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헌 큐베스트바이오 대표가 본사 연구소에서 임상 대행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큐베스트바이오 제공
김수헌 큐베스트바이오 대표가 본사 연구소에서 임상 대행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큐베스트바이오 제공
“지난 7월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의 대규모 기술수출 소식에 쾌재를 불렀어요. 1조원이 넘는 빅딜을 성사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자긍심 때문이었죠. 국내 바이오벤처들의 글로벌 신약 개발 도전에 마중물이 되도록 더욱 역량을 키워가겠습니다.”

김수헌 큐베스트바이오 대표(54)가 밝힌 포부다. 큐베스트바이오는 비임상 대행업체(CRO)다. 신약 등 의약품을 개발할 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에 앞서 생쥐 등 동물실험을 통해 독성과 약효 시험 등을 하는 절차다. 특정 후보물질이 환자 치료에 쓸 수 있는지 검증하는 첫 관문이다. 바이오벤처는 물론 규모가 큰 제약사들도 비임상을 CRO에 맡기는 일이 많다. 그만큼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비임상 CRO는 수십 곳이 넘는다. 큐베스트바이오는 제약사나 바이오벤처의 주문을 그대로 따르는 단순 임상대행에 머물지 않고 후보물질 발굴 등 초기 개발 단계의 컨설팅까지 제공해 국내 CRO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30년간 독성시험 ‘한 우물’

김수헌 대표 "후보물질 발굴 등 컨설팅…브릿지바이오 1.5兆 기술수출도 도와"
강릉고를 나온 김 대표는 고교 시절부터 ‘자연 속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교 선배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대관령 젖소 농장을 자주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미래를 그리게 됐다. 그가 서울대 축산학과에 진학한 것도 이런 영향이 컸다.

그의 인생 항로는 대학원 석사과정 때 정해졌다. 번식생리학을 전공하던 그는 대학 실험실에서 생쥐 토끼 등 실험동물을 다루는 일을 했다. 지금은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필수적인 게 동물실험이지만 당시만 해도 동물실험 경험이 있는 연구자도 많지 않았다. 그는 구인을 위해 학교를 찾은 LG화학 직원들의 눈에 띄었다. “당시 LG화학은 실험동물을 활용해 물질 독성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독성팀을 꾸리려던 참이었어요. 실험동물을 다룬 경험이 있는 학생들을 찾고 있었죠. 그런데 학교에 저밖에 없다보니 자연스레 입사로 이어졌어요.”

김 대표는 1989년 LG화학에 입사한 뒤 줄곧 독성시험 업무를 맡았다. 실험동물을 관리하고 약물의 독성과 효능 시험을 하는 게 주 업무였다. 그렇게 30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 국내 바이오업계에서 독성시험 전문가를 꼽으라면 김 대표가 꼭 거명될 정도다.

비임상 토털 서비스로 차별화

실험동물로 약물의 독성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독성시험은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다. 치료제로 쓰이는 약물은 대부분 독성이 있다. 이 때문에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 치료 효과가 뛰어나더라도 생명을 위협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약 개발 프로젝트의 상당수가 초기 단계에 중단되는데 이는 독성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안전성을 확보한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했다.

큐베스트바이오는 단순 임상대행에 그치지 않고 컨설팅을 접목했다. 타깃 검증부터 유효물질 발굴, 후보물질 발굴, 독성시험 등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이전까지의 모든 과정을 대행해준다. 과거처럼 동물실험을 하는 전임상에만 그치지 않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을 제외한 모든 과정인 비임상이 이 회사의 사업 영역이다. 액셀러레이터 역할도 한다. 비임상의 각 단계에 정통한 전문 인력이 바이오벤처를 돕는 일이다. 단순 임상대행에 주력하는 국내 경쟁사들과 다른 점이다. 김 대표는 “찰스리버, 코밴스 등 해외 임상대행업체들처럼 비임상 전 과정을 대행해주고 컨설팅까지 해주는 토털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임상을 의뢰하는 고객사인 바이오벤처를 같은 팀원으로 생각한다. 거래처의 성패가 큐베스트바이오의 성패와 직결된다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타깃 검증, 후보물질 발굴 등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진다. 실험 문의를 해오는 바이오벤처에 거꾸로 열 가지 이상의 세세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약물이 성공할 수 있도록 초기 단계부터 제대로 방향을 잡아주려는 것이다.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일찌감치 프로젝트를 접도록 하는 것도 CRO의 역할이라는 생각이다.

계약 방식도 남다르다. 개별 건마다 계약하기보다는 연간 계약을 맺도록 유도한다. 고객사가 횟수에 관계없이 수시로 물질을 보내주면 시험해서 결과를 알려주는 방식이다. 김 대표는 “거래 고객의 90%가량이 국내 바이오벤처”라며 “단순 임상 대행이 아니라 같은 팀원처럼 움직이며 신약 개발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바이오벤처 성장 마중물 역할”

큐베스트바이오는 브릿지바이오와 인연이 깊다. 김 대표와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LG화학 동료로 만났다. 지금은 돈독한 사업 파트너다. 브릿지바이오가 의뢰한 비임상을 큐베스트바이오가 맡고 있다. “4년여 전에 이 대표가 회사로 찾아왔어요. 비임상에 대한 의견을 나눴죠. 기존과 다른 새로운 신약 개발 방식이 화두였죠. 그러다 그 자리에서 서로 윈윈해보자고 약속했어요. 그때부터 브릿지바이오가 주요 고객이 됐지요.”

큐베스트바이오는 브릿지바이오의 대규모 기술수출에도 한몫했다. 브릿지바이오는 지난 7월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에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 후보물질 ‘BBT-877’을 1조5000억원에 기술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바이오벤처의 기술수출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김 대표는 “브릿지바이오가 기술수출 협상 과정에서 베링거인겔하임에 제공한 자료의 10% 정도가 큐베스트바이오가 작성한 서류였을 것”이라며 “큐베스트바이오의 존재를 국내외 바이오 업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였다”고 했다.

두 회사의 협업은 바이오벤처와 CRO의 상생 관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브릿지바이오가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후보물질을 도입한 지 불과 2년 만에 잿팟을 터뜨린 데는 큐베스트바이오 등 CRO와의 협업이 밑거름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초기 단계의 물질을 외부에서 도입해 신약을 개발하는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 방식이 조명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브릿지바이오는 국내에서 NRDO 방식의 사업모델을 주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신약 개발 바이오텍들이 지금까지의 경험에만 천착하지 않고 다양한 사고와 접근방식을 찾아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2008년 큐베스트바이오를 창업했지만 순탄치 않았다.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 CRO 비즈니스 가능성을 내다본 벤처캐피털들이 자금을 대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지난해 한국투자파트너스와 SBI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40억원을 경기 용인 동백지구에 비임상평가센터를 갖추는 등 연구조직을 확장하는 데 썼다. 사업영역도 비임상 전 분야로 확대했다. 김 대표는 “독성시험 등 비임상 시험을 위한 시설을 먼저 갖춰야 연구용역을 수주하고 매출을 키울 수 있다”며 “CRO는 하드웨어 비즈니스에 가깝다”고 했다.

김 대표의 좌우명은 ‘오늘 열심히 살자’다. 매일 열심히 하다보면 가치있는 미래가 온다는 믿음에서다. 그래서 결코 일을 미루지 않는다. 술자리 등으로 일과가 늦게 끝나도 꼭 이메일을 확인하고 답변을 해준다. ‘잘될 거야’라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도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도전이 늘 즐겁다고 했다. “LG화학에서 10년 근속했을 때는 뿌듯했어요. 그런데 15년 근속을 찍은 날에는 소주잔을 기울이게 되더군요. 이러다 20년 근속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렇게 안주해도 되는 걸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련없이 창업을 결심했죠.”

“4년 뒤 코스닥 상장”

큐베스트바이오는 내년부터 본격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125억원이던 매출은 올해 15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내년 매출 목표는 250억원이다. 동백 비임상평가센터가 본격 가동하고 있어서다. 34명인 직원 수도 2년 안에 50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대표는 “한번 거래를 튼 곳은 대부분 다시 찾을 만큼 신뢰를 얻고 있다”며 “사업영역 확장 효과가 가시화되면 성장세가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큐베스트바이오의 의사결정 구조는 수평적이다. 김 대표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직원들에게 상명하달식 지시를 해본 적이 없다. 의사결정을 할 때는 꼭 중론을 모은다. “일사불란하게 한 곳을 향해서 가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업무를 놓고 서로 격론을 벌이는 혼돈이 있어야 조직이 발전합니다. 직원들 스스로 배우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조직 운영도 파격적이다. 대리급 직원이 태스크포스팀장을 맡기도 한다. 부장, 임원 등이 부하직원이 팀장인 태스크포스팀의 팀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회의도 해당 업무를 맡은 직원이 주도한다. 사장이 나서지 않는다.

큐베스트바이오는 4년쯤 뒤에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며 “사업이 안정기에 들어서는 시점에 맞춰 기업공개(IPO)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해외 사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 우선은 미국에 본사를 둔 한국인이 대주주인 바이오벤처 등과 교류할 계획이다. 미국 보스턴에 본사가 있는 제노스코와는 이미 거래를 텄다. 시험 보고서의 대부분을 영문으로 작성하는 것도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조치다. “저희가 작성한 보고서로 거래업체 최고경영자(CEO)가 해외 학술대회 등에서 임상 결과를 발표하는 것 자체가 저희 회사를 대신 알려주는 겁니다. 큐베스트바이오의 홍보대사인 셈이죠.”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