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 "어벤져스 토르의 망치처럼…파괴력 있는 연구 성과물 내놓겠다"
“(영화 어벤져스의 주인공) 토르의 망치 같은 걸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64·사진)의 말이다. 1980~1990년대 ETRI의 황금기 멤버인 그는 이달 1일 부임했다. 지난 5년간 ETRI에서 분사한 소프트웨어 기업을 인큐베이팅하는 등 외부 활동을 하다 친정의 수장으로 복귀했다.

김 원장은 “연구원들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전전자교환기(TDX) 국산화, 2세대 이동통신(CDMA) 세계 최초 상용화, 3세대 와이브로(WIBRO) 개발 등 굵직한 성과를 쏟아낸 과거에 대한 향수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는 “돌아와 보니 후배들이 정교한 칼을 많이 만들어놨다”며 연구성과가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이어 “작은 칼을 모아 용광로에 넣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통하는 ‘망치’를 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4일 경기 과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근처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의 역사를 상세히 설명했다. 1980년대엔 다른 제품을 뜯어보고 원리를 추적하는 ‘리버스엔지니어링(역공학)’에 집중했다. 글로벌 기업에 대한 수많은 회피특허가 이 과정에서 나왔고, 1986년 세계 열 번째로 TDX 자체 개발도 이뤄냈다.

CDMA 상용화 역시 TDX의 개발 주역 50여 명이 그대로 옮겨가 달성했다는 후문이다. 김 원장은 “역공학을 통해 쌓은 실력이 새로운 ‘스펙(규격)’을 구현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또 여러 기술을 묶는 시스템통합(SI)에 주력하면서 와이브로가 탄생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ETRI는 정체 상태에 빠졌다. 김 원장은 “기초원천기술을 개발하는 ‘퍼스트-무버’ 단계로 빨리 이전해야 했는데 시기를 놓쳤다”고 진단했다. 정보통신부 폐지 등 정책 혼선 영향도 컸다는 설명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네이처·사이언스·셀에 논문 게재’ ‘사회문제 해결’ ‘창업’ 등 임무가 두서없이 쏟아지는 통에 연구원들이 정작 ‘기초원천기술 개발’에 몰두할 수 없었다고 했다. 김 원장은 “이는 ETRI만의 문제는 아니다”며 “일률적인 연구비 조달 및 (정부 출연연구원) 평가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1978년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했다. KAIST에서 전자계산학 석사, 프랑스 낭시제1대학에서 전자계산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