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PC 시장이 또다시 중앙처리장치(CPU)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 소매용 일부 고급 제품 가격은 두 달 새 52% 가까이 급등했다. 물량이 소량 풀리고 성수기가 지나갔지만 공급난은 언제든 깊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인텔 CPU 또 '품귀 현상'…두 달 새 최대 50% 급등
고급형, 보급형 모두 급등

25일 온라인 가격비교업체 다나와에 따르면 고급 제품인 인텔 9세대 CPU 코어 i7과 코어 i9의 평균 구매가격은 3월 첫째 주 각각 75만원, 81만원으로 치솟았다. 지난 1월 첫째 주에 비해 각각 약 52%, 29.5% 뛰었다. 3월 둘째 주에는 각각 73만원, 79만원으로 다소 진정됐으나 1월의 49만원, 62만원보다는 여전히 높다. 다나와 관계자는 “물량이 계속 부족해 3월 둘째 주에도 온라인 거래 자체를 찾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PC 업계에서는 이번 가격 급등을 지난해 중반기부터 시작된 인텔 CPU 공급난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인텔코리아는 물량이 부족해지자 지난해 3분기부터 공급 방식을 사실상 할당제 방식으로 변경했다. 총판업체들이 수요에 맞춰 발주해도 할당 물량만 받을 수 있다. PC 성수기인 입학·졸업 시기인 데다 공급 부족까지 겹쳐 CPU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서울 용산의 한 PC 판매업체 대표는 “공급 물량 부족으로 다들 사재기를 해 가격이 크게 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급형인 펜티엄이나 코어 i3 등의 제품도 공급난을 겪고 있다. 8세대 코어 i3 제품은 평균 구매가격이 1월 첫째 주 15만원에서 최근 20만원까지 상승했다.

국내 인텔 CPU 총판업체 관계자는 “고급형 모델보다 보급형 제품의 사정이 더 나쁘다”며 “데스크톱 PC용과 노트북용 모두 공급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급 사정 더 나빠지나

인텔이 지난주부터 한국에서 물량을 다시 풀기 시작했지만 근본적인 공급 부족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고 업계는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2분기 CPU 공급 사정이 더 나빠질 것으로 관측했다.

대만 정보기술(IT) 전문지인 디지타임즈는 지난 12일 인텔의 세계적인 CPU 공급 부족 현상이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HP, 델, 레노버 등 주요 PC 제조사들이 연말연시 재고를 쌓아놔 공급 부족이 해소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신제품 노트북이 속속 출시돼 오히려 공급량이 수요보다 5%가량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만, 중국 업체들의 경우 공급량이 최대 10% 모자랄 수 있다고 이 매체는 내다봤다.

인텔의 CPU 공급 부족 현상은 데이터센터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인텔이 소비자용 CPU 생산시설을 서버용으로 돌리면서 나타났다. 인텔은 지난해 9월 공급 부족을 인정하고 총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를 투자해 생산시설을 확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인텔이 짓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 신(新)공장은 올해 7월에야 가동에 들어간다. 10나노미터(nm) 신공정을 적용한 새 CPU 제품은 올 3분기를 지나야 출시될 전망이다. CPU 공급난이 올해도 지속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CPU 공급난이 길어지면서 D램, 낸드플래시 업체들도 실적이 악화됐다. 함께 쓸 CPU가 부족하니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의 재고는 쌓일 수밖에 없다.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은 지난 20일 공급과잉 문제로 D램과 낸드플래시를 5%씩 감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인텔 CPU 공급 문제는 올 3분기 이후에나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며 “D램, 낸드플래시 가격도 3분기까지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