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슈트 동력장치(아크 원자로)만 줘봐요. 비슷한 슈트를 제작할 수 있을 겁니다.”
뇌졸중 편마비 환자를 회복시키는 재활로봇 헥소-게이트. 한창수 헥사휴먼케어 대표가 완성된 제품을 한국경제신문에 공개했다. 경기 성남 분당러스크병원 등에서 임상을 마쳤으며 가격은 5억원대다. /안산=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뇌졸중 편마비 환자를 회복시키는 재활로봇 헥소-게이트. 한창수 헥사휴먼케어 대표가 완성된 제품을 한국경제신문에 공개했다. 경기 성남 분당러스크병원 등에서 임상을 마쳤으며 가격은 5억원대다. /안산=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상영 중인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주인공 아이언맨의 슈트(웨어러블 로봇)를 현실화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창수 헥사휴먼케어 대표(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2008년 국내에 웨어러블 로봇을 처음 선보인 한 대표는 이 분야 독보적인 권위자다. 그는 최근 삼성전자에서 25년간 일한 공학자 두 명을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재활로봇)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웨어러블 로봇은 사람 팔과 다리 등에 착용해 근력과 지구력을 끌어올리는 장치를 말한다. 기술시장 조사업체 테크내비오 등에 따르면 글로벌 웨어러블 로봇시장 규모는 2025년 9조8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을 재활로봇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BMW 공장선 '로봇 작업복'…'헐크' 착용땐 군장 90㎏ 거뜬
기지개 켜는 웨어러블 로봇

웨어러블 로봇은 재활로봇, 근력을 높이고 부상을 방지하는 작업용 로봇, 노인의 일상생활을 돕는 보조로봇 등으로 나뉜다. 웨어러블 로봇은 이미 일상 곳곳에 파고들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BMW 스파턴버그 공장 등 해외에선 근로자들이 상반신에 작업용 로봇을 걸치고 작업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미 록히드마틴사의 군용 웨어러블 로봇 헐크(Hulc)를 착용하면 90㎏까지 군장을 부담 없이 멜 수 있다.

재활로봇 글로벌 시장은 이제 막 열리는 단계다. 양산과 표준화가 어렵고 맞춤형 생산을 해야 하는 제품 특성 때문이다. 인체모방 구조설계기술과 정밀센서 등 고도의 로봇기술을 확보하고 임상까지 넘어야 하는 것도 장애물이 되고 있다.

한 대표는 “예상보다 빠르게, 심각하게 닥친 저출산·고령화시대의 키워드는 노동력을 증폭, 보존, 회복하는 것”이라며 “이 세 가지 기술이 집약된 첨단 분야가 웨어러블 로봇”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군사용 웨어러블 로봇 원천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경남 거제에서 열린 3000t급 잠수함 진수식에 학자로선 유일하게 초청받았다.

대기업 웨어러블 로봇 알고 보니…

글로벌 재활로봇 시장은 스위스 호코마, 일본 사이버다인, 미국 엑소바이오닉스, 이스라엘 리워크 등이 선점했다. 요시유키 산카이 일본 쓰쿠바대 교수가 2004년 설립한 사이버다인은 2014년 일본 증시에 상장한 이후 시가총액이 1조5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매출은 지난해 185억원으로 많지 않았으나 영업이익률이 40%에 가까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의 재활로봇 할(HAL)은 보행 의도를 근전도측정기술(EMG)로 간파해 착용자가 걷도록 돕는다.

2014년 6월 브라질월드컵 개막식 때 하반신 마비 환자의 시축을 가능케 한 웨어러블 로봇은 BMI(브레인-머신 인터페이스)를 적용했다. 뇌파를 측정해 행동으로 연결하는 첨단기술로 미 듀크대 연구팀이 개발했다.

사이버다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엑소바이오닉스는 2014년 설립됐다. 웨어러블 로봇 창시자로 불리는 호마윤 카제루니 미 UC버클리 교수가 세운 연구소기업이 전신이다. 2016년 척수손상, 뇌졸중 환자 재활을 돕는 엑소GT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세계 주요 병원 등 170곳에서 이를 활용 중이다. 록히드마틴사의 헐크도 카제루니 교수가 개발해 기술이전한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 웨어러블 로봇 개발을 이끌고 있는 현동진 현대차로보틱스팀장이 카제루니 교수의 제자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9’에서 각각 내놓은 GEMS와 클로이슈트봇, 현대차가 ‘CES 2017’에서 선보인 H-MEX 등은 엑소바이오닉스 등의 카피캣(모방)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엔젤로보틱스의 ‘엔젤 슈트’
엔젤로보틱스의 ‘엔젤 슈트’
단기 과제 나눠 먹기 없애야

국내 로봇공학 분야 젊은 석학인 공경철 엔젤로보틱스 대표는 “웨어러블 로봇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승부를 걸 만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공 대표는 2016년 장애인로봇경연대회(사이배슬론)에서 워크온슈트란 제품으로 중증 하반신 마비환자를 걷게 해 주목받았다.

이 회사의 핵심 기술은 공 대표가 서강대 재학시절부터 20년 동안 개발한 ‘무저항 정밀 구동 액추에이터’와 ‘발바닥 특수 센서’다. 무게감과 저항력을 최소화하면서 미세한 움직임을 큰 동작으로 전환하는 장치다. 액추에이터 모듈 무게를 1.5㎏→0.85㎏→0.65㎏→0.5㎏으로 연이어 줄이면서 반대로 힘은 높였다. 특수 센서는 발바닥에 가해지는 미세한 압력을 분석해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힘을 증폭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아직 양산 단계는 아니지만 엔젤로보틱스의 끈질긴 연구개발은 로봇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현재 재활로봇 관련 국가 연구개발 사업은 ‘2년 미만 단기 과제 나눠 먹기’로 채워져 있다. 경쟁력 있는 기술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엑소바이오닉스와 사이버다인은 10년 이상 국가와 지역사회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산=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