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코리아 포럼 2019

갈 길 먼 K로봇 - (1) '외화내빈' 한국 시장
< 외국은 펄펄 뛰고 있는데… > 세계 최고 성능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아틀라스’가 장애물 뛰어넘기 종합훈련(파쿠르)을 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제공

< 외국은 펄펄 뛰고 있는데… > 세계 최고 성능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아틀라스’가 장애물 뛰어넘기 종합훈련(파쿠르)을 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제공

국내 로봇 시장은 ‘외화내빈(外華內貧)’이란 말로 요약된다. 외형만 보면 한국은 세계적인 로봇 대국이다. 근로자 1만 명당 716대의 로봇을 활용해 산업현장 로봇 밀도가 세계 1위다. 제조업용 로봇 출하량 역시 세계적인 수준이다. 한국은 2017년 3만9732대(IFR 2018 기준)의 제조업용 로봇을 만들었다. 중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로 미국, 독일보다 앞순위에 자리잡고 있다.

선수가 없다

투자 없고, 규제에 막히고…세계 1위 K로봇 '불편한 진실'

단순 운반, 조립 로봇을 빼고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2017년 제작된 제조업용 로봇 중 첨단기술이 요구되는 협동로봇은 550대에 불과했다. 협동로봇은 근로자와 보조를 맞출 수 있는 로봇을 의미한다. 정밀센서로 근로자의 상태를 확인해 그때그때 동선을 바꾸는 게 특징이다.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서비스 로봇 시장은 크지 않다. 전체 로봇 시장(5조5255억원)의 10% 남짓인 6072억원 규모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절반 가까이가 로봇청소기를 비롯한 가사용 로봇(2317억원)이 차지하고 있다. 전문 서비스 로봇 중 시장다운 시장이 형성된 분야는 의료로봇(834억원) 정도다. 로봇 업계에서 “제대로 된 국산 로봇은 산업용 기계와 청소기뿐”이란 자조 어린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연구개발(R&D)에 돈을 쓸 ‘선수’가 없다고 설명한다. 국내 로봇 생산업체 2191개 중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이 2126개(97.0%)에 이른다. 대기업은 8개(0.4%)뿐이다.

영세한 기업은 R&D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전체 로봇 생산업체 중 R&D사업 실적이 있는 곳은 31%에 불과하며, 이들이 쓴 비용은 3794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삼성전자 단일 기업이 쓴 R&D 비용(18조6000억원)의 50분의 1 수준이다. 그중 2616억원이 정부 지원금이었다. 고급 인력도 드물다. 2만9000여 명에 달하는 로봇산업 종사자 중 박사급 R&D 인력은 493명(박사과정 재학생 포함)뿐이다.

규정이 없다

‘배달의민족’ 브랜드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의 엔지니어들은 요즘 도로교통법 관리를 받지 않는 사유지를 뒤지는 게 일과다. 도로 테스트 단계인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시험하기 위해서다.

실제 도로 시험은 엄두도 못 낸다. 무인이송 로봇과 관련한 법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무인이송 로봇은 차량으로 분류되지 않아 도로주행이 불가능하다. 인도 통행 역시 안 된다. 안전 기준, 속도 등의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 법과 규정이 과학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배달로봇의 공공도로 시험을 더 미루기 힘든 상황”이라며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해 규제 없이 2년간 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는 실증특례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로봇 관련 규정은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 무인이송 로봇처럼 관련 규정이 없는 분야가 적잖다. 원격제어가 가능한 중장비 로봇이 대표적이다. 현행법상 중장비 로봇은 건설기계로 분류되는데 의무적으로 운전자를 둬야 한다. 원격 제어 기능을 집어넣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운전자 건설기계 면허제도, 건설기계 안전규정 등을 통째로 손봐야 한다.

정만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정 요건을 갖춘 기업이 자유롭게 자율주행 로봇을 테스트할 수 있게 한 미국, 원격제어 로봇과 관련된 법령을 일찍 마련한 유럽 등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스터 플랜’이 없다

국내에서 로봇 R&D를 총괄하는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다. 2009년 ‘제1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을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5년마다 로봇 R&D 정책 방향을 새로 짜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오랫동안 힘겨루기한 끝에 국가 R&D 프로젝트의 주도권을 잡았다. 로봇은 기초과학이 아니라는 산업부의 논리가 통했다는 게 과학기술계 설명이다. 과기정통부는 로봇의 ‘두뇌’에 해당하는 인공지능(AI)과 액추에이터(모터·센서 등으로 구성된 구동기 모듈) 등 로봇부품 기초연구만 담당하고 있다.

제조업용 로봇 R&D와 관련해서는 이견이 별로 없다. 하지만 AI 등 첨단기술이 접목된 로봇과 관련해서는 부처 간 힘겨루기가 여전하다. 산업부와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가까스로 ‘로봇·AI 융합 원천기술 개발’ 사업을 공동으로 펼치는 데 합의했다. 한 공과대학의 로봇담당 교수는 “AI 로봇 프로젝트를 산업부와 하려면 과기정통부에서, 과기정통부와 하려면 산업부에서 항의가 들어온다”며 “AI 로봇 R&D와 관련한 마스터 플랜이 없다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기초연구 지원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로봇의 관절에 해당하는 액추에이터는 물론 그 안에 들어가는 모터까지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기본 기술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