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업계에서 첨단 바이오 벤처기업을 인수합병(M&A)하려는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대형 제약 특허가 올해 무더기로 종료되는 만큼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제약 M&A '錢의 전쟁'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현지시간)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매출 1위 제약사인 로슈가 유전자치료제 개발 기업인 스파크세러퓨틱스를 시가총액의 두 배가 넘는 48억달러(약 5조37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스파크세러퓨틱스는 시력 장애와 혈우병 등 유전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첨단 바이오기업이다. 제베린 슈반 로슈 최고경영자(CEO)는 “유전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해 스파크의 전문성을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제약회사 입센도 이날 유전질환 치료제 개발사인 클레멘티아를 13억1000만달러(약 1조5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지난달엔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이 700억달러(약 78조원)를 투자해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사인 세엘진 경영권을 확보했다. 글로벌 제약업계의 M&A로는 사상 최대다. 올해 추진된 글로벌 제약업계 M&A 규모는 이미 1000억달러(약 112조원)를 넘어섰다.

기존 주력 약품들의 특허 만료 기간이 속속 다가오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M&A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해외 시장조사기관 GaBI에 따르면 올해 제약 분야에서 50여 개 특허가 만료된다. 연간 기준 역대 최다다. 특허가 만료되면 복제약이 쏟아져 나오는 만큼 기존 업체로선 타격이 불가피하다. GaBI는 올해 출시를 앞두고 있는 바이오시밀러가 300여 종에 달한다고 전했다.

바이오 기업들의 몸값은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항암치료제 개발업체 룩소온콜로지는 지난 1월 프랑스 일라이릴리에 인수될 때 몸값이 예상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독일 머크는 지난 23일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사인 이뮨디자인을 인수하면서 시가총액의 네 배 수준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혀 주목받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제약업계 M&A 프리미엄률(인수 가격의 시가총액 초과분 비율)이 올해 평균 79%를 기록해 지난 5개년 평균치인 56%를 크게 웃돌았다고 전했다.

약가 책정에 대한 각국 정부의 강력한 간섭도 제약업계가 미래 투자에 열을 올리는 배경이다. 미국 정부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약가를 너무 높게 책정하고 있다는 비판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 국민들의 약가 부담을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미 상원은 26일 사노피, 머크, 화이자 등 7대 글로벌 제약사 대표들을 의회 청문회에 출석시켜 약가 책정 수준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