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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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불법사이트 차단을 명분으로 SNI(서버 네임 인디케이션) 필드 차단 기술을 도입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SNI 필드 차단 기술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에 25만명 이상 동의하며 정부가 직접 답변에 나섰지만, 아직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진 못한 모양새다.

지난 21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은 “정책결정과정에서 국민이 공감하도록 소통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면서도 국민들의 반발에 개의치 않고 SNI 필드 차단 기술 도입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정부는 옳은 일을 하니 믿으란 얘기다.

‘국가(집단)가 결정을 내리면 국민은 그 결정을 믿고 따른다’는 모습에서 과거 산업화 시대를 이끌던 독재자가 연상된다. 당시 국가의 결정은 항상 옳은 것이었고, 개인의 권익은 집단을 위해 희생해야 했다. 월남 파병 장병들의 파병 수당이 국가 발전 자금으로 사용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시대는 변했다. 집단의 결정이 옳고 개인은 권익을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개인의 권리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갖가지 명분으로 개인 앞에 서려는 국가를 의심하고 견제하는 것은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시각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유와 인권 의식이 높아진 2030세대에게 집단의 이익을 내세워 개인의 권익을 침해하려 드는 국가 권력은 견제 대상이다. 개인이 인터넷에서 주고받는 패킷(SNI)을 정부가 탈취하고 감시한다는 것이 2030세대가 바라보는 HTTPS 논란의 본질이다. 2030세대에게 논란에도 SNI 필드 차단을 강행하는 정부는 의심스러울 뿐이다. 불법사이트 차단에 필요하다는 명분 역시 믿지 못한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2030세대의 조류는 새로운 인프라 기술인 블록체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더리움, 이오스 등 유명 블록체인 메인넷 개발자들이 청년들로 구성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블록체인은 제3자의 통제를 받지 않는 개인의 집합 형태를 띈다. 통제하는 제3자를 없애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청년들이 그를 위한 인프라를 직접 만든 것이다.

가령 기존 인터넷에 있는 A라는 사이트에 가입하려면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제공된 개인정보는 A사이트 관리자가 보유한다. 사이트 관리자는 이 정보를 유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출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이트 운영도 관리자의 판단 하에 임의로 이뤄진다. 명문화된 이용규정과 달리 관리자가 편향성을 띄고 규정에 반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이용자들이 막기는 쉽지 않다. 정부와 국민 관계가 이렇다.

블록체인에서는 이러한 우려가 없다. 익명성으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개인정보도 타인에게 위임하지 않을 수 있어서다.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나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고 누구에게도 권리를 위임하지 않는다. 코딩으로 만든 규칙도 절대적이다. 누구도 이 규칙을 어길 수 없고 이를 바꾸려면 절반 이상의 이용자가 동의해야 한다.

블록체인은 기존 중앙집권적인 인프라에 비해 속도가 느리고 에너지도 더 많이 소비한다. 여러모로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절대적인 규칙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청년들의 판단 때문이다. 단순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 이념의 변화를 담은 셈이다.

향후 사회 인프라의 디지털화와 맞물리며 블록체인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블록체인에 담긴 청년들의 변화를 읽어내야 한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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