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로 연구 활발
말라리아 없는 모기·슈퍼돼지 등 선보여
'돌연변이 동물' 탓에 생태계 혼란 우려도
지난해 개봉한 영화 ‘램페이지’(사진)는 가상의 유전자 편집기술로 거대해진 고릴라, 늑대, 악어 등이 미국 시카고 일대를 난장판으로 만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유전자 편집기술을 바탕으로 괴수들이 서로 싸운다는 영화적 상상력을 더했다.

현실에서는 영화처럼 유전자 편집기술로 동물을 며칠 사이에 10m가 넘는 크기로 키우진 못한다. 그러나 신체 특성을 바꿔 특정 질병에 더 잘 버티게 할 수는 있다. 다른 종의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이미 지니고 있는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바꿔 신체 ‘지도’를 변형하는 방식이다.

킹콩·거대 악어 나오는 '램페이지'…현실선 유전자 편집으로 매머드 복원 중

1990년 독일 제약기업 바이엘이 개발한 양 ‘트레이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트레이시의 양젖에는 유전성 폐기종을 치료할 수 있는 단백질이 포함돼 있었다. 겉보기에 평범한 이 양이 생산한 젖은 당시 1L 가격이 4000파운드(약 580만원)를 넘길 만큼 비쌌다. 1996년 공개된 항암제 성분을 분비하는 염소 ‘그레이스’도 비슷한 사례다.

유전자 편집의 핵심은 특정 유전자를 잘라낼 수 있는 기술이다. 2013년 개발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기존 유전자 편집 방식보다 정확성이 높고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유전공학의 혁신을 불러오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도입되면서 유전자 변형 동물 연구도 다양해지고 있다. 2016년 미국 미주리대와 캔자스주립대는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에 걸리지 않는 돼지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말라리아를 옮기지 않는 모기를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2015년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이 이 기술을 활용해 일반 돼지보다 근육량이 두 배 많은 ‘슈퍼돼지’를 개발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편집기술을 활용해 고대에 멸종된 매머드와 같은 동물들도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매머드와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한 생물인 아시아코끼리에 매머드 유전자를 끼워 넣는 식이다. 이미 2015년부터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이 이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램페이지처럼 거대한 동물이 도시 한가운데에 등장할 날이 머지않은 셈이다.

그러나 ‘유전자 편집 만능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유전자가 조작된 동물에서 장기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7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알려진 것보다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예측 못한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전자 편집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를 모으자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3월엔 프랑스 파리에서 ‘책임 있는 게놈편집 연구혁신연합’이란 단체가 결성되기도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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