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젠·수젠텍 등 일부 진단키트·치료제 개발업체만 대박

핵심 자금조달 창구인 IPO·CB발행 줄줄이 취소·연기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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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업계에 ‘돈줄’이 말라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핵심 자금 조달 창구인 기업공개(IPO)와 벤처캐피털(VC) 투자, 전환사채(CB) 발행 등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어서다. 세계 각국의 러브콜을 받고있는 씨젠, 수젠텍 등 코로나19 진단키트 업체들이 올 들어 생산량을 10배 이상 늘리며 특수를 누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제약·바이오기업의 IPO는 단 한 건도 없었다. 2017년 4분기 이후 9분기 만에 처음이다. 1분기 국내 증시 상장은 14건이었지만 바이오기업은 없었다.

2000억원 안팎의 기업가치를 평가받던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업체 SCM생명과학은 지난달 18~19일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에서 투자 제안을 거의 받지 못했다. 시장이 얼어붙었는데 회사가 제시한 공모가(1만5500~1만8000원)가 높아 부담이 컸기 때문이라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회사 관계자는 “공모가를 조정해 재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회사채 발행이 힘든 바이오기업의 주요 자금 조달처인 CB 발행도 멈춰섰다. 1분기 바이오기업의 CB 발행은 헬릭스미스(800억원) 한 곳에 그쳤다. 헬릭스미스가 CB 조기 상환 대금을 갚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CB를 발행한 걸 고려하면 신규 발행은 한 건도 없었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설명이다. 작년 1분기엔 8개 바이오회사가 CB를 발행해 1185억원을 조달했다.

VC의 직접투자도 급격히 얼어붙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작년 말 투자계약이 성사된 VC 투자만 1~2월에 집행됐고 지난달부터는 코로나19 영향을 받아 투자 실적이 크게 부진했다”고 설명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뚜렷한 매출 없이 외부 투자금으로 버티는 바이오기업이 경기 침체에 더 취약하다”며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로 '돈맥경화'
1분기 기업공개 0·CB 발행 1건…돈줄 마른 바이오社 줄도산 공포

줄기세포 치료제 전달 체계를 연구하는 바이오트코리아의 장영준 대표는 최근 벤처캐피털(VC) 투자 유치 중단 위기에 놓였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200억원대로 평가받던 회사가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서다. 장 대표는 “사비와 정부 연구과제 지원금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바이오업계에 자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정부 연구과제를 맡고 있는 바이오트코리아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코로나19로 대박을 친 진단키트 업체를 제외한 상당수 바이오 기업이 6개월~1년 안에 고사될 위기에 놓였다”는 설명이다.
K진단키트 대박?…바이오벤처는 '돈가뭄'에 죽어간다

VC “싼값 받더라도 생존하라”

바이오업계는 재무적 투자자(LP)들이 현금 유동성 부족을 대비해 투자를 연기하는 데다 코로나19로 제대로 된 기업설명회(IR) 기회도 얻지 못하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서울에 있는 바이오 기업 O사는 지난달 10억원 규모의 VC 투자가 취소됐다. 작년 초부터 투자설명회를 한 끝에 모은 자금이었지만 코로나19로 순식간에 자금 조달 계획이 틀어졌다. 회사 관계자는 “VC 대표가 투자 기업들에 메일을 보내 ‘싼값을 받더라도 일단 투자를 유치해 생존해야 할 시기’라고 조언했다”며 “회사 창업 후 이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각국 봉쇄로 글로벌 임상시험과 투자자 미팅도 미뤄지고 있다. 일정 인원이 모이는 IR과 비즈니스 미팅이 연달아 취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화상회의 등이 보편화돼 있지만 국내 업체들은 경험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면역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굳티셀도 임상시험 일정이 미뤄지면서 올해 안에 300억원을 투자하려던 계획을 재검토 중이다.

현금 확보 위해 정부 과제에 사활

VC 투자뿐 아니라 전환사채(CB)를 통한 자금 조달도 쉽지 않다. 코로나19로 주가가 급락한 상황에서 CB 발행이 막힌 데다 CB를 발행해도 지분 희석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CB는 채권과 주식의 중간 성격으로 주가가 일정 가격을 넘어가면 회사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조달 역시 어려워졌다. 지난 1분기 예정됐던 제약·바이오 기업의 IPO는 모두 연기됐다. 코넥스 시가총액 1위인 바이오 기업 노브메타파마와 SCM생명과학, 압타머사이언스 등이 상장을 철회했다.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월 말 정보기술(IT) 기업인 제이앤티씨가 예상보다 높은 공모가격(시가총액 6363억원)으로 코스닥시장에 화려하게 입성한 것과 대조적이다. 1분기 전체 IPO 건수는 14건으로 전년(16건)과 큰 차이가 없었다.

경기에 취약한 바이오산업

전문가들은 ‘꿈을 먹고 사는’ 바이오산업이 경기침체에 더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비상 경영에 들어간 LP들이 바이오 출자에 몸을 사리는 것도 투자 위험이 다른 산업보다 높기 때문이다. 최근 CB를 사들인 증권사 등 투자자들이 현금 확보에 나서면서 이미 발행된 CB를 조기에 현금으로 상환 청구하는 일 역시 바이오 기업에는 부담이다.

코로나19 진단키트와 백신·치료제 생산업체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진단키트업체 씨젠 주가는 올해 저점(2만9100원) 대비 385%가량 올랐었다. 코로나19와 관련없는 코스닥 시총 상위 기업들은 저점 대비 주가가 10~20% 오르는 데 그쳤다.

국찬우 KB인베스트먼트 글로벌바이오투자본부장은 “정부 대책이 소상공인·자영업자 또는 제조업 중심이다 보니 담보와 매출이 없는 바이오 기업들은 정책 지원의 사각지대가 됐다”고 말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정부가 바이오산업이 미래 유망 산업이라면서도 정작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자금난 해소에는 관심이 없다”며 “CB 만기연장, 바이오 투자펀드 결성 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섭/임유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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