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국내 주요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은행과 '실명계좌' 연장 계약을 맺기 위해 분주하다. 거래소들은 6개월 주기로 은행과 재계약을 체결, 투자자들에게 가상계좌 서비스를 제공 중인데 이달 말 대부분 서비스가 종료되기 때문이다.

빗썸·코인원·업비트 등은 은행과 재계약이 순조롭지만, 나머지 거래소들은 시중은행의 가상계좌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명계좌'를 쓰지 못하면 거래소들 간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빗썸은 농협의 현장 실사 결과 8개 항목에서 모두 '적정 의견'을 받아내 사실상 재계약을 확정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코인원도 농협과 계약을 연장하기 위한 마무리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업비트는 기업은행과 재계약을 끝냈지만, 신규 회원에 대한 계좌 발급은 허용하지 않고 기존 고객에 대한 계좌만 연장하는 기존 방식을 유지했다.

코빗은 신한은행과의 재계약 자체는 긍정적인 분위기지만 보이스피싱 의심계좌 적발 문제로 법인 계좌가 동결됐다. 이렇게 원화 입금이 불가능해지자 대다수 고객이 이탈, 코빗 내 암호화폐 시세는 다른 거래소 대비 최대 14% 이상 낮은 '마이너스프리미엄'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코빗 측은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해 테스트 작업을 거치고 있다"면서 "은행과 협조해 빠른 시일 내로 입출금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나머지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은행의 가상계좌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은행들이 금융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신규 서비스를 허용하지 않고 있어서다.

빗썸·업비트·코인원·코빗을 제외한 대다수의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하나의 법인 계좌를 이용해 여러 회원들이 거래하는 형태의 이른바 '벌집계좌(집금계좌)'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 10일 금융위원회가 기존에 내놓은 '가상통화 가이드라인'을 내년 7월9일까지 연장하기로 하면서 내년 7월까지는 집금계좌 형태의 거래소 운영이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달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암호화폐 취급 업소들에 대한 국제 권고안을 제정하고 자금세탁방지(AML) 절차를 강화하면서 분위기가 급박해졌다. 가상계좌가 없는 대다수의 거래소들은 사실상 존폐위기에 놓인 셈이다.

FATF의 권고안은 기존 금융권 수준의 강력한 AML기준을 따르도록 해 가상계좌가 없는 거래소들은 대부분 거래소 자격 자체를 상실할 수 있기 때문. FATF는 각국 규제당국이 특정 기준을 제정하고 이를 만족시킨 거래소에만 자격을 부여해주는 형태의 권고안을 제안했고 G20(주요20개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국가들이 이를 수락했다.

금융위도 FATF의 권고안을 따를 예정인데 FATF 권고안 도입 준비 기간이 종료되는 내년 6월 이전까지 새 기준을 세우고 거래소 점검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명확인 입금계좌가 없는 거래소들은 자금세탁방지 부서를 신설하고 관련 인력을 강화하는 등 FATF 기준을 만족시키고 은행 가상계좌를 발급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한 은행 관계자는 "FATF규정을 맞추려면 비용 많이 들어 대부분 거래소들이 비용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예를 들면 뉴욕 기준으로 AML 수준을 맞추려면 전체 인력의 절반은 AML 관련 감시 인력으로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 당국 경력자 역시 채용해야 하는데 은행장보다도 연봉이 높은 데다 그나마 인력풀(pool)도 제한적"이라며 "상당수의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규제 준수에 따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