을 수주하는 등 저력을 보이고 있다.

임상 성공 열쇠

CRO는 제약바이오기업이 신약으로 개발하는 후보물질의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하는 시험을 수행하고 데이터를 관리하는 등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업체다. 크게 비임상 CRO와 임상 CRO로 나뉜다. 비임상은 세포와 쥐, 원숭이 등 동물에게 약물을 투여해 부작용은 없는지,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이다. 비임상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사람을 대상으로 약물의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하는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보통 임상 1상부터 임상 3상까지 세 번의 임상시험을 통과해야 신약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데 10년 이상 걸리고 수천억원의 비용이 든다. 이 가운데 임상시험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바이오기업이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실패하면 휘청거리는 이유다.

신약을 개발하는 데 CRO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후보물질이 아무리 좋더라도 임상시험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신뢰할 데이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의 미국 임상 3상에 실패한 헬릭스미스는 CRO의 과실을 실패 원인으로 꼽았다. 이후 헬릭스미스는 후속 임상을 관리할 CRO로 세계 상위 다섯 곳 안에 드는 업체인 PRA헬스사이언스를 선정하는 등 CRO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헬릭스미스 사태는 신약 개발에서 CRO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경쟁력 높아진 국내 CRO

CRO 시장은 1980년대 제약 선진국인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아시아와 중남미 등에서 임상시험이 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5년간 세계 CRO 시장이 7.7% 확대되는 동안 한국 CRO 시장은 14.0% 성장했다. 지난해 국내 CRO 시장 규모는 4551억원이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CRO는 60여 곳이다. 국내 CRO가 40여 곳, 해외 CRO 지사가 20여 곳이다.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외국계 CRO들의 강세가 이어졌으나 최근 한국 CRO들이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2013년 33.3%에서 2018년 46.8%로 증가했고 2018년에는 사상 처음 매출 2000억원 고지를 넘었다.

국내 CRO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다국가 임상시험을 수주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16년 LSK글로벌파마서비스는 국내 CRO 최초로 한 다국적 제약사로부터 다국가 임상 3상을 수주해 12개국 95개 임상기관을 관리했다. 각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CRO와 달리 규모가 작은 한국 CRO들은 각 지역의 CRO와 맺은 파트너십을 활용해 다국가 임상시험을 수행한다. 이재연 LSK글로벌파마서비스 이사는 “외국계 CRO가 실패한 국내 주요 제약사의 임상시험을 우리가 맡아 성공적으로 완료하는 등 국내 CRO의 역량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라며 “국내 CRO는 다국가 임상시험을 못 할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국내 CRO의 강점으로 뛰어난 인력, 효율적인 소통, 저렴한 비용 등이 꼽힌다.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외국계 CRO는 중요한 결정을 본사와 협의해야 하기 때문에 긴급한 이슈가 생겼을 때 신속하게 대처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비용도 국내 CRO가 외국계의 절반 수준”이라고 했다.

“실효성 있는 정부 지원 절실”

국내 대표적인 CRO들은 해외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임상 CRO 중 최초로 이달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예정인 드림씨아이에스는 중국 최대 CRO인 타이거메드에 2015년 인수된 뒤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공경선 드림씨아이에스 대표는 “세계에 46개 지사를 둔 타이거메드와 업무 시스템을 단일화해 다국가 임상시험에 참여할 기회를 늘리고 있다”며 “상장 후 중국 임상을 추진하는 한국 기업에 임상시험 컨설팅, 제품 허가 가이드, 임상시험 진행 서비스 등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씨엔알리서치는 미국 현지 CRO를 인수해 유럽 등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상시험 유치를 추진 중이다.

여전히 글로벌 수준과는 격차가 크다. 세계 최대 CRO인 코반스의 2018년 매출은 12조원으로 국내 1위 CRO LSK글로벌파마서비스(268억원)의 440배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국내 CRO에 대한 정부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이 CRO 인증, CRO 컨설팅 지원, 인턴십 프로그램 등 각종 지원책을 제공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임상을 국내 CRO와 진행하는 제약사에 최대 1억원을 지원하는 ‘아웃바운드 지원사업’이 있지만 배정된 예산이 1억원에 불과해 1년에 한 곳만 지원받는다”며 “임상비용과 임상데이터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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