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벨벳(아래)과 아이폰SE에서 넷플릭스 영상을 재생한 모습.
LG 벨벳(아래)과 아이폰SE에서 넷플릭스 영상을 재생한 모습.
5월은 원래 스마트폰 비수기다. 삼성전자, LG전자가 연초에 공개한 신제품에 대한 관심이 수그러들 시점이자 애플의 9월 새 아이폰 발표를 슬슬 기다리기 시작하는 때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LG전자는 작년 2월 공개한 G8 씽큐(ThinQ)의 후속작인 ‘LG 벨벳’을 5월에 들고 나왔다. 애플은 중저가 제품인 아이폰SE를 내놨다. 벨벳은 20분기 연속 적자에 빠진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을 반등시킬 기대주다. 아이폰SE는 그동안 프리미엄 시장 위주로 공략하던 애플이 중저가 시장까지 영향력을 늘리겠다는 의도로 내놓은 제품이다. LG전자와 애플 모두 기대한 바를 이뤄낼 수 있을까. 두 제품을 빌려 잠시 사용해봤다.

익숙한 아이폰SE, 초콜릿폰 닮은 벨벳

아이폰SE의 첫 인상은 ‘익숙함’이다. 아이폰6를 시작으로 아이폰6S, 아이폰7, 아이폰8까지 계속된 애플의 ‘장수’ 폼팩터다. 아이폰7·8과는 케이스도 공유할 수 있다. 아이폰8과 비교해 뒷면 사과 마크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점 정도가 눈에 띈다. 작은 크기 덕에 한 손에 쏙 들어온다. 무게도 148g으로 가볍다. 아이폰X부터 없어진 지문인식 홈버튼은 요즘처럼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상황에서 유용하다.

벨벳은 세로로 긴 외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벨벳의 화면 비율은 20.5 대 9로 전작인 G8 씽큐(19.5 대 9)보다 세로로 더 길다. 2009년 내놓은 ‘뉴 초콜릿폰’의 21 대 9 비율에 근접했다. 디스플레이 주변부를 구부린 3차원(3D) 아크 디자인을 적용해 커다란 크기에도 불구하고 그립감은 좋은 편이다.

제품을 뒤집어보면 LG전자가 특장점으로 내세운 물방울 디자인 카메라가 눈에 띈다. 애플이나 삼성전자 최신 제품의 ‘인덕션’ 디자인과 비교하면 깔끔하게 보이지만 기왕이면 ‘카툭튀’가 없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아이폰SE, 게임 속도 빠릿빠릿…LG 벨벳, 영상 몰입감 압도적
속도는 아이폰SE, 영상은 벨벳

아이폰SE의 가장 큰 특징은 플래그십과 동일한 칩셋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아이폰11 시리즈에 탑재된 ‘A13 바이오닉’ 칩셋이 들어갔다. 덕분에 초경량 차량에 고배기량 엔진을 얹어놓은 느낌이다. 어디서도 버벅이는 모습이 없다. 아이폰11과 나란히 놓고 3D 액션 게임인 ‘파스칼의 내기’를 실행해보니 아이폰SE의 화면이 더 부드럽게 느껴졌다. 디스플레이가 작고 해상도가 낮기 때문인 듯 싶다. 다만 작은 화면 탓에 게임 몰입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벨벳에 탑재된 칩셋은 퀄컴의 스냅드래곤 765 5G다. 퀄컴의 최신 칩셋으로 5세대(5G) 이동통신용 모뎀과 AP를 하나로 만든 ‘원칩’이다. 전작인 G8 씽큐에 탑재된 스냅드래곤 855와 비교하면 한 단계 낮은 성능이다. 제품에 기본 탑재된 레이싱 게임 ‘아스팔트9’을 실행해보니 와이드한 화면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큰 화면 덕에 몰입감은 높았다. 하지만 설정에서 게임 그래픽을 ‘품질 중시’로 바꾸자 프레임이 약간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게임이 아닌 영상 감상에선 벨벳 큰 화면의 장점이 두드러졌다. 넷플릭스를 실행해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조디악’을 틀었다. 벨벳은 좌우로 남는 화면이 없이 영화를 꽉 차게 볼 수 있었다. 반면 아이폰SE는 영화 위아래 레터박스 때문에 실제 영상 크기는 벨벳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다소 아쉬운 카메라

카메라는 두 기기가 정반대 성향을 보였다. 아이폰SE는 후면부 1200만 화소 싱글 카메라를 탑재했다. 벨벳은 4800만 화소 표준 카메라와 800만 화소 초광각 카메라, 500만 화소 심도카메라까지 후면에서 렌즈 3개를 볼 수 있다.

아이폰SE의 카메라는 하드웨어적으로 아이폰8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A13 바이오닉 칩셋을 활용해 최신 기기에서 쓸 수 있는 기능들이 다수 포함됐다.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인물사진 모드와 스마트HDR을 이용할 수 있다. 화소가 낮아도 사진 품질이 아쉽지 않았다. 다만 사진을 찍으면서 광각이나 망원 렌즈가 아쉬울 때가 종종 있었다.

반면 벨벳의 카메라는 3개 렌즈를 활용해 광각, 표준, 인물 사진 등을 편하게 찍을 수 있었다. 영상을 찍을 때 사람 목소리를 또렷하게 담아주는 ‘보이스 아웃포커스’는 강연 등을 촬영할 때 유용해보였다. 플래그십 제품에 흔히 들어가는 광학식 손떨림 보정(OIS) 기능이 빠진 대신 저조도 상황에서 사진의 픽셀 4개를 하나로 합쳐 흔들림을 보정하는 ‘쿼드비닝’ 기능이 들어갔다. 사진 품질을 4800만 화소로 설정해도 어두울 때는 자동으로 1200만 화소(4000×3000 픽셀)로 바꿔버렸다.

작은 화면 vs 높은 출고가

두 제품을 짧게 사용해보니 타깃 사용자층이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폰SE는 애플 생태계에 익숙하면서 상대적으로 스마트폰을 적게 쓰는 사람들에게 더 적합해 보인다. 강력한 칩셋 덕분에 어떤 작업도 쾌적하게 할 수 있지만 6인치 화면이 보편화된 지금 4.7인치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았다. 아이폰 브랜드와 55만원(64GB 제품 기준)이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은 매력 포인트다.

벨벳은 여러모로 무난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다. 특히 영상을 많이 보는 사람에게 안성맞춤이다. 20.5 대 9 비율 디스플레이는 영화를 볼 때 가장 빛을 발한다. 이 제품의 경쟁자는 아이폰SE가 아니라 다른 대화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걸림돌은 89만9800원이라는 출고가다. 구입을 고민하는 소비자들을 어떻게 설득하는가에 따라 제품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