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2016년 4월 거대한 나무 그림을 들고 직원들 앞에 섰다. 회사 조직 개편의 방향을 직접 설명하는 자리였다. 김 대표가 공유한 그림에는 미국 유타주의 ‘판도’라는 사시나무 군락 모습이 담겨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4만7000여 그루가 각각 서 있지만 땅속 하나의 씨앗에서 자라나 뿌리가 모두 연결돼 있는 하나의 나무다.

김 대표는 “앞으로 게임 개발 조직은 판도처럼 ‘시드(seed·씨앗)’ 형태로 독립적으로 운영하되 결과물은 모두 공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드를 통해 2016년 12월 내놓은 ‘리니지 레드나이츠’는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 1위에 올랐다. PC 게임에 주력하던 엔씨소프트가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처음으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조직 개편 덕분이었다.
사내벤처 독립시켰더니 성과 '팍팍'…조직 쪼개기 과실 따는 IT업계
김택진, ‘판도’나무서 영감 얻어 조직 혁신

국내 인터넷 기업들이 독립성이 강한 작은 조직을 앞세워 잇달아 성과를 내고 있다. 급변하는 정보기술(IT)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큰 조직을 쪼갠 경영전략이 통하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매출은 2011~2015년 7000억~8000억원대에 머물렀다. 국내 게임 시장의 주류로 떠오른 모바일 게임 개발이 늦은 탓이 컸다. 김 대표는 고속성장하던 회사가 주춤하자 2016년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게임 개발 조직을 ‘시드(Seed)’와 ‘캠프(Camp)’로 나눴다. 게임 개발 초기 단계는 시드가 맡는다. 시드가 성장하면 캠프로 승격된다. 시드와 캠프 책임자는 각각 예산 집행, 인력 채용 등을 자율적으로 행사한다. 이런 조직체계의 핵심은 ‘속도’다. 시드와 캠프 책임자는 다른 임원들을 거치지 않고 김 대표에게 바로 보고하고 주요 사항을 신속하게 결정했다.

첫 모바일 게임인 리니지 레드나이츠에 이어 2017년 내놓은 ‘리니지M’은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출시 이후 국내 매출 1위(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기준)를 놓친 적이 없다. 미미했던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 매출은 조직 개편 이후 분기마다 평균 2000억원 이상 나고 있다.

네이버, CIC로 새로운 동력 확보

네이버는 2015년 ‘컴퍼니 인 컴퍼니(company-in-company : CIC)’ 제도를 도입했다. 사내 독립기업화다. 시장성이 큰 사업이라고 판단하면 관련 조직이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고 직원들도 기업가 정신을 갖춘 경영자로 육성하는 제도다.

CIC 리더는 대표 직함은 물론 서비스 관련 의사결정권도 갖는다. 예산 집행, 재무 등을 독자 결정한다. 첫 CIC는 웹툰과 웹소설 조직이었다. 만화 애호가로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인 김준구 대표에게 네이버웹툰이라는 150여 명 규모 CIC를 맡겼다.

네이버웹툰은 실력을 키운 뒤 2017년 분사해 지금은 300여 명 회사로 성장했다. 2015년 2000만 명이던 이용자 수(MAU)가 올해 상반기 6000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 중 해외 이용자는 북미 900만 명 등 총 3800만 명에 이른다.

한동안 고전했던 네이버의 동영상 유통 서비스 역시 CIC 제도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네이버 V CIC’가 운영하고 있는 브이라이브의 글로벌 이용자 수는 올 들어 3000만 명을 돌파했다.

카카오, 신속한 분사 성과 내

카카오도 내부의 독립적인 조직을 키워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을 택했다. 2015년 캐릭터사업을 맡고 있는 카카오IX를 시작으로 카카오게임즈(게임), 카카오페이(간편결제), 카카오모빌리티(교통), 카카오엠(엔터테인먼트), 카카오커머스(상거래) 등을 속속 분사시켰다. 2017년 분사한 카카오페이는 올 3분기에만 거래액 12조9000억원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누적 이용자 수는 3000만 명을 넘어섰다.

조직 개편과 독립 운영, 분사로 이어지는 IT기업 전략은 창업자의 강한 의지가 있어 가능했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기회가 날 때마다 네이버는 하나의 출발선일 뿐이라며 직원들을 독려한다. 최근엔 “네이버를 이끌고 있는 후배들의 회사가 네이버보다 더 큰 회사가 돼 네이버는 잊혀지고 그 회사들의 시작이 네이버였다는 말만 듣고 싶다”고 강조했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최고경영자(CEO) 육성을 자신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성공한 선배 기업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행은 후배 기업가를 키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