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보험사 존 핸콕은 애플의 스마트워치 ‘애플워치’ 덕에 가입자가 늘고 보험 상품 수익률도 올랐다. 이 회사는 2016년부터 자사의 건강증진 프로그램 참가자에게 애플워치를 제공하고 있다. 애플워치로 소비자를 유인한 존 핸콕은 보험 가입자들의 신체활동 정보를 분석해 사망 위험을 줄여 보험 수익률도 높였다. 지난해 시장조사업체 랜드코퍼레이션과 존 핸콕이 미국과 유럽, 남아프리카 등의 40만 명을 조사한 결과 애플워치와 연결된 보험 상품에 가입한 소비자의 활동량은 이전보다 평균 31% 증가했다. 한국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나올 수 없는 보험 상품이다.

이처럼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헬스케어 사업을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정하고 고삐를 죄고 있다. 목표로 한 진출 분야도 웨어러블 기기 개발과 원격의료, 의약품 택배 등 다양하다. 소비자들은 건강해지고 의료비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규제로 헬스케어산업 발전이 더딘 한국과는 딴판이다.
"IT 공룡들, 헬스케어 사업 선점하는데 한국은 손발 묶여"
스마트워치 앞세운 애플

애플은 애플워치로 헬스케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최근 애플워치에 심전도 측정 기술을 장착한 데 이어 심박수, 센서 수치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운동량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기능도 추가했다. 다음달에는 미국 3대 보험업체인 애트나와 손잡고 애플워치의 데이터를 활용한 신규 앱(응용프로그램)을 내놓을 예정이다. 운동 시간 확인, 수면 시간 점검, 각종 접종 알람 등 예방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애플의 헬스케어 사업 강화에는 팀 쿡 최고경영자(CEO)의 의지가 반영됐다. 그는 올해 초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이 인류에 가장 크게 공헌할 분야는 건강”이라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구글의 다음 도전은 ‘생명 연장’이다. 구글의 생명공학 자회사인 베릴리는 이용자의 체중과 운동 등을 감지할 수 있는 신발을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백내장 진단용 스마트 렌즈와 당뇨병 관련 안구 질환 추적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구글의 투자 자회사 구글벤처스가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분야가 바이오·헬스케어다. 2014년 기준 전체 20억달러 규모 투자액 중 36%인 7억2000만달러를 이 분야에 쏟아부었다. 모바일 분야(27%)보다 많았다.

정희석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구글은 미국의 유망 헬스케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적극 투자하면서 빠른 성장이 예상되는 유전자 가위, 유전체 분석, 원격의료 서비스, 의료 AI 분야에 진출했다”며 “향후 헬스케어산업의 성장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구글의 기업 가치도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마존은 ‘진료부터 약 배달까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도 지난해 헬스케어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온라인 약 처방 및 의약품 택배 서비스업체인 필팩을 인수하면서다. 올해 초에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가 투자은행 JP모간체이스와 함께 헬스케어 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IT업계에서는 아마존이 원격의료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마존은 AI 스피커(알렉사)와 모바일 기기로 환자를 진단해 온라인상에서 처방하고 약도 배달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렉사가 감기나 기침을 판별하는 기능과 관련한 특허도 미국 정부에 출원했다.

다른 IT 기업들도 헬스케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헬스케어 분야에 73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우버는 병원에서 환자나 방문객들이 차량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인 ‘우버 헬스’를 내놨다.

중국 IT업체들도 이에 못지않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약사가 원격으로 문진하고 의약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텐센트는 작년 3억 명의 진료 기록과 10만 건 이상의 수술 기록에 기반한 ‘다바이(大白)’라는 AI 의사를 선보였다. 모바일 채팅으로 문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의사다. 바이두도 스마트워치를 활용한 ‘두라이프(Du-life)’라는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원격의료, 의약품 택배, 개인 의료 정보 활용 등이 모두 불법이기 때문에 글로벌 IT 기업들이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헬스케어 서비스 대부분이 불가능하다”며 “그만큼 IT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소비자들의 의료비 부담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