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우의 부루마블] "게임 중독, 게임 탓 아닙니다"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확대하는 행위'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하는 '게임 중독'의 의미다. WHO는 게임 중독(장애)을 새로운 질병 항목으로 분류하는 국제질병분류 개정안(국제질병사인분류·ICD-11)을 오는 5월 총회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게임 중독은 공식적인 질병(정신 질환)이 된다.

게임 중독이 정신 질환이 되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루 10시간 이상 게임을 하는 '프로게이머'가 정신 질환자로 분류될 수 있고, 게임을 오래한다는 이유로 군 면제를 받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극단적 사례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국내 게임업계는 게임 중독의 질병 등재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보건복지부가 담당부처인데 WHO 개정안을 그대로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는 빨라도 2025년께 도입될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문제는 게임 중독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게임 중독을 진단하는 평가 기준 ▲게임 중독을 일으키는 원인 ▲게임 중독의 유발하는 증상 등이 구체화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기준 자체가 비과학적이고 학문적이지 않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정의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정 교수는 지난 4년간 청소년 2000명을 조사한 내용을 NDC(넥슨 개발자 컨퍼런스) 2019에서 발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게임 과몰입(중독)의 원인은 게임이 아닌 자기통제력에 있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정 교수는 "자기통제력이 약한 청소년들이 주로 게임 과몰입에 빠졌다. 게임 이용시간은 게임 중독의 원인이 아니었다"며 "자기통제력을 약화시키는 원인도 게임이 아니었다. 스트레스(학업)가 주된 이유였는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도 게임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부모의 과잉 간섭과 과잉 기대, 주변 사람들의 과도한 지지 등이 스트레스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게임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게임 자체를 원인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도 했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적용할 경우 청소년들을 정신 질환자로 낙인찍는 등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다.

게임업계의 입장도 비슷하다. 게임에 집착하고 과몰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탓해야지 게임에 책임을 넘기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 중독은 게임 탓이 아니다.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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