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학술지에 '구로 콜센터 감염' 지역확산 막은 비결 공개

"대규모 신속 검사가 최선책"
해외서 주목한 'IT 방역'
세계에 '코로나 대응법' 한 수 가르친 정은경

지난달 8일 서울시는 구로구 코리아빌딩에 입주한 콜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다음날 서울시와 질병관리본부, 경기도, 인천시가 참여한 합동대응팀이 꾸려졌다. 건물을 즉각 봉쇄하고 역학조사를 했다. 방역당국은 수도권 대규모 지역감염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고 판단했다. 사무실 근무 직원, 거주자 등 1143명을 파악해 검체를 채취했다. 걸린 시간은 불과 4일이다.

확진자는 97명이 나왔지만 광범위한 지역사회 전파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49일 만인 지난 25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의학학술지 ‘신종 감염병’에 한 편의 논문이 공개됐다. 연구진은 “이번 사례는 코로나19 노출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을 스크리닝하는 것의 힘을 보여준다”며 “세계 대유행 상황에 맞춰 세계 보건당국이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역학조사할 것을 권고한다”고 했다.

대표저자 정은경, 첫 코로나 논문
세계에 '코로나 대응법' 한 수 가르친 정은경

이 논문은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사진)이 책임저자(교신저자)로 참여한 첫 코로나19 연구물이다.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 방역 담당자들도 연구자로 참여했다. 정 본부장은 “콜센터 집단감염 사례를 정리해 세계와 공유하기 위해 논문을 썼다”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신속한 협력으로 전파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 콜센터 방역의 결과”라고 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층 규모 구로 코리아빌딩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사람은 1143명이다. 평균 연령은 38세다. 이들 중 8.5%(97명)가 확진됐다. 확진자 94명은 콜센터 직원 216명이 근무하던 11층에서 나왔다. 해당 층 감염률은 43.5%다. 정 본부장은 “밀폐되고 밀집된 근무 환경이나 실내 환경이 코로나19 전파에 위험하다는 것을 한 번 더 보여줬다”고 했다.

이 건물에서 처음 증상을 호소한 사람은 10층 콜센터 직원이다. 2월 22일 증상이 시작됐다. 대규모 확산이 있었던 11층에서는 2월 25일 첫 환자가 증상을 호소했다. 다만 누구를 통해 전파가 시작됐는지 등은 파악하지 못했다. 이 건물 입주자가 이전에 어디에서 감염됐는지 등도 알아내지 못했다.

문자만 1만6000건, 무증상 전파 ‘0’

세계에 '코로나 대응법' 한 수 가르친 정은경

방역당국은 2월 21일부터 3월 8일까지 이 건물에 근무·거주하거나 방문한 사람을 추적 대상으로 정했다. 이 건물 입주자와 근무자 조사를 마친 다음날인 지난달 13일부터 방문자 추적에 들어갔다. 16일까지 나흘간 이 건물이나 주변에 5분 이상 머문 사람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만 1만6628건이다. 휴대폰 위치정보를 활용했다. 문자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가까운 검사소에서 검사받도록 했다.

확진자 가족도 검사했다. 이들은 평균 2.3명의 가족과 함께 살았다. 조사 대상 가족은 225명이다. 이들 중 34명이 감염돼 2차 감염률은 16.2%다. 확진자 중 끝까지 증상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무증상 감염자는 4명이다. 이들의 접촉자 17명을 조사했지만 추가 감염자는 없었다.

정 본부장은 “콜센터에서는 무증상기에 전파된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며 “다른 연구에서는 무증상이나 증상 발생 하루, 이틀 전에 감염력이 있다는 사례가 보고돼 지속적으로 조사·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 IT 활용 방역도 해외서 주목

정보기술(IT)은 방역당국이 발빠르게 대응하는 데 기반이 됐다. 미국의학협회에서 발간하는 세계 최고 학술지 JAMA에는 지난 24일 IT로 코로나19를 극복한 한국 상황에 대한 논문이 실렸다. 고학수 서울대 법대 교수가 교신저자로, 박상철 미국 시카고대 법대 교수가 대표저자(제1저자)로 참여했다.

논문을 통해 이들은 “한국은 입국 제한, 봉쇄, 도로 폐쇄 등 공격적 조치 대신 추적, 검사, 치료 전략을 택했다”며 “첨단 IT 시스템을 광범위하게 활용해 의심 환자와 접촉자를 추적한 것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런 기틀이 마련된 것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다. 감염 전파를 막기 위해 방역당국은 휴대폰 등에서 수집한 위치정보, 주민등록번호, 진료 기록, 출입국 기록, 신용카드 거래 내역, 대중교통 사용 기록, CCTV 영상 등 7가지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광범위한 데이터 공개의 부작용도 있었다. 일부 확진자는 사생활이 노출됐다. 대중의 비난도 받았다. 지난달 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사생활 침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권고안을 발표한 배경이다. 고 교수팀은 “한국 사례는 감염성 높은 질병 확산을 억제할 때 IT 시스템이 유용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도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정보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