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다 과학정책 달라져 허탈…표를 위한 과학 안돼"
이달 말 서울대 정년…"한국 과학계 '퍼스트 무버' 발판 역할 할 것"
과총 차기회장 이우일 교수 "소재부품, 일본 보복 전엔 찬밥"
"'한일 경제전쟁'이 발생하면서 정부가 소재부품 분야를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사실 이 분야는 최근까지 '찬밥' 신세였어요. 5년마다 정권이 교체되면 과학 정책도 덩달아 달라지는데, 연구자 입장에선 허탈합니다."

21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차기 회장 이우일(65)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과학기술 정책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 미시간대 기계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87년 서울대에 임용돼 32년간 후학 양성과 연구에 힘쓴 이 교수는 이달 말 정년을 앞두고 있다.

이 교수는 "정치적인 이유로 수출 규제를 감행한 일본 정부의 조치가 아쉽다"면서도 "소재부품 분야를 민간부문에 방치했다가 일본에 크게 당하고서야 다시 돈을 쏟겠다고 하는 정부 결정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사태가 발생한 이상 소재부품 수입을 다변화해 위험을 분산하고, 장기적으로 한국 중소기업들이 만든 소재부품을 대기업들이 믿고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산업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공대 학장을 지내는 등 이공계 교수로서 30여년간 과학기술 연구에 몰두한 이 교수는 정부의 과학 정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이 교수는 "'녹색성장', '창조경제'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학기술 관련 정책의 캐치프레이즈가 달라지고, 지원을 쏟는 분야도 달라진다"며 "연구자 입장에선 굉장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고, 성과도 제대로 나올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정치는 정치고, 과학은 과학"이라며 "정치적 목적 아래 과학기술을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선 안 되고, 4차 혁명 등 국가적 비전을 가지고 20∼30년을 내다보는 일관성 있는 과학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2014∼2016년 서울대 연구부총장을 지낸 이 교수는 서울대 연구 역량 제고를 위해선 대학의 유연성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공 간 융합연구가 중요하다니까 '융합 학과'를 개설해 그곳에서만 융합 연구를 하고, 나머지 학과는 서로 분리돼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대학이 경직돼 있고 학과 간 경계가 여전히 높다"고 지적했다.

서울대가 경직된 원인으로 이 교수는 '교수 기득권'을 꼽았다.

이 교수는 "전공별 교수 정원이나 학생 선발 인원, 예산 등 자원 배분 문제 때문에 대학 조직에 변화를 주기 쉽지 않은데, 이 상태에선 집중 육성 분야를 키우기 어렵다"며 "일종의 기득권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더가 명확한 비전을 내놓고, 칼자루 쥔 교수들의 마음을 열어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년 소회를 묻자 이 교수는 "격동하는 한국 과학발전과 산업 성장을 이공계 연구자로서 직접 목격한 행운아였다"고 회고했다.

다만 이 교수는 "과거 한국 과학계가 미국 등 선진국의 기술을 가능한 한 빨리 쫓아가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였다면, 현재는 새 영역을 개척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의 전환기에 있다"며 "퍼스트 무버의 초입에서 교수직을 마치면서 후배 학자들에게 제대로 된 발판을 마련해주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복합재료학회장으로 선출된 이 교수는 퇴임 후 내년부터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직까지 맡게 된다.

이 교수는 "한국 과학계가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도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