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상대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얼굴을 이미지로 구현한 겁니다.”

마빈 천(한국 이름 천명우) 예일대 심리학과 석좌교수(사진)는 지난 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의 태블릿 PC에 있는 인물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흐릿하지만 실제 인물과 상당히 비슷한 이미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목격자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범죄자의 몽타주를 이미지로 구현하거나, 꿈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공상과학(SF)영화에서처럼 상대의 생각과 기억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천 교수는 인간의 ‘정신’을 ‘과학’으로 풀어내는 인지 신경과학 분야 세계적 석학이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뇌 영상을 찍고 이를 분석해 사람의 생각과 기억을 재현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런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31일 호암과학상을 수상한다.

ADHD·치매지수 개발 성공

천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fMRI를 활용한 ‘마음 읽기’라고 소개했다. 이 중에서도 천 교수의 전문 분야는 주의·기억·지각과 같은 인지 기능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구글 맵을 통해 보면 어떤 구간에 차가 많아 교통 체증이 일어나는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fMRI로 찍은 뇌 영상도 마찬가지예요. 집중할 때, 무언가를 기억할 때, 우울한 감정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의 구간이 모두 다릅니다.”

최근 그가 관심을 둔 분야는 주의력이다. 사람이 집중할 때 특정 신경망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분석해 알고리즘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인간의 주의력을 수치로 지표화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천 교수는 “이전까지는 주관적인 영역인 ‘정신 상태’를 수치화할 수 없었다”며 “하지만 이 연구를 통해 주의력 결핍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피드백을 통해 주의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지수, 치매지수 등을 통해 환자의 정신 상태를 진단하고, 관련 치료제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천 교수는 “fMRI로 말 못하는 유아의 뇌 영상을 촬영해 난독증 우울증 자폐증의 가능성을 진단하고 이를 예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간 신경망 닮은 AI 나올까

그의 연구는 인공지능(AI) 발전과도 직결된다. 인간의 신경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알고리즘을 만들면 인간의 신경망과 닮은 AI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도 fMRI를 통해 기억을 시각화하는 기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AI 개발업체들이 인지 신경과학 분야 인재들을 ‘입도선매’하려는 이유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애플 등에서 AI 연구를 위해 관련 인재를 ‘싹쓸이’하려고 한다”며 “관련 분야 박사 학위 소지자들을 4억~5억원의 연봉을 주고 모셔간다”고 전했다.

해외에서 유학한 중국계 정보기술(IT) 인재가 본국으로 돌아가 ‘인적 자산’이 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도 우수한 인재에게 해외 유학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인적 자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일대 학부대학장인 그는 인문학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한국에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AI 시대로 접어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가 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는 심리학 윤리학 철학 등 인문학의 기반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고재연/좌동욱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