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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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정부가 가상화폐(암호화폐) 정책 방침을 발표했다. 금융감독원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투자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 암호화폐 공개(ICO) 전면금지 조치를 유지하한다는 게 골자다. 현행법 위반 사례에 대해서는 수사기관 통보 등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정부는 “가이드라인 등을 제시할 경우 투자자들이 정부가 공인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고 ICO 투기 과열과 피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암호화폐 발행 프로젝트, 이를 홍보하는 커뮤니티, 거래가 이뤄지는 암호화폐 거래소 등 시장 참여자들이 정부 메시지를 악용할 것이란 불신이 깔렸다. 한 마디로 신뢰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번 정부 발표로 ICO 주체 격인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란 우려도 나오지만, 실제로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강경대응의 주된 대상이 될 것이란 목소리도 있다. 투기를 조장하는 주체가 개별 암호화폐 프로젝트보다는 암호화폐 거래소란 시각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의 벌집계좌 소송 이후 신규 거래소가 급증하고 있다”며 “대형 거래소와 달리 이들은 투자자 보호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모럴해저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경우 시장에 기준을 제시할 수는 있겠지만, 정부가 공인했다는 메시지로 읽힐 여지가 생긴다”며 “이를 악용한 편법·불법 행위들이 기승을 부릴 것이란 우려가 더 크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이즈가 농협은행의 법인계좌 입출금 정지 조치를 풀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코인이즈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농협은 코인이즈가 실명계좌가 아닌 집금계좌(벌집계좌)를 이용했다며 입출금을 정지시켰다.

법원이 코인이즈 손을 들어주며 사실상 벌집계좌 사용을 허용한 셈이 되자 이를 틈타 암호화폐 거래소가 우후죽순 늘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60~80곳 정도였던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는 11월부터 급증해 현재는 180~200곳 수준으로 추정된다.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작년 11월 문을 연 암호화폐 거래소 루빗은 전산오류로 피해가 발생했다며 2개월 만에 파산을 선언했다. 루빗이 파산하면 최소 800명가량 투자자들이 약 50억원의 투자금을 날리게 된다. 투자자들이 집단소송 움직임을 보이자 루빗은 설 이후 운영을 재개하겠다고 입장을 바꿨지만 상당수 투자자들은 시간끌기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빗도 최근 집단소송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 후 에어드롭(토큰 무상분배)을 제공하겠다면서 자체발행 암호화폐 덱스터를 판매하고는 지난달 덱스터 소각을 결정했기 때문. 코인빗은 덱스터 소각 여부를 설문조사로 결정했다고 했지만, 투자자들은 설문이 덱스터를 보유하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암호화폐 시세를 조작하고 투자자의 예치금 출금을 거부해 고소와 경찰조사가 진행 중인 암호화폐 거래소 올스타빗의 경우 새로운 법인을 이용해 거래소 카브리오빗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대표 등 기존 올스타빗 구성원들이 그대로 옮겨가는 형태라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거래소 세탁’이란 비판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현행법 위반 사례들에 칼을 갈고 있다. 정부 조치가 본격화되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10%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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