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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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로 잘 알려진 소프트웨어 기업 한글과컴퓨터그룹(한컴그룹). 이 회사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다. 소프트웨어(SW) 기업이 아니라 종합 정보통신기술(ICT) 그룹으로 변모했다는 게 시장의 중평이다. 2010년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이 한컴을 인수한 후 9년 동안 공격적인 기업 인수합병(M&A)으로 가파른 재무적 성장을 실현했다. 신사업에도 공격적으로 뛰어들어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성공했다.

한컴그룹은 SW뿐 아니라 하드웨어, 금융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15개 계열사를 둔 그룹사다. 최근엔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로봇, 모빌리티(교통), 스마트시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사업들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한컴그룹의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는 다양한 소비자 간 거래(B2C) 사업도 적극 추진 중이다.

한컴그룹은 다른 기업과 적극적인 협력으로 기술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단기간에 관련 산업에서 두각을 빠르게 나타낼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한컴그룹은 올해 초 중국 4대 AI 기업 중 하나인 ‘아이플라이텍’과 AI 전문 합작 법인 ‘아큐플라이AI’를 설립했다. 아큐플라이AI를 통해 휴대용 인공지능 통·번역기 ‘지니톡 고’를 출시했다.

아큐플라이AI는 통·번역기 사업뿐만 아니라 금융권을 대상으로 ‘AI컨택센터(콜센터)’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에서 아이플라이텍은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에 AI 기반 콜봇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큐플라이AI는 신한금융그룹과 손잡고 국내 금융 환경에 맞는 한국어 컨택센터로 개발 중이다. 이달 말까지 ‘인바운드 콜(고객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을 대체하는 서비스를 검증한다. 신한은행과는 딥러닝 기반의 문자인식(OCR)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다. 해당 서비스를 통해 직원들의 업무 처리시간이 크게 단축될 전망이다.

앞서 한컴그룹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도 손잡고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어 음성 인식과 통·번역 기술력을 확보했다. 서울시의 스마트시티 관제 플랫폼인 ‘디지털 시민시장실’의 고도화 사업에도 관련 기술을 적용했다. SK텔레콤의 AI 서비스 ‘누구’와 삼성전자 AI 서비스 ‘빅스비’에도 한컴의 AI 기술이 들어갔다.
M&A와 파트너십 통해 ICT 영토 확장하는 한글과컴퓨터그룹
한컴그룹의 AI 기술은 계열사인 한컴로보틱스가 10월에 내놓은 홈서비스 로봇 ‘토키’에도 적용됐다. 사람과 비슷한 모양의 토키에는 음성인식, 지식검색, 사람 인지, 인물 식별, 교육용 콘텐츠, 영상통화 등 다양한 기능이 탑재돼 있다. 한컴그룹 관계자는 “육아와 교육 분야에서 토키의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실제 많은 문의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출시한 PC용 오피스 한컴오피스의 최신 버전인 ‘한컴오피스 2020’에도 AI 기술이 반영됐다. OCR 기능을 활용해 이미지를 문서로 그대로 변환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한컴오피스의 챗봇(대화로봇) 서비스인 ‘오피스톡’에는 ETRI의 AI인 엑소브레인 기술이 탑재됐다. 이용자가 질문을 입력하면 적절한 정보를 찾아 답변해주는 지식 검색이 가능하다. 한컴그룹의 보안 및 블록체인 전문 계열사인 한컴위드의 블록체인 기술인 ‘한컴 에스렛저’도 ‘한컴오피스 2020’에 들어갔다. 관련 기술로 문서 진본 여부와 문서 수정 이력 확인이 가능하다.

한컴그룹은 한컴위드를 통해서는 블록체인 분야에 고삐를 죄고 있다. 지난해 자체 기술로 개발한 블록체인 기술인 ‘한컴 에스렛저’를 공개했다. 이달 3일에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퀵서비스 ‘말랑말랑 아니벌써’도 내놨다. ‘말랑말랑 아니벌써’에서는 소비자와 퀵서비스 기사 간 모든 거래가 실시간으로 자동 체결된다. 체결된 계약 정보는 분산 저장돼 해킹이나 정보의 위·변조를 방지한다. 퀵서비스 이용 시 발생할 수 있는 배송 분쟁을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다. 한컴위드는 기존 퀵서비스 시장에서 기사들이 관련 서비스 사용 시 지불했던 출근비 등 각종 비용들을 없앴다. 업계 최저 수준의 사용료와 수수료만 받고 있다.

한컴그룹은 작년에는 공유주차 전문 기업 미래엔씨티(현 한컴모빌리티)를 인수해 공유주차 서비스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서울시의 ‘사물인터넷(IoT) 공유주차’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컴모빌리티는 서울 마포구, 구로구, 영등포구, 중구에 이어 서울시 자치구 중 최대 규모로 송파구에도 최근 거주자우선주차면을 대상으로 관련 서비스 협약을 체결했다. 부산시에서도 업무 협약을 맺고 공유 주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회사 대내외 체질 개선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소비자에게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으면서도 친숙한 기업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다. ‘말랑말랑’이라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어 각종 서비스에 활용하고 있다. 한컴그룹 관계자는 “빠르게 변하는 기술 환경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연하게 활용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대외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기업 문화를 끊임없이 개선하고 있다. 직원 채용 과정에서는 지원자의 학력을 보지 않는 열린 채용을 하고 있다. 신입 사원들도 회사의 주요 경영 회의에 참석할 수 있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다. 경영진과 실무진은 회의에 모두 참석해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활발한 소통이 가능하다.

보통 임원 위주로 가던 해외 유명 전시 참관단도 실무자 중심으로 꾸리고 있다. 최대한 많은 인원이 해외 전시에 참가할 수 있도록 매년 관련 참관단을 확대하고 있다. 직원들이 해외에서 보다 넓은 시야에서 얻은 영감이 사업 아이디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한컴그룹은 우수한 인재에게는 연차와 직급에 상관없이 파격적으로 특진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가족동반 해외여행도 지원하는 등 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재 운영을 통해 조직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