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헬스케어산업 육성 정책이 헛바퀴만 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혁신 의료기기의 출시 시기를 앞당길 수 있도록 돕는 허가도우미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를 활용하겠다는 중소 의료기기 업체가 해마다 줄어들면서 제도 실효성을 둘러싼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단독] 의료기기 '허가도우미' 신청 4년새 반토막…거꾸로 가는 헬스케어 육성책
1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기기 허가도우미 신청 건수는 12건으로 이 제도가 도입된 2015년의 24건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허가도우미 신청 건수는 2016년 16건, 2017년 14건으로 해마다 감소세를 보여왔다. 신청 건수가 줄면서 허가도우미 지정 건수도 2015년 21건에서 지난해 6건으로 71% 감소했다.

허가도우미는 의료기기 개발 초기부터 허가에 필요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해 허가 소요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는 제도다. 신개발의료기기, 첨단의료기기 등 혁신 제품 출시를 최대한 앞당겨주기 위한 지원 정책이다. 중소 의료기기 업체 인트로메딕은 이 제도의 지원을 받아 캡슐 형태의 내시경을 삼키면 소장 영상을 체외로 무선 전송해주는 의료 내시경의 출시 허가를 1년 만에 받았다.

하지만 허가도우미 신청 건수가 줄어들면서 제도 운영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허가도우미로 지정되는 과제 대부분이 국가 연구개발 과제다 보니 기업이 자발적으로 지원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며 “지정 대상 범위를 확대해 혁신기술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간 칸막이가 여전히 높은 것도 문제로 꼽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 헬스케어 관련 국가 연구과제를 관리하는 조직이 부처별로 나뉘어 있어 식약처가 운영하는 허가도우미 제도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편웅범 서울대 치의과대학원 교수는 “여러 전담기관이 하나의 과제에 동시에 참여하지만 컨트롤타워가 없어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허가도우미 등 지원 제도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과제를 선정할 때 정부가 지나치게 ‘안전 지향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들이 책임지지 않기 위해 실패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기업만 찾는 경향이 있다”며 “정부가 연구개발 지원 등에 좀 더 모험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 허가 후 실제 의료현장에서 사용하면서 충분한 임상 데이터를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의료기기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의료기술평가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험 등재 심사 등을 거칠 때 임상 데이터가 매우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그러나 심평원에서 급여 산정을 받지 못하면 의료기관이 의료기기를 활용해도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의료기기 업체는 사실상 의료기관에 제품을 공급할 수 없다. 허가 후 임상에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