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도나 스트리클런드 캐나다 워털루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12일 서울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고강도 초단파 광펄스(CPA)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도나 스트리클런드 캐나다 워털루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12일 서울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고강도 초단파 광펄스(CPA)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내가 만든 레이저가 10여 년 뒤 안과 수술에 쓰이는 걸 보고 놀랐다. 난 그저 100% 순수하게 실험 물리학에 몰두했을 뿐인데….”

지난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도나 스트리클런드 캐나다 워털루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12일 방한했다. 그는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순수 과학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과학자 최고의 영광인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도 향후 본인 연구가 어떻게 발전할지는 알기 어렵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스트리클런드 교수는 1985년 미국 로체스터대 박사과정 지도교수인 제라르 무루와 함께 고강도 초단파 광펄스(CPA: Chirped Pulse Amplification) 기술을 창안했다. 이 기술은 30여 년 뒤 노벨물리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스트리클런드 교수는 55년 만에 나온 여성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다.

‘정교한 레이저 망치’

CPA가 등장하기 전에도 레이저는 많았다. 그러나 고강도, 단파장 두 가지 성질을 가진 레이저는 없었다. 이런 레이저는 타깃 물질(매질)에 닿는 순간 매질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레이저 출력을 높이려다 증폭기가 타버리는 문제도 컸다.

CPA 개념 자체는 스트리클런드 교수의 은사인 무루 교수가 제안했다. CPA 제작에 사용되는 증폭기 역시 무루 교수가 프랑스에서 만들었다. 스트리클런드 교수는 각종 광섬유 등 재료를 조달하고 실험과정을 총괄했다.

스트리클런드 교수는 CPA를 ‘정교한 레이저 망치’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대로 CPA는 매질(눈)을 손상시키지 않고 타깃 부위인 각막만을 정확히 깎아내는 라식수술에 활용되고 있다. 휴대폰 등의 부품 가공에도 쓰인다.

그는 먼저 짧은 펄스를 가진 레이저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레이저에 빨강 주황 파랑 등 다양한 색깔을 입혔다. 펄스 모양을 쉽게 분간하기 위해서다.

다음으론 광섬유 격자 사이에 레이저를 보내 진동시키면서 펄스의 시간폭(반복 주기)을 늘려 긴 펄스를 갖는 저에너지 레이저로 바꿨다. 이후엔 진폭을 늘려 긴 펄스·고에너지 레이저를 만들고, 이를 다시 광섬유 격자로 보내 시간폭을 압축했다. 최종적으로 짧은 펄스·고에너지를 갖는 레이저 ‘CPA’가 만들어졌다.

그는 다양한 색상의 레이저 스펙트럼을 증폭할 때 생기는 큰 파형을 제어하는 것이 연구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광섬유가 자꾸 끊기는 것도 애로 사항이었다고 덧붙였다.

한국 발전은 과학기술 덕분

스트리클런드 교수는 “20세기가 전자공학(일렉트로닉스) 시대라면 21세기는 광자학(포토닉스) 시대”라고 규정했다. 그는 “레이저는 휴대폰, 의료기기뿐 아니라 데이터 전송, 데이터 처리 등에 활용된다”며 “광자학은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해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이번 간담회에서 “한국이 노벨과학상을 아직 못 탔다고 해서 노벨상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운 등 과학적 성과 외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한국 대기업의 기술 수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스트리클런드 교수는 “한국의 비약적 발전은 과학기술 때문”이라며 본인도 삼성전자 휴대폰과 LG전자 생활가전제품을 쓴다고 말했다.

노벨상을 탄 이후 하루에 10개 이상 행사를 다닐 정도로 바빠졌다는 그는 “과학기술로 국가가 일어설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례가 한국이라고 강연에서 종종 언급한다”고 귀띔했다.

스트리클런드 교수는 이날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에서 열린 특강에서 형형색색의 레이저로 가득 찬 연구실 사진을 보여주며 “내 연구실은 항상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고 말해 좌중에 웃음을 안겼다. 이날 강연엔 서울대 학생과 고교생, 일반인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34년 전 만든 '레이저 망치', 라식 수술에 쓰일 줄 몰랐다"
CPA는 고출력 레이저 만드는 표준기법

CPA는 1985년 이후 고출력 레이저 펄스를 만드는 표준기법이 됐다.

CPA가 개발된 후 레이저 출력은 10의 20제곱·25제곱 등 지수함수 배율로 급격히 높아졌다. 도나 스트리클런드 교수와 제라르 무루 교수가 1985년 발표한 논문에선 레이저 펄스 폭이 2피코초(1조 분의 1초), 에너지는 1밀리줄(1000분의 1줄)에 불과했다. 현재 레이저 펄스 폭은 펨토초(1000조 분의 1초) 또는 아토초(100경 분의 1초)다. 에너지는 페타와트(1000조와트)급에 이른다.

이 같은 극초단 초강력 레이저는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광자 물리학의 필수 도구다.

이병호 한국광학회 회장(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은 “스트리클런드 교수의 연구 성과는 논리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지만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으로 레이저 분야 판도를 완전히 바꿨다”며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등과도 밀접히 연결되는 중요한 발견”이라고 설명했다.

■펄스

하나의 무늬가 있는 비주기적 파형. 진폭은 있지만 마루(극대)는 있고 골(극소)이 없어 파장은 없다. 심전도가 펄스의 일종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