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봉 항공안전기술원 드론안전본부장이 국내 드론 산업 규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창봉 항공안전기술원 드론안전본부장이 국내 드론 산업 규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과학기술 관련 회사들이 많은 대전에는 국내 드론 완성품 업체의 40%가 몰려있다. 하지만 정작 대전에선 드론의 시험비행조차 할 수 없었다. 대전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소 주변이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됐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주요 시설물 반경 9.3km 이내에서는 드론을 날릴 수 없게 돼 있는 데다, 비행금지구역이 아닌 경우에도 고도제한(150m)이 있다.

제작한 드론을 마음 놓고 날려보려면 직경 22km 시범공역(空域)이 있는 전남 고흥까지 가야 했다.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최근 정부는 대전 대덕구 일원에 드론 시범공역을 새로 조성했다. 비행금지구역을 비행제한구역으로 바꾸고, 시의 허가를 받아 완성품 업체들은 공역에서 제작 드론을 날려볼 수 있도록 했다.

국토교통부와 대전시,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 군 합동참모본부,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 등이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다.

이 자리에 참여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양보를 이끌어낸 항공안전기술원 강창봉 드론안전본부장(사진)은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드론을 날려봐야 기술 수준과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지 않느냐. 드론 비행 민원은 쏟아지는데 기존 항공규제만 적용해 거절당하더라”면서 “항공안전기술원이 먼저 드론 비행이 가능한 공역을 찾아내 제안하면서 물꼬가 트였다”고 말했다.

대전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에는 드론센터가 있다. 드론 기업 수십 곳이 입주했다. 그러나 역시 주변에서 드론을 날려보지 못했다. 대통령이 이용하는 성남의 서울공항과 3.5㎞ 거리 위치가 걸림돌이었다. 서울공항 관제권 내라 군 승인이 필요했다. 단 판교에서도 서울공항 이용시간 외에는 업체들의 경우 드론 비행을 허용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드론 기술 자체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받는 중국이 드론 시장 점유율에서 치고 나간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중국 선전이다. 선전에는 글로벌 최대 드론 회사 DJI를 비롯해 드론 기업만 3000곳 이상 포진했다. 선전 지역의 저고도 비행을 공식 개방하고, 드론 주파수 문제도 정부가 해결하는 등 상황에 맞춰 풀어줘야 할 규제는 풀어준 덕분이다.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서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과 수도권 대기환경청 미세먼지 감시팀이 드론을 활용해 미세먼지 배출량을 측정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서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과 수도권 대기환경청 미세먼지 감시팀이 드론을 활용해 미세먼지 배출량을 측정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선전만큼은 아니지만 드론 분야는 국내 신산업 중 규제혁신 속도가 빠르다. 일례로 비슷한 시기에 규제혁신 대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원격의료는 아직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

이와 관련해 강 본부장은 “드론을 날릴 곳이 없다는 민원 증가와 산업 육성에 대한 부처 간 공감대 형성의 결과”라고 짚었다.

군 당국에 접수된 드론 항공촬영 관련 민원은 2012년 55건에서 2014년 659건으로 2년 만에 12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서울 지역 상공 대부분이 비행금지구역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드론에 대한 관심은 한 풀 꺾였다. “대체 어디서 날려야 합법이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드론을 날릴 수 있는 공역을 만들어달라는 민원이 많았죠. 지자체가 신청해도 비행불가지역 등의 제한에 걸려 기각되는 상황이 많았어요. 이렇게 놔두면 안 되겠다 싶더군요. 항공안전기술원, 지방항공청 등 관련 기관들이 공항 인근, 군사지역, 통제공역 등을 체크해 드론 비행가능공역을 지자체에 공유했죠. 무조건 풀어달라고 하기보다 대안을 제시하니 정부부처들도 전향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3년 전만 해도 드론 제조사들은 신제품을 만들어도 마음 놓고 실험할 수 있는 곳이 마땅찮았다. 항공안전법에 전파법, 통신법 등이 촘촘히 얽혀있는 탓이다.

심지어 드론 업체들이 기술역량을 테스트할 기회조차 없을 정도였다. 강 본부장은 “날려보질 못하니 당시 드론 업체들은 자사 제작 드론 비행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전국 10여곳에 시범공역을 조성하면서 문제를 조금씩 풀어갔다. 수도권에선 경기 화성에 시범공역이 생겼고, 가장 넓은 고흥 시범공역은 직경 22km에 달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공공수요 확산을 위한 드론 규제 샌드박스 박람회'를 열고 드론 산업 생태계 조성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국토교통부는 지난 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공공수요 확산을 위한 드론 규제 샌드박스 박람회'를 열고 드론 산업 생태계 조성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드론을 날려볼 수 있게 되면서 업체들이 도리어 관련 규제를 받아들이는 효과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드론 비행은 가시거리 이내에서 하도록 돼 있다. 가시거리가 1km 수준이라 충분하지 않다는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실험해본 업체들은 현재 기술 수준에서 ‘가시거리 이내 비행’을 넘기가 쉽지 않다고 수긍했다. 그러면서 경우에 따라 가시거리를 벗어나는 비행도 가능하도록 ‘탄력적 규제’가 더해졌다.

강 본부장은 이를 신산업 규제 수준 합의의 모범사례로 설명했다. 그는 “신산업은 가보지 않은 길이라 사실 적정 규제에 대한 기준을 잡기 어렵다”며 “넓은 시범공역을 조성하고 24개 사업자들이 다양한 드론을 총 3000여회 날리며 기술 한계를 시험했다. 거기서 나온 데이터가 규제 기준이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 입장 변화에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산업용 드론 시장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공감대도 있었다.

미국 방산컨설팅 기업 틸그룹은 2016년 3억8000만달러(약 4320억원) 규모였던 산업용 드론 시장은 10년 뒤인 2026년 70억8000만달러 수준으로 20배 가까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연 평균 성장률 34% 수준이다. 취미용 드론 시장에선 DJI가 앞서나가지만 산업용 드론 시장의 경우 아직 어느 기업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규제 개혁이 중국 기업들 배만 불린다는 우려도 나온다. 모터, 비행제어 등 핵심 기술을 중국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 본부장은 현 상황을 과도기로 진단했다. 그는 “국내 드론 업체 대부분 업력 3년 이내라 당장 자립은 어렵다”면서 “공공기관의 국내 중소기업 드론 구입을 의무화했다. 공공 구매로 시장을 형성해가며 기술경쟁력을 키워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른 신산업 분야에서도 과감히 시도해봐야 해요.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테스트필드를 구축해 자유롭게 검증하는 게 우선이에요. 거기에서 나온 데이터를 토대로 되는 것부터 규제를 풀면 되죠. 그렇게 해야 ‘풀 수 없는 규제’에 대해서도 업체들이 납득하지 않을까요.”

인천=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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