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빅데이터의 핵심으로 떠오른 ‘고객 경험’을 잡기 위해 수조원을 들이고 있다. 전사적자원관리(ERP) 업계 1위인 SAP는 물론 어도비, 세일즈포스 등 글로벌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고객 경험에 관한 데이터 확보를 위해 대규모 인수합병(M&A)에 나섰다. 또 확보한 데이터를 공유하기 위해 경쟁사들끼리 서로 정보를 나누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글로벌 IT기업 "엑소데이터 잡아라"…M&A에 수조원 투자
경험데이터 확보에 수조원 부어

지난해 11월 SAP는 미국 온라인 설문조사업체 퀄트릭스를 80억달러(약 9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어도비는 지난해 5월 기업용 전자상거래 솔루션업체인 마젠토를 16억8000만달러(약 1조8000억원)에 인수했다. 마젠토는 코카콜라, 네슬레 등 세계 25만 개의 가맹점이 사용하고 있다. 마젠토가 보유한 고객 경험 관련 데이터를 어도비의 클라우드 환경에 통합해 보다 체계적인 데이터 분석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고객관계관리(CRM) 업체인 세일즈포스도 지난해 3월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데이터 통합 업체인 뮬소프트를 65억달러(약 7조원)에 인수해 고객 경험을 보다 효과적으로 공유 및 연동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고객 경험 확보를 위해 조 단위의 투자에 나선 것은 빅데이터 분석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빅데이터 분석은 물류 운반, 거래액, 출입 고객 수와 같은 ‘운영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하는데, 운영데이터만으로는 데이터 분석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퀄트릭스의 2017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86%의 마케터들이 필요 이상의 정보를 모으고 있다고 답했다. 이 중 절반은 데이터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고 무작정 분석에 매달린다고 응답했다. 기업 4곳 중 1곳은 데이터를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직감에 의해 의사 결정을 내린다는 설문조사도 나왔다.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가 더 어려워지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떠오른 것이 ‘경험데이터’다. 직원이나 고객이 실제 현장에서 겪는 경험을 디지털로 파악해 문제의 발생 원인을 짚어낸다는 것이다. 가령 음식 배달 앱에서 사용자가 음식 하나를 주문하기까지 걸리는 단계를 측정하거나, 매장을 방문한 손님이 물건을 살 때까지 몇 번을 둘러보는지를 파악하는 게 경험데이터다. 경험데이터를 운영데이터와 조합하면 기업이 마주한 문제를 훨씬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경험데이터(Experience Data)와 운영데이터(Operation Data)를 합친 ‘엑소(XO)데이터’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알렉산더 아츠버거 SAP 고객경험관리 총괄은 “운영데이터가 고객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려준다면, 경험데이터는 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려주는 단서가 된다”며 “경험데이터는 단순한 빅데이터를 활용 가치가 높은 데이터로 전환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엑소데이터 관리는 이제 모든 기업에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데이터 확보 위해 경쟁 업체와도 맞손

데이터 공유를 위해 경쟁 기업끼리 서로 손을 맞잡기도 한다. SAP와 어도비,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9월 ‘오픈 데이터 이니셔티브(ODI)’를 발표했다. ODI는 기업들이 단일 데이터 표준을 구성해 데이터의 연결에 활용하자는 협력체다. 같은 ERP, CRM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SAP, 어도비, MS 세 회사가 데이터 공유를 위해 뭉친 것이다. 이 회사들은 ODI를 통해 각자의 프로그램에서 서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게 됐다. 빌 맥더멋 SAP 최고경영자(CEO)는 “업체들 사이의 정보장벽이 무너졌을 때 회사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통합된 서비스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엑소데이터를 회사 의사 결정에 적용하고 있는 기업들도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 미국 저가 항공사인 제트블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고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승객들의 반응을 모니터하는 동시에 일기예보 등을 토대로 고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해서 대응하고 있다.

전통적인 산업으로 분류되는 백화점도 엑소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일본의 조이너스(JOINUS)백화점은 고객이 층별로 돌아다닐 때 스마트폰의 신호를 측정해 매장 개선에 활용하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층별, 유동량과 고객 동선을 함께 관리한다. 아츠버거 총괄은 “온라인을 통해 무엇이든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는 제품이 단지 제품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경험이 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경험데이터와 운영데이터를 적절히 조합해야 기업은 궁극적인 차별화 지점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