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지난 6~11일(현지시간)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 2019'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에게 'LG 시그니처 올레드 8K'를 선보였다. /LG전자 제공
LG전자가 지난 6~11일(현지시간)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 2019'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에게 'LG 시그니처 올레드 8K'를 선보였다. /LG전자 제공
삼성전자LG전자가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가전(家電) 전쟁'을 벌이고 있다. LG전자가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국제 행사에서 "삼성 8K TV는 가짜"라고 공개 저격하는 등 이번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룹사 실적 부진으로 벼랑 끝에 선 LG전자가 대표 상품인 가전에서마저 밀리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이번 가전 전쟁의 본질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가전전시회 'IFA 2019'에서 삼성전자 QLED(퀀텀닷 발광다이오드) TV를 "기준 미달"이라 공격한 LG전자가 오는 17일 서울에서 다시 한 번 브리핑을 열고 "진짜 8K 기술이 무엇인지 설명하겠다"고 예고했다. 8일부터는 '차원이 다른 LG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바로 알기'라는 75초짜리 TV 광고도 시작했다.

LG전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삼성 QLED는 액정표시장치(LCD)에 기반한 TV로, 백라이트 없이 스스로 빛을 내는 LG전자의 OLED TV와 같은 종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이 오래된 기술을 QLED라 이름만 바꿔 소비자들을 기만, 고가에 판매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Q'LED란 작명부터 'O'LED와 유사한 기술로 보이는 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삼성 QLED TV는 LCD 패널에 퀀텀닷(QD) 필름을 붙인 제품으로 발광다이오드(LED) 백라이트(광원)가 필수다. 이에 비해 LG전자의 OLED TV는 형광성 유기화합물을 기반으로 한 발광 소자가 스스로 빛을 내 별도 광원이 필요 없다. 따라서 OLED는 LCD에 비해 원색에 가까운 표현력을 낼 수 있고 얇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LG전자가 작심하고 삼성전자 TV를 비판한 것은 예상을 뒤집은 성적표에 화들짝 놀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QLED와 8K 등을 앞세워 올 2분기 글로벌 TV 시장에서 점유율 30%(31.5%·금액 기준)를 돌파하는 등 그야말로 '진격'하고 있다. 분기 점유율로는 2013년 1분기 이후 약 6년 만에 최고치다.

삼성전자의 이같은 점유율은 지난 1분기에 비해서도 2.1%포인트나 오른 수치다. 2위인 LG전자(16.5%)와 점유율 차이를 약 2배 가까이 벌렸다.

삼성전자는 판매대수 기준으로도 올 2분기 19.4%의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LG전자(12.4%)와 TCL(9.4%) 하이센스(7.3%) 샤오미(5.5%) 등을 가볍게 제쳤다. OLED로 TV 시장에서 진보한 기술을 내놨다고 자평하는 LG전자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적표란 평가다.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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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는 QLED를 앞세운 삼성전자의 변칙적 마케팅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에 75인치 이상 대형, 2500달러 이상 고가 TV 시장에서 각각 53.9%와 53.8%의 점유율(금액 기준)로 시장 절반 이상을 가져갔다. QLED가 처음 나온 3년 전 'QLED TV=프리미엄' 공식으로 '고가 전략'을 펴다가 최근 제품 가격을 낮춘 것이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배경이 됐다.

기본적으로 QLED TV 패널은 LCD이기 때문에 LG전자의 OLED TV보다 가격 경쟁력이 있다. 실제 이같은 가격 경쟁력이 소비자들에게 통했다. 올 2분기 글로벌 QLED 판매량은 120만대로 전 분기보다 28만대 늘었다. LG전자와 소니 등이 주도하는 OLED(61만대)와의 차이를 2배로 벌렸다.

LG전자가 지난 7일 삼성전자 QLED TV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이후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이 "많은 사람들이 1등을 따라하려 하고 헐뜯는다"면서 "LG전자가 제시한 기준이 합당한지 잘 모르겠다"는 다소 무심해보이는 피드백을 한 것도 성적표로 드러난 자신감에 근거한 것이란 관측이다.

중국 업체들이 자국 LCD 패널을 앞세워 저가 TV 시장을 휩쓰는 것도 LG전자와 삼성전자의 'TV 전쟁'이 보다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대목. 글로벌 출하량 약 2억대에서 정체기를 겪는 현재 TV 시장에서 삼성과 LG는 수익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가 TV시장에서 맞붙어야 한다.

최근 BOE·차이나스타(CSOT) 등 중국 LCD 패널 업체들은 정부를 등에 업고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점유율을 크게 늘리고 있다. 작년 처음으로 LG디스플레이를 제치고 LCD 패널 시장 글로벌 1위로 올라선 BOE는 올 1분기에도 점유율 20.3%로 1위를 지켰다. 차이나스타도 13.2%의 점유율로 삼성디스플레이를 제치고 4위로 올라섰다.

LCD 기술력에서 LG, 삼성 등의 90% 수준까지 도달한 것으로 평가받는 중국 업체들은 국내 업체의 약 40~70% 수준 가격에 LCD를 공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일반인들은 국내 LCD 패널과 중국 패널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며 "저가 TV시장이 중국 업체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때문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중국 업체들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대형 프리미엄 시장이 향후 TV 사업의 향방을 가를 승부처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작년 3분기 실적발표 후 투자자회의에서 "차세대 TV 기술로 QD-OLED를 포함한 다양한 기술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고, LG전자는 OLED 패권을 다지기 위해 3년 안으로 'OLED TV 연 1000만대 생산'을 목표로 잡았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