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유플러스-CJ헬로’ 등의 기업결합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는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연합뉴스
‘LG유플러스-CJ헬로’ 등의 기업결합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는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연합뉴스
인터넷TV(IPTV) 사업자인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가 각각 케이블TV업체인 CJ헬로와 티브로드를 인수합병(M&A)하는 안건이 정부 승인을 받았다. 2016년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의 기업결합을 독과점 우려 등의 이유로 승인하지 않았던 정부가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파상적인 국내 시장 공세를 보고 뒤늦게 방송·통신 결합을 허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LG유플러스-CJ헬로,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간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한다고 10일 발표했다. 공정위가 내건 조건은 △물가상승률을 넘는 수신료 인상 금지 △케이블TV 채널 수 임의 감축 금지 △고가형 상품으로의 전환 강요 금지 등이다. 업계 관계자는 “방송의 공익성 등을 평가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심사를 거치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최종 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유료방송 '3강 체제' 통신 3社 맞붙는다
합병 절차가 완료되면 유료방송 시장은 통신 3사 위주로 재편되고 1~3위 간 시장 점유율 격차가 줄어든다. 현재 1위 사업자인 KT의 점유율이 31.1%로 제자리인 가운데 4위인 LG유플러스(11.9%)가 3위인 CJ헬로(12.6%)를 흡수하면 점유율이 24.5%가 돼 2위로 뛰어오른다. 현재 2위인 SK브로드밴드(14.3%)가 5위인 티브로드(9.6%)를 합병하면 순위는 3위가 되지만 점유율은 23.9%로 확대된다.

공정위 "방송시장 급변"…통신사에 글로벌 OTT 대항할 길 터줬다

내년부터 유료방송 시장이 통신 3사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을 조건부로 승인했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심사를 거치면 인수 절차가 마무리된다. SK브로드밴드는 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정부의 심사 절차는 늦어도 내년 초 이전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유료방송 '3강 체제' 통신 3社 맞붙는다
“시장 변화가 승인 이유”

공정위가 두 건의 기업결합을 승인한 건 유료방송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유료방송 시장이 케이블TV에서 인터넷TV(IPTV)로 옮겨가고 있는 데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만 찾는 이용자도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분석이다. 케이블TV업계의 출구 전략, 통신사엔 글로벌 OTT에 대항할 만한 덩치를 약속한 셈이다.

2016년만 해도 유료방송에 대한 공정위의 잣대는 엄격했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기업 결합을 허가하지 않았다. 공정위의 태도는 3년 만에 180도 바뀌었다. 비슷한 성격의 인수합병(M&A) 건인 LG유플러스와 CJ헬로,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기업 결합을 흔쾌히 허락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유료방송 시장이 구조적으로 바뀌었다”며 “기업이 기술과 환경 변화에 적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승인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유료방송 시장을 ‘디지털 유료방송’과 ‘8VSB 유료방송’으로 나눴다. 8VSB는 아날로그 가입자가 디지털TV를 보는 방식이다. 8VSB 가입자가 디지털TV로 넘어갈 수는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

공정위가 시장을 분리해 본 덕분에 기업 결합에 따른 부작용을 따지는 잣대가 완화됐다는 분석이다. M&A로 점유율이 오른 효과로 독과점 등의 폐해가 일어날 가능성을 3년 전에 비해 낮게 추정했다는 뜻이다. 공정위는 LG유플러스와 CJ헬로의 경쟁 제한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 건은 경쟁 제한성을 인정했지만 기존보다는 낮다고 봤다. 다만 8VSB 시장에선 두 건 모두 경쟁 제한성을 인정했다.

분리매각 등 논란이 있었던 CJ헬로의 알뜰폰(MVNO) 사업도 LG유플러스의 품에 안기게 됐다. 3년 전에는 CJ헬로비전을 경쟁 촉진 기능을 하는 ‘독행기업’으로 봐 인수가 무산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CJ헬로의 독행기업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과거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이 결합하면 이동통신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 사업자가 되지만 이번에는 두 기업이 합쳐지더라도 3위에 머물러 경쟁 제한성도 없다고 봤다.

과기정통부·방통위 절차 남아

공정위가 통신과 유료방송업계의 결합을 승인했지만 몇 가지 조건을 붙였다. 가격 인상 제한과 8VSB 가입자 보호 등을 위한 조치 등이다. 기업 결합이 완료된 뒤 점유율이 높은 지역에서 가격을 올리거나 케이블TV 채널 수를 줄이고, 8VSB 등 저가 상품 이용자를 값비싼 상품으로 이동시키는 등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조건은 향후 3년간 적용된다.

다만 공정위는 시장상황이 급변할 경우를 대비해 기업결합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조건 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유료방송업계에서 우려했던 IPTV와 케이블TV 간 교차판매 금지 조항은 들어가지 않았다. SK텔레콤 매장에서 티브로드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 제동을 걸지 않겠다는 얘기다.

조 위원장은 “교차판매를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고 봤다”며 “기업이 유통망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소비자도 어느 유통망에서든 원하는 상품을 고를 수 있다는 편의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두 건의 기업결합이 공정위의 손을 떠나면서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로 공이 넘어갔다. 과기정통부는 방송의 공적 책임, 공정성, 공익성 실현 가능성과 시청자 권익보호 등을 심사할 계획이다. 합병법인을 설립하는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는 방통위 심사도 받는다. 과기정통부는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의 경우 방통위 의견까지 검토해 최종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변이 없다면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는 내년 3월 1일 합병 법인을 출범한다. 사전동의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되는 LG유플러스는 연내 인수 작업을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케이블TV와 IPTV의 결합으로 콘텐츠 투자가 늘고 유료방송망 투자가 늘어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통신 사업자 위주로 시장이 재편돼 케이블TV 이용자들의 선택권과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태훈/홍윤정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