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구강건강 진단 기기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스마투스코리아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 먼저 출시한 뒤 해외진출을 노리고 싶었지만 식약처의 제품인증 기준 벽에 막혔다. 식약처에 관련 사항을 문의했지만 "이전까지 없던 제품이라 기준이 확실치 않다"는 답만 돌아왔다. 손호정 스마투스 대표는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식약처의 대답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며 "혁신제품 허가에 덜 보수적인 미국 시장을 먼저 두드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제조업 강국이라면서 유니콘 중 제조업은 0곳"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제조산업협의회 출범
증강현실(AR) 콘텐츠를 만드는 하드웨어 개발사인 명지코리아는 투자자의 벽에 부딪혔다. 이 회사의 안성빈 이사는 "투자자들을 만나면 '요즘 추세는 플랫폼'이라며 온라인, 소프트웨어를 강조한다"며 "투자자들이 제조업에는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기반 사업보다 초기 비용이 높고 수익을 실현하기까지 시간도 오래걸리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 9곳 중 제조기반 스타트업은 한곳도 없다는 것이 제조업 강국이라는 한국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지난 27일 개최한 '기술혁신 하드웨어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에서는 제조 기반 스타트업이 겪는 현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기술개발과 제작공정 등 초기비용이 커 온라인 기반 스타트업보다 3배 이상의 초기자본이 소요된다. 반면 제품이 시장에서 매출을 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훨씬 길어 투자금 회수도 오래걸릴 수 밖에 없다.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못하는 이유다. 2017년 기준 스타트업 총 투자금액 중 제조 스타트업 비율은 8% 수준에 불과했다. 최성진 코스포 대표는 "올해 신규 벤처투자가 4조원을 넘는 등 스타트업 생태계가 외형상 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O2O, ICT, 소프트웨어에 집중돼 있어 제조 및 하드웨어 기반 스타트업 투자는 부족한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행정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손호정 스마투스 대표는 "정부가 제조업을 지원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대출에만 치중돼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익 실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제조 기반 스타트업에는 대출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 전문 액셀러레이터인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이용관 대표는 "정부 지원금이 연료로서의 역할에만 그치는게 아쉽다"며 "미국은 정책자금 지원을 받더라도 7%는 증빙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한다. 우리도 이같은 방식을 도입한다면 창업자들이 본업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컨퍼런스에 참여한 정부 관계자도 현장의 고민에 공감하며 정부차원의 노력을 약속했다. 허성욱 기획재정부 국장은 "가격 중심으로 결정하던 공공조달시장에서 특정 제품군에서는 기술평가높이는 방안으로 바꿔 제조기반 스타트업을 통한 혁신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해외진출을 돕는 코트라(KOTRA)처럼 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돕기 위해 중소기업벤처부와 협의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코스포는 이날 제조 기반 스타트업 생태계의 발전을 위한 혁신 과제들을 상시적으로 발굴하고 정부, 국회 등과 협력하기 위한 제조산업협의회(이하 협의회)를 출범했다. 아이엘사이언스, 명지코리아, 키튼플래닛, 웰리시스 등 스타트업 40여곳이 참여했다.

코스포는 제조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위한 5대 과제도 제안했다. ▲스타트업이 제품을 효과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 ▲제품인증에 대한 매뉴얼 통합 및 혁신제품 인증지원 ▲수입대체, 행정혁신, 국민편익에 직결되는 혁신제품의 공공조달 문호개방 ▲스타트업 제품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지원체계 마련 ▲공공,민간 자본의 제조 스타트업 투자가 활성화 될 수 있는 제도적 여건 조성 등이다.

김봉진 코스포 의장은 "제조 스타트업의 혁신은 국민의 행복과 편익에 직결되는 만큼 제조산업협의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제조 스타트업의 혁신적인 제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