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할리우드 영화 ‘미션임파서블’을 보면 사람 얼굴을 찍자마자 3차원(3D) 프린터로 가면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가면을 쓰면 누가 진짜인지 헷갈릴 정도로 완벽한 모사품이다. 2차원 사진을 3차원 데이터로 완벽하게 변환하는 기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 기술은 대수기하학으로 구현한다.

2차원 엑스레이는 싸지만 많은 인체 정보를 담지 못한다. 3차원 컴퓨터단층촬영(CT)은 비싸지만 몸 구석구석을 들여다본다. 엑스레이 사진 몇 장만으로 고가의 CT 영상을 대체할 수 있을까. 역시 대수기하학적 알고리즘을 짠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AI) 기반 의료기기업체인 뷰노의 창업자 정규환 기술이사(뒤쪽)가 의료영상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인공지능(AI) 기반 의료기기업체인 뷰노의 창업자 정규환 기술이사(뒤쪽)가 의료영상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딥러닝 알고리즘 개발 경쟁

현동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이 같은 진단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한창이다. 이 기술 개발에 앞서 습작단계로 최근 한 레이저 3D스캐너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2차원 사진 한 장을 3차원 형상으로 바꿔주는 스캐너다. 2차원인 물체 주변에 좌표를 찍고 10차 다변수다항방정식을 풀어내 3차원 물체로 바꾸는 대수기하 알고리즘 ‘그뢰브너 기법’이 들어갔다. 벤처캐피털 등에서 반응이 좋아 에이치머신즈라는 회사도 창업했다.

현 교수는 “폐쇄회로TV(CCTV) 등에 찍힌 범인의 키 또는 체형 추정, 물류 로봇의 작업 정밀도 향상 등 다방면에 쓰일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수학 기반 인공지능(AI) 진단기술 발전 속도는 눈부시다. 영상 인식 딥러닝 알고리즘인 컨볼루션신경망(CNN)이 2012년 이후 크게 발전하면서부터다. 구글은 2016년 12만여 개의 안저 이미지를 분석해 당뇨성 망막병증 초기 진단율을 96%까지 끌어올렸다는 논문을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실었다. 이듬해 미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CNN을 통해 13만여 개 피부암 사진을 분석해 진단율을 전문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2차원 엑스레이 사진, 대수기하학 활용땐 3차원 CT영상 '변신'
MRI와 CT영상을 합성도 해

최근 의료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딥러닝 알고리즘은 생성 적대관계 신경망(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이다. 구글에서 AI 개발을 책임지다 최근 애플로 옮겨간 이언 굿펠로가 2014년 내놓은 GAN은 진짜 이미지와 가짜 이미지를 교차 학습하는 알고리즘이다. 실사와 전혀 분간이 안 되는 사람 사진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독일 암센터 연구진은 2017년 자기공명영상(MRI)과 GAN을 접목해 진행성 전립선암 병변 구분 알고리즘을 만든 결과 판독이 전문의 수준에 육박했다고 보고했다. 서로 강점이 다른 MRI와 CT 영상을 합쳐 진단 정확도를 높이는 연구도 각국에서 하고 있다.

이때 서로 다른 영상 화소 간 불일치(기울기)를 ‘손실함수’로 보정하는 딥러닝 기법이 들어간다. 의료법상 AI 기기는 아직 의사의 진단 보조 역할에 머물고 있지만, 실력으론 이미 의사와 동등하거나 뛰어넘었다는 얘기다.

부정맥·간질 등도 수학으로 치료?

국내 최초로 AI 의료기기 인증을 받은 업체 뷰노는 내년 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다. 이 업체의 골연령 측정 소프트웨어(SW) ‘뷰노메드 본에이지’는 서울아산병원 임상 후 의료기기 인증을 받았다. 삼성종합기술원, SK텔레콤 등에서 일했던 정규환 기술이사가 알고리즘 개발을 주도했다.

뷰노는 현재 흉부 CT로 폐암을, 안저 사진으로 녹내장 고혈압 등을 조기 진단하는 SW를 대학병원과 함께 개발 중이다.

양산부산대병원 이비인후과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과 함께 내시경 데이터 딥러닝에 기반한 후두암 조기진단 SW를 개발해 국내외 특허출원을 진행 중이다.

심장 박동의 동기화 현상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해 부정맥 등을 치료하는 연구분야도 있다. 미 하버드대 수학과 등에서 연구하고 있는 심혈관수학(cardiovascular math)이다. 심장근육의 동기화를 유도하는 페이스메이커 등 초소형 의료기기를 체내에 삽입하는 방식이다.

비슷한 원리로 간질(뇌전증)을 치료하려는 시도도 있다. 심혈관수학과는 반대로 동기화를 깨버리는 의료기기를 뇌 주변에 심는 치료법이다. 뇌파의 이상 동기화 때문에 발생하는 간질 특성을 감안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