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K바이오의 경쟁력이 주목받고 있지만 국내 바이오업계의 반응은 오히려 냉담하다.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에 정책 지원이 집중되면서 해묵은 과제들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어서다. 규제 샌드박스 등 바이오·헬스 분야 규제 혁신을 위해 도입한 제도들이 무용지물 신세가 된 것이 대표적이다.

유전자검사 서비스 1년 넘게 출발도 못해…의약품 원격판매 '화상투약기' 7년째 표류
유전체 분석기업인 마크로젠은 규제 샌드박스 심의를 통과한 1호 기업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2월 공용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의 심의를 받는 조건으로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 실증특례 사업자로 선정됐다. 고혈압, 뇌졸중, 대장암, 위암, 파킨슨병 등 25개 질환에 걸릴 가능성을 유전자 분석으로 알려주는 서비스다. 하지만 1년3개월이 지났지만 출발조차 못하고 있다. 다섯 차례 심의를 신청했으나 의료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IRB에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암 등 중증질환은 DTC 허용 대상에서 제외한 현행 규제의 틀에 갇혀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마크로젠과 함께 DTC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사업자로 선정된 테라젠이텍스도 마찬가지다. 사업 대상으로 신청한 24개 유전자 검사 항목 중 6개 비만관리 항목에 대해서만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IRB의 승인이 났지만 또 다른 규제에 부닥쳤다. 실증특례 참여자의 개인정보보호 요건을 갖췄다는 인증을 요구했다.

이 회사는 미국 의료정보보호법(HIPPA)에 부합하는 개인정보보호인증을 이미 받아놨지만 소용이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개인정보보호 요건을 충족하는 인증을 받기 위해선 1년 정도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넘어야 할 규제가 많다 보니 상당수 기업이 유전자검사 시장에 뛰어들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했다.

오는 8월 시행을 앞둔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두고서도 업계 우려가 크다.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한 ‘가명정보’를 사업에 활용할 길이 열렸지만 법 조항이 모호해 소송에 휘말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은 동의 없는 개인정보를 이용하기 위한 조건으로 △당초 개인정보를 수집한 목적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을 것 △처리 관행에 비춰볼 때 추가적인 이용이 예측 가능할 것 등을 못 박아 두고 있다.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장은 “‘상당한 관련성’ ‘처리 관행’ 등 모호한 표현이 조항에 있으면 사업자는 소송을 의식해 사업에 뛰어들 수 없다”며 “익명성이 보장된 정보에 대해선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미국 일본 등에서 운용 중인 옵트-아웃(거부하지 않으면 동의로 간주)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대면 방식으로 환자에게 약을 원격 판매할 수 있는 화상투약기는 2013년 개발됐지만 7년째 시장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규제 샌드박스 과제로 선정됐지만 여전히 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