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지난해 봄 국내 통신업체 KT의 인공지능(AI) 플랫폼 사업팀은 호텔 공부에 열중했다. 통신시설 현장이 아니라 호텔 공사 현장을 누비고, 호텔 시스템을 공부하고, 호텔 관계자들을 만났다. KT AI 서비스 ‘기가지니’를 호텔에 적용하는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AI 스피커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AI 스피커는 일반 소비자를 타깃으로 했다. 사업팀은 기가지니의 활용도를 높이고 시장을 확장하는 색다른 사업 전략을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호텔’이었다. 이용자가 낯선 공간인 호텔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 궁금한 점들을 기가지니가 효율적으로 해결해줄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해 7월 서울 중구에 있는 노보텔앰배서더동대문 호텔·레지던스 객실에 처음으로 기가지니를 적용했다. 세상에 없던 ‘AI 호텔’이었다. 반응은 좋았다. 호텔 이용객은 물론 객실 문의 업무를 덜 수 있게 된 호텔 측도 만족해했다. 입소문이 퍼졌다. 1년도 안돼 기가지니를 적용한 ‘기가지니 호텔’은 여덟 곳으로 늘었다. KT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터넷TV(IPTV)에 AI를 접목한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다. 이런 차별화 전략을 통해 기가지니는 국내 1위 AI 서비스가 됐다.

호텔·아파트 공략…협업 차별화

“처음 호텔 객실에 도착하면 조명 스위치는 어디에 있는지, 온도 조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죠. 수건 등 욕실용품, 실내 슬리퍼 등을 요청해야 할 때도 있고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가지니를 활용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기가지니 호텔 사업을 맡고 있는 김홍준 KT AI플랫폼사업팀장의 말이다.

기가지니 호텔은 음성 인식과 터치스크린 기능이 있는 단말기를 통해 객실에서 쉽고 빠르게 호텔의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조명과 실내온도 조절은 물론 객실 비품 신청, 호텔 시설정보 확인 등을 할 수 있다. TV를 조작하고 음악도 들을 수 있다. 외국인 투숙객이 많은 호텔 특성을 반영해 영어도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 투숙객이 객실에 들어서면 자동으로 영어 모드가 된다. 중국어, 일본어 서비스도 곧 도입할 예정이다.

KT는 노보텔앰배서더동대문에 이어 서울 레스케이프호텔, 부산 베이몬드호텔, 제주 헤이서귀포 등 전국 여덟 개 호텔 700여 개 객실에 기가지니 호텔 서비스를 적용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다. 일본 베트남 홍콩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다양한 파트너사와 협력을 추진 중이다.

최근 소비자는 전화 등 대면 문의보다 비대면 문의를 선호한다. 기가지니 호텔의 인기가 높은 이유다. 기가지니 호텔 투숙객은 1박당 약 30번 “지니야”를 부른 것으로 집계됐다. KT 관계자는 “조식 시간 문의 등 반복적인 업무를 덜어줘 호텔 직원들의 업무 환경이 개선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IPTV 접목…서비스 융합 차별화

KT는 2017년 초 IPTV에 AI를 접목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IPTV에 적용한 기가지니는 음성으로만 이용할 수 있는 기존 AI 스피커와 달리 화면과 연동해 교육, 커머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차별화 전략 덕분에 기가지니 가입자는 이달 170만 명을 돌파했다. 가입자 기준으로 국내 1위 AI 서비스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2월엔 어린이용 AI 서비스인 ‘무민 키즈폰’을 내놨다. 음성인식 기능이 있는 어린이용 워치다. 8월엔 크기와 무게를 대폭 줄인 ‘기가지니 버디’를 선보였다. KT 관계자는 “기가지니 버디는 고음질의 하만카돈 스피커를 탑재했음에도 가격이 합리적이어서 학생, 주부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지난 5월엔 ‘기가지니 테이블 TV’를 출시했다. 음성인식 기능이 있는 개인용 AI TV다. 11.6인치 디스플레이(화면)를 적용했으며 유선 통신망이 아니라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이동성을 높였다. 기존 기가지니와 달리 거실뿐만 아니라 침실 주방 서재 등 집안 어디에서나 이용할 수 있다.

올해 3분기엔 KT 전용 단말기가 아닌 다른 제조사 단말기에서도 기가지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가지니 인사이드’를 선보인다. 냉장고 안마의자 에어컨과 같은 가전제품은 물론 차량 등에서 “지니야” 하고 불러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열린 생태계’로 시장 확장

기가지니 호텔의 성공을 기반으로 KT는 아파트, 자동차업체 등으로 협업 파트너를 확장하고 있다. ‘기가지니 아파트’는 2017년 8월 부산 영도구에 있는 롯데캐슬 블루오션에 처음 도입했다. 음성과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조명, 엘리베이터 등을 조작하고 다양한 아파트 정보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KT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60여 개 건설사, 공공기관과 협업해 기가지니 아파트 서비스 확대를 추진 중이다.

지난해 7월엔 현대·기아자동차와 손잡고 ‘홈투카’ 서비스를 내놨다. 집 안에서 음성명령으로 밖에 있는 차량의 온도를 설정하고, 문을 잠그고, 비상등·경적 등을 조작할 수 있다.

KT는 기가지니 AI 생태계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2017년 파트너사가 기가지니 응용 서비스를 더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공개했다. 같은 해 중소기업,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연구기관과 협력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에 있는 우면연구센터에 AI테크 센터를 열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